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만길 문학박사 주장
그동안 의령군 ‘가례(嘉禮)’의 지명 유래에 대해 뚜렷한 해답을 찾지 못한 가운데, 조선 시대의 유학자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년)이 지은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황의 처가가 가례에 있었고, 이황이 가례의 한 바위에 ‘嘉禮洞天’(가례동천)이라고 쓴 것과 관련시키고자 한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데 서울 거주 의령군 칠곡면 향우 허만길 문학박사는 우리 신문사에 보낸 온 ‘김해 허씨의 의령 정착 과정’이라는 논문을 통해 ‘가례’라는 지명은 이황이 1521년(20살) 허씨 부인과 혼인하기 약 40년 전 경남 고성(철성)에서 가례로 이주한 그의 처조부 예촌(禮村) 허원보(許元輔: 1455~1507년)가 지은 것이라고 주장함에 따라, 지역사회와 학계에 큰 관심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허 박사는 고려 말의 충신 호은(湖隱) 허기(許麒)의 증손자로서 26살에 사마시(소과)에 합격한 유학자이며 시인인 허원보((許元輔: 1455~1507년)가 혼인 후 1480년경 새살림을 의령현 가례에서 꾸리면서 이 지역 이름을 ‘예를 아름답게 밝힌다’는 뜻을 지닌 ‘가례(嘉禮)’로 정하고, 자신의 호도 ‘가례(嘉禮)’의 끝 글자를 따서 ‘예촌(禮村)’으로 했다는 것이다.
허 박사는 이 사실을 예촌 허원보의 장남 허수(許琇: 1478~1539년)를 파조(派祖)로 하는 김해 허씨 참봉공파 종중(의령군 칠곡면 도산리에 모여 살았음) 대표를 지낸 허 박사의 아버지(허찬도: 1909〜1968년)에게서 조상들로부터 전해 오는 말이라며, 직접 들어 왔다는 증언을 하는 등 ‘가례’의 이름은 이황이 지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고, 그의 처조부 허원보가 지었을 것이라는 여러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자세한 내용은 허만길 박사의 논문 참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