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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려 정도진선생 행적

崇祖愛族 일념으로 평생 종사 진력, 언행범절 사표
김용란기자 기자 / 입력 : 2004년 05월 17일
정도진(鄭道鎭:1890.12.1∼1967.3.17) 선생의 자(字)는 ``문박(文博)``, 호(號)는 ``동려(東旅)``이다. 관향(貫鄕)은 초계인(草溪人)이다. 선대가 선비 집안이며 선생의 조부는 휘가 환석(煥奭)인데, 학식과 덕망이 출중하여 의령 향교(鄕校) 도유사(都有司:현 전교)로 다년 역임하셨다.

의령 군지(郡誌) 유행편(儒行篇)에는 동려 선생에 대해 ¨부림면 감암리에서 출생하였고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여러 가지가 능했다. 향교 전교를 지낸 조부로부터 학문을 배우는데 정봉시 군수가 부임인사차 왔다가 언행과 글재주가 비범하다고 칭찬하고 붓과 먹을 선물로 주었다. 유학에 해박하여 애향애족하고 미풍양속 순화에 힘썼으며 언행범절이 모범되어 이웃 사람이 진군자라고 했다. 만년에 신계서원을 복구하는데 주동하였다. 동려유고가 있다.¨고 기록돼 있다.

동려 선생의 장남인 성담(星潭) 정영달(鄭永達) 씨는 ¨선친께서는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입산리 수파(守坡) 안효제(安孝濟) 선생의 문집사건에 연루, 명부에 등재되었다가 근근 모면하셨다. 당시에는 주로 항일 애국지사들의 문집 또는 비밀결사만 전담한 고등형사가 부산경찰서에 근무했던 하판락(河判洛:창씨는 河本)이가 비밀탐정을 일삼았다. 그 후 친교가 있던 백산(白山) 안희제(安熙濟)선생께서 애국지사의 활동을 위해 만주 간도(間島)로 망명가신 뒤에는 백산 선생의 친제인 국제(國濟),동제(東濟) 씨와 교유(交遊)하셨으며 국제 씨와는 막역한 사이였으며 후일에 사가(査家)가 되었다. 국제 씨는 산중대호(山中大虎)라는 별명이 있었으며 걸출로서 부림면의 거물 면장(초대)으로 다년 근무하셨다.¨고 술회했다.

동려유고에 의하면 동려 선생은 백산 선생의 비보를 접한 뒤로는 단식을 하며 애통해 하셨던 것을 알 수 있다. 그 후 향교 장의(掌議)를 다년 역임 하셨고 일생을 항일사상에 투철하게 지내시고 사림(士林)들과 교유(交遊)하셨으며 숭조애족(崇祖愛族)의 일념으로 평생을 종사(宗事)에 진심갈력(盡心竭力)하시고 합천 시조(始祖) 산에 있는 옥전서원(玉圈書院)의 도유사로 다년 역임하시는 동안 많은 공적을 남겨 후손들의 귀감이 되었다. 따라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齋家治國平天下)``란 말과 같이 가정에서는 부모님께 지극히 효도하여 효자라고 남들이 일컬었고 자녀들에게는 극히 인자하져서 가풍을 바로 세웠으니 이웃 사람들이 많이 감화하여 본받음이 되었다.

동려 선생의 장손자인 원식(재부 부림면향우회 회장)씨에 따르면 ¨조부님께서는 극일(克日) 단체인 ``동락계(東洛 )`` 유사로 다년 역임하셨는데 이에 가담하여 활약하셨는데 연암(淵菴) 권재묵(權載默)선생과는 막역한 사이였으며 동지로써 서로 굳은 결의로 왜경(倭警)의 삼엄한 감시 하에 암약(暗躍)하셨다. 그 후 항일독립운동가 연암 선생의 ``동락계 사건``에 연루되었다. 평생을 두고 유교사상과 애국사상을 겸비하신 명망이 높은 분으로 추앙을 받다 향년 78세로 선화(仙化)하시니 문내 남여노유는 물론 생전에 교유하시던 사람들의 애석 속에 좌수산(左首山) 선영 하에 예장되셨다.¨고 회고했다. 동려 선생은 배위(配位)인 밀성 양만지(楊萬枝) 여사와의 사이에 2남3여를 두었는데 장남 영달 씨가 각고 17년 만에 ``동려유고(東旅遺稿)``를 간행(문화인쇄공사.1983.7)하여 세상에 빛을 보게되었다.

정영달 씨는 ¨유고 간행 당시 김해 신천초등학교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경남신문 김해지사장에게 유고를 한 권 준 바, 이 분이 한문이 능통하여 동려유고 간행기사를 주옥같은 문구로 대서특필, ``순 한문판(漢文版)이며 내용을 보니 애국지사규합회(愛國志士糾合會), 3·1절, 탄합방(歎合邦), 6·10만세사건 둥둥 애국운동이 듬뿍 실린 아주 알차고 값진 내용이라 후진들에게 산 교훈의 유고``라고 보도하였다. 이 기사를 보고 방문한 사람 중 경남대학교 총학생회장과 국한문과 대표 등 두 학생이 찾아와서 말하기로 ``애국사상이 농후한 유고라 하기에 때워서 애국심을 배양하는데 일조가 될까 싶어 찾아왔다``고 하기에 선뜻 두 권을 준 뒤 앞으로 많은 활용있기를 부탁하였으며 그 후 유고를 가장 유효하게 경향각처의 흥유석학(鴻儒碩學)에게 분포하였다.¨고 회고했다.

부림면 감암리 신계서원(新溪書院) 앞의 서기 어린 복된 자리에 왼쪽에는 동려 선생의 자친(慈親)인 남평문씨의 열부비(烈婦碑)가 서 있고, 오른쪽에 아들인 동려 선생의 비가 건립되어 있다. 의령군지에는 이질에 걸려 백약이 소용없는 남편에게 사람 고기가 좋다는 소리에 자신의 허벅지 살을 끓여 먹여 남편의 생명을 구했던 남평문씨는 열부편(烈婦篇)에, 동려 선생은 유행편에 각각 등재 돼 있다.
초계정씨 종인들은 ¨지난 85년 동려 선생의 비 제막식 당시 하연승(河然承) 의령군수를 비롯한 많은 명망있는 집례위원들의 참석 속에 정숙하고도 화기에 넘친 제막식이 대성황리에 이뤄졌다¨며 ¨하 군수가 비문을 보시고 ``이같이 학식과 덕망이 높을뿐더러 항일사상을 겸비하신 분은 회귀하시다``는 여운을 남겼다.¨고 증언했다.

정영달 씨는 ¨독립운동가 연암 선생의 업적이 늦게 발굴되어 만시지감이나마 향토사 담당자는 하루 속히 해당자료를 수집하여 세상에 빛을 보게 하면 좋겠다¨며 ¨동락계첩(東洛 帖)은 직계자(直系子)가 승계함이 당연한 것인 즉 장남 영달이가 가보(家寶)로서 소중히 보존하고 있으나 앞으로 필요하면 부림문화연구회 등에 기증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박해헌= 발행.편집인>
김용란기자 기자 / 입력 : 2004년 05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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