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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이 장사꾼 노릇 하기

박래녀
편집부 기자 / 입력 : 2011년 11월 19일











▲ 박래녀
가을, 농부에게는 고달픈 달이다. 참깨를 털고 마늘과 양파를 심고, 나락을 타작해 곳간에 쌓고, 낮은 수매가에 한숨을 쉬면서도 내년 농사를 접을 수 없는 것이 농부다. 잦은 비와 이상기온에도 제 철을 잊지 않고 알차게 영글어 준 곡식과 과일이 고마워서 수확을 서두는 것이 농부다. 값은 고하간에 일 년 동안 공들여 키운 것이니 콩 한 알이라도 가볍게 취급할 수 없는 것이 농부다.


“농사지은 건데 좀 싸게 주세요.”


이 말은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의 소치다. 봉급쟁이는 아무리 쥐꼬리만 한 봉급이라도 매달 나오는 금액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지만 농부는 농산물을 팔아야 그 돈으로 생계가 해결된다. 농부는 일 년 내내 피땀 흘려 가꾼 농산물을 헐값에 처분해야 하거나 덤이라는 이름으로 끝없이 제 욕심만 챙기는 소비자의 억지거래에 응해야 할 처지에 놓이면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한숨만 쉰다.


지금 단감농가는 초비상이다. 날씨는 한여름을 방불케 했다가 갑자기 추워져서 서리를 동반하질 않나. 수시로 비가 오락가락하질 않나. 단감은 하루가 다르게 농익고 있다. 적기에 따주지 않으면 상품 가치가 없는 단감이다. 단감농가의 고단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손 하나가 아쉬운 판이다. 손익계산 역시 뒷전이다. 단감 가격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도 관심 밖이다. 오직 하나, 서둘러 단감을 따내는 일이 급선무다.


우리도 단감 농사를 짓는다. 단감을 제철에 팔아보려고 거리 장사에 나섰다. 작은 이문이라도 더 남겨보려는 발버둥의 소치다. 농사꾼이 장사꾼으로 변장하는 것은 쉬운데 진짜 장사꾼 노릇은 어려웠다. 물건은 좋은데 비싸다. 덤을 더 달라. 가격을 깎아 달라. 손님의 청 다 들어주면 고생만 실컷 하고 밑지는 장사밖에 못할 판이었다.


다행히 노점상 언니가 생겼다. 부산에 살면서 이웃 마을에 대봉 감 농사를 짓는 남편 친구 부부가 우리와 합쳤다. 아저씨는 남편과 같이 단감을 따고, 언니는 나와 거리 장사를 했다. 대봉과 단감을 길거리에 차렸더니 훨씬 어울리는 노점상이 되었다. 나보다 연배인 언니는 참 야무진 살림꾼이다. 손님의 인정에 끌려 자꾸만 헤퍼지는 내 손에 급브레이크를 건다.


“덤 좀 작작 퍼 조라. 그리 퍼주고 남는 게 있겠나.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이렇게 고생하는데. 그렇게 퍼 줄 바에야 공판장으로 보내고 편하게 사는 게 낫지.”


언니의 일침에 궁색한 변명은 늘 이렇다.


“농사지은 거니까.”


공짜로 지은 농사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나 역시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의 소치를 그대로 답습한다. 단감 한 개를 정상 품으로 키우기 위해 내가 흘린 땀을 생각하면 답은 금세 나오는데도. 밑천은 또 얼마나 많이 드는가. 거름 값, 인건 비, 비료 대, 농약 값 등등, 발품, 손품, 정성 품까지 다 합치면 단감 한 개 가격이 적어도 몇 천원은 되어야 농사꾼이 사는데.


벌써 단감 수확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가을, 손익 계산 따질 새도 없이 겨울초입에 섰다. 겨울, 동장군도 무섭지 않다. 왜냐면 나는 농사꾼이 장사꾼 노릇도 푸지게 하고 있으니까.

편집부 기자 / 입력 : 2011년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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