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념일 ‘의병의 날’에 대한 小考
무애 박재호
임란의병 최초 발상지로서 ‘의병의 수도’로 자부하는 의령군이 10월 15일부터 24일까지 10일간 군민 800명을 대상으로 한 ‘의병의 날 기념식 및 축제관련 군민의향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내년부터 의병의 날 기념행사는 6월1일에 개최하되, 국가기념일이 제정되기 전까지 군민행사로 계속해 왔던 제사와 축제를 겸하는 ‘의병제전’ 행사는 4월22일에 개최하겠다고 밝히면서 의령군의 행사변경방침이 사리에 맞는 일인가를 두고 내외 군민들의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 논란의 한 편은, 1971. 11. 17.∼2010. 05. 25. 장장 40년의 세월에 걸친 내외군민의 열정과 노력으로 국회청원과 학술대회 등 매우 어려운 과정과 절차를 거쳐 제정된 국가기념일 ‘의병의 날’ 행사를 겨우 5년 만에 그 취지와 배경을 퇴색시킬 수 있으니 신중히 결정하라는 것이다. 또 한 편은, ‘의병의 날’ 기념일의 이름이 포괄적이라 홍의장군 곽재우와 임란의병의 기념의미를 희석시킬 뿐만 아니라 6월1일은 농번기와 더위에 겹쳐 군민 참여율이 저조하므로 내외에 돋보이는 국가기념일 행사로 치룰 수 없는 어려움이 있어 기념식으로 가름하고, 대신 축제행사는 4월22일에 개최하여 ‘의병제전’의 명칭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두 측의 주장은 모두 충분한 일리가 있다. 그러므로 모두 일리가 있는 양측의 논란을 원만히 통합시킬 수 있는 대안은 먼저 ‘의병’의 정의와 그들의 활동에 대한 사료(史料)와 기념일 제정의 근거자료를 찾아 접근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으로 필자의 소견을 밝힌다.
‘의병’은 나라가 위태로울 때 나라의 부름이나 명령이 없더라도 뜻있는 백성들이 나라와 겨레를 지키겠다는 일념에서 스스로 군사를 일으키고 무장하여 외적에 대항하여 목숨을 바쳐 싸운 민병을 일컫는다.
의병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고려시대에 1221년(고종8)부터 무려 38년간 침략과 노략질을 되풀이해 온 몽고군과 1259년(고종46) 화의에 이르기까지 고려의 일반민중이 각 지방에서 용감하게 싸워 격퇴시켜 왔다는 의병전투의 기록이 있는 등 그 옛날부터 주로 향리와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일어났던 소규모의 의병은 있어왔다. 그러한 우리 정신문화 계승의 산물로서 임진왜란을 맞아 “충청도 옥천의 趙憲, 경상도 의령에서 기병하여 의령·창령 등지에서 왜적을 섬멸하고 진주에서 金時敏과 함께 적병을 격퇴한 郭再祐, 전라도 장흥의 高敬命, 2차 진주전에서 전사한 金千鎰, 경성·길주의 鄭文孚 등은 유명한 의병장이었다.”라는 내용은 읽을 수 있으나 곽재우장군이 ‘전국최초’로 의병을 일으켰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다(邊太燮 著, ‘韓國史 通論’참조).
뿐만 아니라 백과사전을 들추어 봐도 「곽재우. 1552(명종7)~1617(광해군9).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으로 기록되어 있을 뿐이며, 우리역사사전(김혜경 엮음)의 기록도 백과사전과 같다. 그러므로 곽재우장군이 ‘전국최초’로 의병을 일으켰다는 객관적 사료 근거를 찾기가 어렵다는 점도 이참에 알아야 한다.
또한 제2회 ‘의병의 날’ 국가기념행사를 개최한 바 있는 경북 청송군 부동면 상평리 <항일의병 기념공원>에는 “우리 청송은! 대한민국의 건국공로 독립운동 유공자로 포상·추서된 의병 유공선열을 전국 시·군중 가장 많이 배출한 자랑스러운 충의의 고장이다.”라고 안내되어 있음을 보면, 독립유공 선열들도 ‘의병’으로 지칭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임란의병(壬亂義兵.1592)뿐만 아니라 을미의병(乙未義兵.1896년), 병오의병(丙午義兵.1906년) 등 전국에서 항일 투쟁에 참여하였던 모든 의병영령들을 총망라하여 그들의 희생정신과 호국정신을 추모하고 후대에 계승시키고자 ‘의병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하게 된 것이지 특정 의병장이나 지역을 대상으로 제정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특히 국가 보훈처는 2009년 발행한 대한민국 독립유공인물에서 대한민국 건국공로·독립유공자로 포상·추서된 1,927명을 ‘의병유공 선열’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등 ‘의병의 날’ 국가기념일이 곽재우장군 등의 임란의병만을 대상으로 제정된 것이 아님을 먼저 알면, “‘의병의 날’ 기념일의 이름이 포괄적이라 홍의장군 곽재우와 임란의병의 기념의미를 희석시킨다.”는 의령군의 설명은 근거 있는 주장이고 맞는 말이다.
한편 국가기념일은 정부가 발의하거나 민간단체 등의 청원에 의해 국회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령으로 발효되는 기념일로서 달력을 들추어 보면 우리가 들어본 적도 알지도 못하는 국가기념일이 수두룩하여 20여개가 넘고 공휴일로 지정되지 않은 날들이 많다. 국가기념일에는 그 지정취지에 맞는 추모제향, 다짐, 기념, 감사, 공경 등의 의미가 담긴 의식행사가 주로 행해지지만 국비를 지원하는 예는 드물고 부수적인 축제행사를 함께 치루는 경우도 있다. 의령군이 이름을 되찾겠다고 하는 4월22일의 ‘의병제전’은 의령군민의 축제일 뿐 국가기념일 행사라고 할 수는 없다.
‘의병의 날’ 국가기념일은 민간단체인 ‘의병제전위원회’를 중심으로 1971년 의령군민들이 전국 최초로 청원하였다. 40여 년 동안 내외군민을 아우르고 이끌어 오셨던 지역 원로 어르신들과 역대 군수님들을 중심으로 많은 내외 의령군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공로로 항일 의병활동의 중요성을 전국적으로 부각시키고 그들의 호국이념과 희생정신을 계승시키는 범국민적 국가기념일을, 곽재우 홍의장군이 의병을 일으킨 음력 4월22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6월1일을 ‘의병의 날’로 제정되게 하는 역사적 위업을 달성하게 되었고, 제1회 국가기념일행사를 국무총리가 참석하여 우리 의령에서 개최하게 되었던 것이므로 그 의미를 퇴색시켜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맞는 말이다.
다만, 대다수 관내 군민들은 ‘의병의 날’ 기념행사 논란보다도 우선 피폐한 지역경제를 어떻게 살릴 수 있을 것이며 날로 줄어드는 인구는, 노령인구 전국수위의 과제는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지역 살리기의 현안이고,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지역 실정에 맞도록 ‘의병의 날’ 기념행사내용을 조정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살기 어려운 군민들의 형편은 살피지 않고 그동안의 공적들을 배경으로 의령군의 행사내용 변경방침에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숲을 보고 나무를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라는 지배적인 군민여론이 지금 의령군을 곤혹스럽게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설령 대부분의 관내 군민 정서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의령군이 3만 군민의 2.7%(향우포함 30만 군민의 0.27%)인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하나로 국가기념일 행사 내용을 변경하겠다고 밝힌 것은 여론조사의 방법이나 설문의 내용, 조사대상 군민의 선정 등에서 신빙성·신뢰성을 가질 수 없으므로 졸속하고 성급한 행정실례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할 것이고, 대다수 내외군민들도 의령군의 방침에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의병제전’이든 ‘의병의 날’ 국가기념일이든 내외 의령군민이 재원조달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며 내외군민의 자긍심, 자부심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정당지지도 여론조사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는 말이다.
무려 40년의 세월동안 ‘의병의 날’ 국가기념일 제정을 위해 안팎의 군민들이 각고의 노력을 다하고 있을 때 이웃집 잔치구경 하듯 팔짱끼고 뒷짐 진 채 바라만 보면서 무관심했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개선장군처럼 언로(言路)를 점령하여 신뢰성 없는 소수 군민의 여론조사 결과를 들이대며 재원조달 방법 등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도 없이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려 드는 것은 그동안 애써온 많은 내외군민들의 공로를 잊어버린 오만한 처사로 오인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군민여론조사는 참여범위를 크게 늘려 전문기관에 용역을 맡김으로써 행사내용변경과 재원조달 방안 등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하고 공감대를 확산시키는 것이 최우선적으로 재고되어야할 과제다. 그런 뒤에 지역신문 등을 통해 충분한 홍보를 거치는 것이 내외군민과의 소통이고 신뢰받는 행정의 모습일 것이다. 그래야 내년 ‘의병제전’이나 ‘의병의 날’ 행사가 순조롭고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필자가 특별히 이런 고언을 드리는 것은, ‘의병의 날 국가기념일 제정 청원’ 초기에 지역원로 어르신들의 뜻을 받들어 온 20대 후반의 젊은 문화공보계장으로서 충익사 경역조성사업을 담당하였으며, 청와대의 부름을 받아 박정희 대통령님의 준공식행사 참석을 준비하는 등 ‘의병의 날’ 국가기념일 제정 관련 군민참여의 한 분야 실무를 담당했던 사람으로서 ‘의병의 날’ 국가기념일 제정에 대한 자긍심, 자부심이 그 누구보다도 강한 향우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며, 논란의 양측은 모두 “오직 군민이 중심에 있다는 애향심”으로 대승적 차원의 지역민심통합에 임해 주실 것을 바라는 충정에서다. 의령군은 신중하게 대처하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