오봉(五峯) 정응진(鄭應鎭)선생에 대한 추모 송덕비 제막식이 오봉선생추모송덕비건립추진위원회(위원장 박희구) 주최로 지난 4월 21일 오전 11시 부림면 감암리 신계서원 입구 현지에서 성대하게 거행됐다.
이 날 제막식에는 김영덕 국회의원, 김채용 군수, 정영조 전국 의령군향우연합회장을 비롯한 각 향우사회의 지도인사와 오봉 선생의 자녀(4남3녀)와 초계정씨(草溪鄭氏) 문중의 종인 및 친척 등 300여명이 참석함으로써 오봉 선생은 의령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신 위인(偉人)임을 실감케 했다.
‘오봉정응진선생추모송덕비’문(김승곤 한글학회장 撰,박웅배 한글학회 이사 書)에는 “선생은 신문물수용을 선구하며 일제혹설에 유림문중의 척당불기의 신념과 지조로 일관대처하시다 광복후 신흥제지회사 설립, 경남한지공업협동조합과 한지개량연구소 창설로 입지를 실천하매 등사원지 최초 국산화, 신반천 소태(蘇笞)를 이용한 태주지 발명특허 등 한지(韓紙)의 다양화와 신자원 개발의 공로로 전국한지공업협동조합연합회장으로 추대되어 대일화선지 최초 추출,내연기관 여과장치에 한지필터 도입의 신기술로 대통령표창을 받은 바, 이후 십여년간 국내외 섬유공학자들이 유엔군총사령관을 역임한 밴프리트장군 주도하에 기술교류차 우리고장을 방문하여 한지산업 선진화의 큰 계기를 마련하였다. 4.19혁명으로 싹튼 민주의식 정립기에 제3대 경상남도의원에 당선되고, 부림초등학교 총동창회 초대회장, 신반중학교 재단이사장과 사친회장,신반농업고등학교 설립추진위원장과 초대 육성회장을 역임하여 지역사회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기술했다.
박희구 위원장은 축사에서 “오봉 선생님의 비문과 경과보고, 약력 등에서 알겠지만 그 행적과 애향정신은 남달랐으니 時不可失이라했듯이 한번 밖에 오지 않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선각자로 살았습니다. 고인이 되신지 10여년이 지나서야 그것이 공론화 되어 마침내 이 사업 추진의 계기가 된 것이니 옛 것을 익히고 새 것을 알아야 스승이 될 수 있다는 진리를 간과하지 않았습니다.(중략) 아울러 오봉 선생의 자손들도 이 어른의 높은 뜻과 행적에 누를 끼쳐서는 안 될 것이며, 항상 마음 깊이 새겨 자신들의 처신과 진로에 소금과 빛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고 강조했다.
김영덕 국회의원과 김채용 군수는 축사에서 모두 오봉 선생의 송덕비 건립은 선생의 애향심과 위민정신을 우리 의령지역 사회의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고자하는 의령군민들의 마음이 하나로 결집된 결과라 생각한다며 송덕비 건립을 축하했다.
오봉 선생의 장남 정영기(약사)씨는 가족대표의 인사말에서 이 사업의 단초를 펼친 김승곤 박사님은 물론, 오늘 이 제막식에 이르기까지 협조하여 주신 추진위원님 등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선친의 높은 뜻과 공적을 늘 가슴깊이 새겨 이를 실천하는 삶을 영위토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오봉 정응진(일명 澤鎭, 자 賢博, 草溪人:1912.10.2∼1987.1.25)선생은 부림면 신반리 570번지에서 정재모(鄭在模)씨와 全義李氏 수헌(守軒)님 사이 4남2녀의 장남으로 출생, 창녕 光州盧氏 海容공의 장녀 在任님과 혼인하여 슬하에 장녀 귀분, 2녀 양말, 장남 永璂(약사·수필가), 2남 永樂(교육행정 사무관), 3녀 임순, 3남 永滿(제아그로농업 대표), 4남 永武(영어학원장) 씨 등 4남3녀를 두었다.
<박해헌·본지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