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5-05-22 17:18:02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뉴스 > 전체

‘궁류 총기’ 추모비, ‘그날의 멍에’ 벗는 역사적 계기 돼야

아, 1982년 4월 26일 그날
궁류 총기 난사 사건 발생
내년 40주기 어느덧 ‘성큼’

56명 사망 기네스북 등재
끔찍하고 참혹했던 그날
기억에서 이제는 놓여나야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582호입력 : 2021년 12월 23일
  1982년 궁류 총기 난사 사건 희생자 장례식 모습.                                         ⓒ 의령신문

  지난 11월 2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경상남도 의령 총기 난사 사건을 오래 기억하고 기릴 수 있게 추모비를 세워주세요.’ ‘저는 한 국민으로서 정말 부끄럽습니다. 2021년 이제야 1982년 경상남도 의령군 궁류면에서 벌어진 끔찍하고 참혹한 총기 난사 사건을 SBS 시사채널을 통해 비로소 정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40주기가 다가오는 지금까지 피해를 입으시고 돌아가신 많은 분들을 기릴 수 있는 추모비 하나 세워져 있지 않습니다. 알려진 사망자 수는 56명. 이외에도 기록되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는 분들도 있습니다. 유가족 분들의 마음을 위하지 않고 사례금에 언론까지 막은 이 아이러니한 사건 상황들. 절대 진정성 있는 태도라고 보이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유가족 분들의 마음을 위하는 것은 총에 맞아 돌아가신 누군가는 목숨 바쳐 많은 분들의 생명을 구하시고 돌아가신 이 분들을 위해 오래 기억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남은 사람들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친구 부모 자식 소중한 가족이었을 많은 분들을 꼭 기릴 수 있게 해 주세요 간절한 제 진심을 전하고 싶습니다.’

  또 다른 국민청원 ‘1982년 4월 26일, 의령 총기 난사 사건 위령비를 세워주세요.’ ‘2021년 11월 25일에 방영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를 시청하였습니다. 오늘의 이야기 주제로 ‘의령 총기 난사 사건’을 다루었습니다. 당시 경찰들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 화가 치밀어 올랐고 언론 통제에 화가 났습니다. 방송을 시청하고 난 뒤 ‘난 왜 이 사건을 몰랐을까?’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기네스북까지 등재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남은 유가족의 유일한 소망은 단 하나, 큰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위령비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땅히 국가에서 해 주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년 2022년 4월 26일이 40주기라고 합니다. 내년 2022년 4월 26일엔 유가족들이 위령비 앞에 서 있길 바랍니다. 지금이라도 더 늦지 않게 위령비를 세워 주세요. 부디 우리 모두가 그날의 일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하늘도 울고 땅도 울었던 그날. 내년 2021년 4월 26일이면 벌써 40주기이다. 당시 희생자 62명 중 1살부터 10대까지 12명이나 되는 무자비한 묻지 마 살인사건이었다. 일가족이 몰살한 집안도 있었다. 최근 SBS 시사채널에서 이러한 사건을 재조명 하는 등 부쩍 그날의 기억을 환기시키고 있다. <관련기사 2면>

 이 문제는 그동안 의령신문을 비롯하여 지역사회에서도 꾸준하게 제기돼 왔다. 군민을 대상으로 하는 위령비 건립 추진 서명운동, 의령군수를 비롯하여 군의원, 지역 국회의원, 경남도지사에게 호소하기 등이 진행됐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위령비 건립 추진 움직임이 구체화되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그날 끔찍하고 참혹했던 현장이 슬그머니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희생자와 손자들까지 그 직계들을 위하여 운영하는 궁류장학회는 쉬쉬하며 운영하여 그 소식을 애써 노력하지 않으면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처지에 이른 지 꽤 됐다.

 그 동안 총기 난사 사건의 장본인이나 국가 공권력을 당연하게도 탓했다. 하지만 내년 40주기를 앞두고 그날이 의령군민에게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이러한 과정에서 살아 있는 의령 사람들은 그동안 이 끔찍하고 참혹했던 문제를 위해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하는 질문을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면서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이야기를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까. 지역사회 내부에서 이 문제를 스스로 언급한 것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다들 마음속 깊디깊은 곳에 꾹꾹 눌러 숨겨두고 큰 잘못이라도 한 듯이 외부의 시선을 애써애써 외면하여 왔다. 그런데 의령경찰서는 홈페이지에서 궁류치안센터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1982.4.26일 총기사건 이후 이웃 간의 시기심과 비협조적인 풍조가 조성되었으나 경찰관 및 행정관청의 적극적인 순화활동으로 현재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라고 공개적으로 적고 있다.  ‘이웃 간의 시기심과 비협조적인 풍조’가 끔찍하고 참혹한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한 ‘저항’인데도 공개적으로 ‘경찰관 및 행정관청의 적극적인 순화활동으로 현재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 그렇게 적고 있는 것이다. ‘아픔의 기억’을 잊는다면, 비극은 또 반복 된다, 하는 냉정하고 엄격한 현실을 다들 아예 외면한 결과인 셈이다.

 지난 2019년 7월 11일 의령신문은 1면에 ‘궁류 총기난동 희생자 위령비 건립 추진, 좋든 나쁘든 역사인데 그냥 있어서야’ 하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다.
 ‘지난 1982년 궁류 우범곤 총기난동사건의 희생자를 위로하는 위령비 건립에 동의한다는 서명을 무려 3천500명에게 받고도 의령군, 의령군의회 등의 협조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2월 서명서를 첨부하여 의령군 군수, 경상남도 도지사에게 보낸다고 한 전병태(84) 위령비 건립 추진위원장에게 그 결과를 묻는 과정에서 확인됐다.

 지난 8일 오전 전병태 위원장은 결과물을 내지 못해 그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많은 사람에게 서명을 받고도 성사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하는 질문에 대하여 전병태 위원장은 당국이 협력하지 않아서 안 되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의령신문 보도 이후 2년 5개월만인 지난 2021년 12월 10일 전병태 어르신을 다시 찾았다. 그동안 서명운동 이후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40주기를 계기로 삼아 전력을 다하여 성사시켜야 한다, 이번에 안 되면 위령비 건립을 다시 추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지난 2019년 8월 29일 의령신문은 6면에 ‘‘총기난동 위령비 세워야’ 총론은 같이 하지만… ’ 이라는 제목으로 기획기사 ‘함께 만드는 지역 공동체’를 실었다. 이 기획기사에서 ‘지난 1982년 궁류면 우범곤 총기난동사건의 희생자를 위로하는 위령비 건립에 동의한다는 서명을 2019년 초부터 받아 서명자가 3천500명에 달하였다. 이는 의령군 인구의 12.8%에 해당되는 것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양민학살 사건에 대해 재심청구와 피해보상 요구가 제기되고 있다. 타 지역은 이념 문제로 발생된 그 시대의 아픔이었다면 우리 지역은 무고하고 순박한 주민들이 궁류에 살고 있었다는 이유 하나로 공권력에 의해 살해된 사건이다. 현 시점에 국가에서 당시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로 위령비 건립과 향후 추모제에 대한 대책이 나와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그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고 했다.’
 이에 대하여 지역의 여론 주도층은 1982년 궁류 총기난동사건의 희생자를 위한 위령비를 세워야 한다는 총론에는 모두들 뜻을 같이하면서도 추진위원회 재구성 및 이해 당사자의 의견 추가 수렴 등 각론에서는 의견을 다소 달리 하여 답변하기도 했다.

 이렇게 위령비 건립이 주춤거리는 사이 끔찍하고 참혹한 총기 난사 사건의 현장이 슬그머니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2019년 11월 14일 의령신문은 7면에 ‘‘아품의 현장 주민 품으로… ’ 역사 속으로 떠난 총기난동 현장’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다. 
 
 ‘1982년 하늘도 울고 땅도 울었던 그날 우범곤 총기난동사건이 시작된 옛 궁류지서 무기고와 숙소 등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의령군으로부터 예산을 받아 화단이 있는 자리에 장애자 주차시설을 하고 무기고와 숙소를 철거한 자리에는 팔각정 쉼터와 주민들의 주차장을 설치하여 흉물처럼 보이는 치안센터를 주민의 휴식문화공간으로 새 단장했다.
 카빈 2정 실탄 129발 수류탄 6발을 들고 나왔던, 부모 형제마저 인수를 거부한 우 순경의 시신이 수습됐던, 지나칠 때마다 몸서리치며 시선을 애써 외면했던, 불안한 민심의 동향을 숨 죽여 가며 조심조심 살피던 시선들이 머물렀던, 그 이후 40년 가까이 마음속으로 꾹꾹 눌러 삭였던 그 참혹했던 사건의 현장.

 그러나 ‘좋든 나쁘든 역사인데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그날 기억의 현장인데 40년 가까이 가만히 있더니 그렇게도 쉽게 허물어버려서야… ’ 하는 아쉬운 정서도 만만치 않아 씁쓸한 뒷맛을 남기기도 하고 있다.’

 참사가 날 때마다 희생자를 기리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동시에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도록 교훈 삼자는 취지로 위령비 등의 조형물을 세우곤 한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위령비의 존재는 잊혀지고, 또 다시 인재가 되풀이된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과 관련하여, 가슴 아픈 일도 시간이 지나면 잊는 것은 힘든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라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의령에서는 위령비조차 세우지도 못하고 있다. 지난 2019년 8월 29일 의령신문 6면 ‘‘총기난동 위령비 세워야’ 총론은 같이 하지만… ’ 이라는 제목의 기획기사 ‘함께 만드는 지역 공동체’에서 황성철 의원은 “궁류면 우범곤 총기난동사건은 당시 우리 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전국적으로 이슈화되었던 비극으로서, 희생자를 위로하는 위령비 건립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러한 취지와는 별개로 총기난동사건의 피해자 당사자 또는 유족들 간 위령비 건립과 추모제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대타협이 우선 있어야 할 것이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아픔을 겪은 분들은 위령비나 추모제가 억지로 잊고 살던 아픈 기억을 다시 상기시킬 수도 있는 아이러니한 상징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군민 다수가 찬성하더라도, 이해 당사자의 의견을 더 수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위령비 건립을 어떻게 할 것인가. 위령비 건립을 추진하는 전병태 어르신은 1982년 12월 20일부터 1991년 8월 20일까지 8년 8개월 동안 제18대 궁류면장을 역임했다. 총기 난사 사건으로 불안한 지역 민심을 달래기 위하여 희생자 유가족을 면장 자리에 앉혔다. 그 재임 과정에서 다소 불협화음이 있었다며 그 후유증을 말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전병태 어르신은 “의령군민들이 이래 있으면 안 된다. 좋든 나쁘든 역사인데 그냥 있어야 되나. 위령비라도 세우야 된다. 자식 잃고 마지막으로 꼭 해야 되겠다. 내가 안 하더라도 누구라도 해야 되는데 그래 할 만한 젊은 사람이 없는 기라. 전부 객지 다 나가버리고. 나는 깡다구가 있어서 엎어지고 자빠지는 한이 있어도 하고자 하는 기라”고 단호하게 말한 바 있다.

 이에 더하여 고태주 경남서부권발전협의회 의령지회장은 공권력에 의해 무고한 의령군민이 희생된 것도 억울한데 40년 동안 위령비 하나 건립하지 못하고 위령제 한번 제대로 모시지 못해 의령사람으로 부끄럽고 죄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타 지역의 이념 갈등기에 희생된 민간인은 국가 차원에서 위령탑은 물론 위령제를 모시고 있지 않느냐며, “궁류 총기 난사로 희생된 우리 이웃은 믿고 의지하던 경찰에 의해 살해된 것이다”고 하면서 이는 반드시 국가 차원에서 희생자와 가족 그리고 의령군민을 위해 나서 주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 회장은 앞으로 희생자 가족과 상의해서 사건이 일어난 궁류 장터나 지서(치안센터) 주변에서 위령비 건립 촉구대회를 개최하고, 각 사회단체와 경남 각 시군 의회 등의 협조를 얻어 의령 총기 난사사건 희생자를 위한 위령비 건립 촉구 성명서를 받아 중앙정부 기관 등에 제출하여 희생된 지 40년이 지나가는 내년에는 꼭 위령비를 세울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위령비를 꼭 세워야겠다는 전병태 어르신은 是(시)인가 非(비)인가. 끔찍하고 참혹한 총기 난사 사건 40주기를 맞이하면서 이제는 결론을 내려야 하지 않나. 무슨 잘못을 한 것처럼 애써애써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는, 그리고 스스로를 옥죄는 멍에를 더 이상은 지고 가지 말아야 한다. 위령비를 세우든, 세우지 아니하든. 그래서 묻습니다. 군민 여러분의 선택은 무엇입니까? 유종철·전재훈 기자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582호입력 : 2021년 12월 23일
- Copyrights ⓒ의령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많이 본 뉴스 최신뉴스
의령신문, 사내 저널리즘 교육..
56년차, 나이가 대수냐… 세대차 뛰어넘은 대의초 총동창회..
“사랑·화합·소통하는 궁류인”..
신반정보고 학교운영위원장 정성기, 의령군 협의회장 선임..
의령군 새마을부녀회, “새마을 孝 편지쓰기” 운동 전개..
1999년 폐교된 가례초 갑을분교에 ‘의령군 살아보기’ 임대주택 건립..
용덕면민 체육대회·어르신 한마음 축제 성료..
칠순 이벤트로 훈훈했던 제33회 의동중 동창회 한마음 축제..
의령홍의장군축제 참가 단체, 의령군장학회 장학금 580만원 기탁..
제11회 경상남도 발달장애인 축구대회 성황리 개최..
포토뉴스
지역
독립운동가 안희제 발자취 좇는...'백산 나라사랑 너른마당' 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