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기념관 없는 우리의 현실 안타까워
온천장을 내려오는 길에 국가유공자의 위폐를 모신 충렬사에서 진행하는 위병교대식을 보면서 국공내전이 아직도 진행 중임을 알 수가 있었다. 필자는 내전이라는 말이 달갑게 들리지 않는다. 우리의 6․25나 중국의 국민당 공산당의 전쟁은 영토전쟁이라기 보다는 동서냉전의 산물로서 이념전쟁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누가 더 인류를 행복하게 할 것인가를 놓고 고심한 것이 이데올로기 등장의 배경이기 때문에 누구를 탓하기에는 곤란하다. 20세기 초 역사의 원동력인 노동과 잉여가치를 균등하게 분배하여 이상세계를 건설해야 한다는 공산주의 이론의 등장을 놓고 세계의 지성들은 인간성 회복 운동으로 착각하여 환호성을 올렸다고 한다. 일부 소수의 철학자들이 까르마의 높낮이를 무시하고 인위적인 평등을 추구하는 공산주의는 일종의 파괴논리로서 인류의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 할 뿐이었다.
장개석과 국민당은 국공내전에서 비록 패배하여 대만으로 쫒긴 신세가 되었지만 지금 중국 공산당이 자본주의의 근간인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무섭게 도약하는 현실 앞에서 인류보편의 가치를 지키고자 절박한 선택을 한 장총통의 충정이 중국 역사에 어떻게 부각 될 것인지 자못 궁금해지기도 하였다.
다음 코스는 세계 4대 박물관의 하나인 국립 고궁 박물관으로 무려 70여만점의 유물이 소장되어 있다고 하였다. 국공 내전시에 용케도 대만으로 이동 하였는데 원시시대부터 석기시대 송원 명 당 청 중화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8000년 역사를 알게 할 뿐만 아니라 찬란했던 대제국의 면모를 알 수가 있었다.
각종 도자기에 새겨진 문양, 정교하고 섬세한 각종 조각품 등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진귀한 보물들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도자기 등 소장품들에는 어김없이 용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들 중 용의 발가락이 5개인 것은 임금님이 사용하셨던 물건이며 4개 이하는 신하가 사용했던 물건 즉, 발가락 숫자는 신분의 서열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주나라 시대 영토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직경 30cm정도의 청동기 쟁반에 토지 계약서를 새긴 것은 주나라 시대의 청동기 문화를 알 수 있게 했으며 공주가 시집갈 때 임금이 하사 했다는 비치로 만든 비치배추, 작은 올리브 씨로 조각한 배, (현미경으로만이 확인가능) 상아로 만든 찬합 등 정교한 조각술에 넋을 잃고 말았다. 진귀한 많은 전시품을 감상하기엔 너무나 시간이 부족 하였다. 이 같이 역사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데 문명의 발상지인 저 대륙이 유물론에 천착한 공산당 출신의 졸부들이 판을 치고 있다하니 참으로 걱정이 태산이다. 지고의 가치를 완성하고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정신문명의 대변혁은 전통적 가치위에서 꽃 피울 때 가능한 것이지 공허한 정신 상태에서 일구어낸 외적인 성취는 모래성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정이 너무 빡빡하여 시장기를 느끼면서 까지 타이완 시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101층 건물까지 관람하였다. 좀 일찍 호텔로 돌아와 우리 일행은 옹기종기 한방에 모여 여행담으로 피로를 풀기도 하였다.
마지막 돌아오는 날에 장개석 총통에 대한 숭고한 경의와 그리움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국민들과 화교들의 성금으로 1980년 4월에 완공 했다는 중정(장개석 총통의 호) 기념당을 돌아보았다. 기념 당 앞에서 남녀 고등학생들이 우리의 최신 유행가인 노바디 음악에 맞추어 무용을 하고 있어 한류의 열풍이 대단함을 실감 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우리 액션배우 배용준의 인기는 가히 천정부지라 배군이 이곳 호텔에서 사용한 1회용 칫솔 하나가 무려 30만원에 경매 된다하여 놀라기도 하였다. 바야흐로 문화와 정보가 지배하는 시대 한민족이 대웅비의 나래를 펼칠 조짐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것만 같아 가슴이 뿌듯하였다.
기념당의 전면 좌우로 국립 음악당, 국립극장이 삼각형 모양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기념 당의 본건물의 높이는 70m로 건축물 아래 양측의 계단의 수 89 계단은 장 총통의 89세의 일생을 뜻한다고 하였다. 전시관에 는 장총통께서 국부 손문의 유지를 받들어 공산당 타도를 위한 동정과 북벌 및 일본에 항전을 이끌었고 중화민국의 현대화를 위해 일생을 바친 사진들과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모택동의 공산당은 이제 계획 경제를 포기하고 자유민주주의 근간인 시장경제를 받아들임으로써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불과 50년간의 공산독제 체제가 8천년의 찬란한 유무형의 역사를 부정하고 남긴 상처가 실로 엄청날 것이다. 전통적 가치가 말살된 상태에서 무분별한 난 개발과 허장성세는 동아시아는 물론 인류의 재앙이 될 지도 모른다. 장 총통의 검소한 집무실과 사람들을 평등하게 맞이하기 위하여 서랍장이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이 퍽 인상적이었고 머지않아 중정 기념당이 대륙으로 상륙하리라는 기대가 되기도 하였다.
기념당을 돌아보면서 정말 부러웠고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안타까웠다. 한국의 단체 학생들이 전시관 안의 박정희를 아무도 몰라 충격을 받았다는 가이드의 설명에 충격을 받은 우리 일행들도 하나 같이 국부인 이승만 대통령과 근대화의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의 기념관을 하루속히 세워야 한다고 하였다. 식민지 시절 박 대통령이 일본군에 들어갔다고 친일로 매도하는 좌파들이 있지만 박 대통령이 이룩한 토대위에서 삼성이 소니를 이기고 포스코가 신일제철을 제치고 현대 자동차가 도요다를 뒤쫓는 등 곳곳에서 일본을 극복하고 있는 기적의 토대를 누가 만들었는지를 모른다면 우리는 다시 역사의 미아가 되고 말 것이다.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우는 유익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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