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강홍의장군기 첫 제작
의령군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고증
붉은 비단에 글만 적어
규모 기록은 찾을 수 없어
이번에 의령관문에 곽재우의병부대의 천강홍의장군기를 비롯하여 문기, 대오방기, 초요기, 순시기, 영기 등 40여 기의 깃발이 내걸렸다.
특히 청강홍의장군기는 붉은 비단에 천강홍의장군이라고 적은 깃발로서 옛 기록을 근거로 처음으로 의령군에서 제작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인터넷 위키백과는 ‘기(旗, flag) 또는 여괴(旟旝)는 직물 조각에 특유의 도안을 인쇄한 것 또는 그 도안으로, 상징물, 신호, 장식, 광고 등의 목적으로 사용된다. 기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사용 목적, 도안, 게양 방식 등이 있다. 기는 오랫동안 군사 목적으로도 사용됐으며, 때문에 기를 의미하는 표현이 군사 편제에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깃발에서 도안, 군사 편제 등을 살펴볼 수 있어 역사 현장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쏠쏠한 재미를 더한다.
의령관문을 바라봤을 때 왼쪽에서부터 또 오른쪽에서부터 천강홍의장군기를 비롯해 문기, 대오방기, 초요기, 순시기, 영기 등이 똑같이 차례대로 내걸려 있다.
이 깃발의 의미는 무엇일까.
먼저 천강홍의장군기. 천강홍의장군기는 곽재우의병부대의 고유깃발로 조선 정조 때 학자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홍의장군전에 나오는 내용을 고증하여 제작하였다. 이 기록에 의하면 곽재우장군은 정암진전투 등에서 날쌘 장수 10여명에게 똑같이 백마에 붉은 전포를 입히고 천강홍의장군이라고 쓰인 붉은 깃발을 들게 해 왜군들을 유인하고 혼란을 주었다고 한다.
이 깃발은 의병관문에 내걸린 깃발 중에서 으뜸돼 전국에서 처음으로 의병을 창의한 곽재우장군의 엄숙한 결기를 드러내는 상징물을 기대했다. 하지만 붉은 비단에 천강홍의장군이라고 한자만 적혀 있었다. 규모는 기록을 찾을 수 없어 다른 깃발과 똑같이 만들었다.
이와 관련 의령군 관계자는 “의병의 도시 의령군을 널리 알리고 의령군민의 정체성을 드높이기 위해 의령관문에 의병깃발을 내걸었다. 의병교에도 의병깃발을 내걸 계획이다”라며 “왜군들에게 혼란을 주기 위해 사용한 오지거 횃불을 가로등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라고 했다.
천강홍의장군기 옆에 있는 문기. 문기는 오방색으로 각각 2개씩 만들어 군영의 네 문과 중앙에 두었다. 기의 중앙에는 날개 달린 호랑이(익호翼虎)를 그렸다. 방위의 색깔에 따라 각각 2개씩 마련하여 모두 10개를 준비하며, 도련은 모두 황색이고 깃대 위에는 큰 구름무늬와 찬란한 쇠칼날을 꽂았다.
대오방기는 모두 구름모양을 그렸고 불꽃이 있었다. 외루의 문표에 세워 두는 것인데, 소속한 모든 영에게 명령하는데 사용했다. 중앙에는 용, 범, 새, 뱀, 거북을 그리되 색깔은 각 부대의 방위에 따르고, 기폭의 가(도련)에는 기의 색과 상생하는 색을 사용. 깃대의 끝에는 붉은 실로 꿩 꼬리깃(치미雉尾)를 달았다. 대오방기에는 청룡기 백호기 황룡기 주작기 현무기 등이 있었다.
초요기는 예하 장수를 소집하고 지휘하는데 사용했다. 대장 이하가 모두 가지고 있었다. 순시기(巡視旗)는 군중에서 죄를 지은 자를 적발하고 처벌하는 임무를 맡은 순군(巡軍)이 소지했다. 임금이 거둥할 때 사용하는 어전(御前)의 순시기는 붉은 바탕에 '巡視'라는 글자를 푸른색으로 새겨 붙였다. 영기(令旗)는 영전, 영패와 함께 장수의 명령을 전달하는데 사용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