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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인물 연구회 준비위원 ·17-18대 국회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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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권의 의령 이야기
정곡면의 호암생가(湖巖生家)
정암(鼎巖) 이야기를 했으니 내친김에 정곡면의 호암생가(湖巖生家)로 가보자. 정암루가 의령군에서 선정한 의령 9경 중 제5경이고 호암 이병철 생가는 제9경이다. 어떤 연유로 9경의 순서가 매겨졌는지 몇몇 분들에게 물어보았지만 속시원한 답을 얻지는 못했다. 호암생가는 정곡면 중교리 담안마을에 있다. 의춘지(宜春誌) 기록을 보면 중교리는 경주이씨의 세장(世庄)이다. 실제 담안마을에만 경주이씨 문중의 강완재(江浣齋)와 도계재(陶溪齋)가 있고 화헌(和軒) 이종욱(李宗郁)을 기리기 위해 지은 중화당(中和堂)이 선산밑에 있다.
정암루에서 호암생가까지는 차로 10분 거리다. 가는 길 좌측에 용덕면 출신 삼영요업 이종환 생가도 있다. 길의 이름도 부자대로고 공용주차장에서 생가까지 걸어 들어가는 마을 길 이름도 부잣길이다. 마을 입구에는 금두꺼비상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금능만능주의의 세태가 만든 결과인가 씁쓸한 기분도 잠시다 잘 정돈된 마을 전경과 입구에 조성된 넓은 꽃 밭에 금세 기분이 환해진다.
1851년 호암의 조부가 지었다는 생가는 17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전통 한옥의 고고한 자태를 잘 간직하고 있다. 풍수가들은 삼성 창업주의 생가에 걸맞은 해석을 내놓으니 생가 터는 주변 산들이 곡식을 쌓아놓은 것 같은 노적봉 형상이고 산의 기운이 생가 터에 혈(血)이 되어 맺혀있어 그 지세가 융성할 뿐만 아니라 멀리 흐르는 남강 물이 천천히 흘러가는 역수(逆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입을 모은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이 경우에도 틀리지 않다. 삼성가(家)의 가훈은 목계(木鷄)다. 장자(莊子)에 나오는 말로 주나라 선왕의 싸움닭 일화에 유래한다. 나무 닭은 울지 않으니 상대가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덤벼도 조금의 동요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목계의 초연함과 의연함은 리더의 필수 덕목이라 할 것이다. 1936년 호암이 마산에서 협동정미소를 창업한 이래 무수한 풍랑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삼성이 세계 굴지의 대기업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바탕에는 목계의 의연함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시대는 바뀌었다. 이윤추구가 기업의 목적이던 시절은 지났다. 돈 잘 버는 삼성만으로는 미래를 헤쳐 나갈 수 없다. 이윤 창출의 과정과 이윤 분배의 결과가 정의와 공정이라는 시대적 가치에 부합해야 한다. 우리나라 대표기업 삼성이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와 공동선을 선도하는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우뚝 서길 기대하며 부잣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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