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관의 대만 여행기- 상

이병철 회장과 같은 고향 자랑스러워

▲ 대만의 장춘사

청년시절 방랑벽으로 인해 떠돌이 생활을 많이 한 탓인지 특별한 목적이 아니면 여행을 하지 않는 필자가 대만 행을 하게 된 것은 평소 살갑게 지내온 토요포럼 식구들과 함께하는 여행이기 때문이었다. 지천명을 지나면서부터는 자연을 감상하기 보다는 사람의 깊이를 관찰하는 것을 즐겨하는 관계로 함께 동행한 10명의 포럼회원들은 나의 또 다른 여행목적지나 다름없었다. 처음 방문한 놀이공원 소인국은 대만과 중국 유럽의 모형까지 실감 있게 조성되어 있었고 인본의 대판성과 경주의 불국사까지 전시되어 있었는데 자금성과 만리장성의 모형이 당연 압권이었다. 1925년 노벨문학상을 거부한 대문호 버나드 쇼가 만리장성을 관광하자는 권유에 “내 영혼 속에는 이미 더 길고 높은 성을 쌓아 놓았는데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면서 인간의 하찮은 모조품을 왜보러 가느냐.”고 거절하여 세인들을 놀라게 했다는 생각이 떠올라 모조품의 복제품에 감탄하는 자신이 좀 민망해 지기도 했다.

소인국의 만리장성 모형.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석식을 하고 타이페이 최초의 사원 용산사를 방문 하였다. 용산사는 1738년 세워진 사찰로서 여러 재해를 거치면서 수차례 재건축되었는데 관음보살과 마조 대사와 무사의 사표이신 관우장군 등 많은 신들을 모셔 놓았는데 그 신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난다고 하였다. 고해바다를 건너는 수많은 중생들이 저마다 향불을 손에 들고 지극 정성으로 신들에게 소원을 빌고 있었다. 도심에 있는 관계로 늘 참배객들이 북적인다고 한다.

다음 날 여정은 3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동해바다 쪽 화련이었다. 차창 밖으로 전개 되는 산과 바다 그리고 평원이 조화를 이루며 뻗어있는 자연 경관에 도취되다 어느 듯 대리석과 옥 광산의 고장인 화련역에 도착하였다. 대리석 공장에서 제공하는 중식을 먹고 진귀한 공예품들을 감상하였다. 옥과 대리석의 빛깔이 너무나 오색찬란하여 색을 칠해 구운 도자기 같기도 하였다.

인구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원주민 아미족의 민속춤을 관람하면서 함께 어울려 잊혀져간 세월에 망중한을 달래고 대만 국립공원 대협곡으로 향하였다. 장개석 총통의 아들 장경국씨가 군인과 죄인들을 동원 협곡을 따라 화련과 대중시 (대만 중부 내륙지방)를 잇는 동서 관통도로를 건설하였으며 이 도로에는 제비가 집을 짓고 산다는 제비굴과 창자처럼 굽이도는 구곡동 협곡을 지나 자모교까지 약 20km가 관광 코스가 되어 있었다. 산자수려하여 바깥세상과는 단절된 듯 자연과 인간의 노력이 어우러진 장관으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도끼로 찍은 듯한 수백m의 단애 절벽의 간격이 겨우 10여m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수억만년의 세월동안 폭풍우와 홍수로 인한 침식 작용에 의해 형성된 대자연의 신비였다. 연자 곡 천길 절벽 건드리면 무너질 듯하였고 도로 건설에 희생된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창건한 장춘사의 갈라진 폭포는 누가 그린 그림만 같았다. 영겁으로 이어지는 대자연의 위용 앞에 찰나의 삶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내 삶의 부피가 너무나 초라하게 여겨지는 순간이었다.

그림 같은 장춘사 전경.

3일째는 타이뻬이 북쪽 기륭이라는 해안도시에 있는 아류 해상공원을 돌아보았다. 1천 1백만 년의 침식과 풍화 작용으로 셀 수도 없는 버섯 모양의 바위가 다양한 자태를 뽐내면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폭풍우와 거친 파도에 의하여 기괴한 형태를 하고 있었는데 아직도 진행중인 상태여서 수십년 후면 해상공원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자연이 만들어낸 장관을 자연이 도로 가져가겠다는데 한낱 인간들이 어찌 하겠는가……

아류 해상공원 전경.

공원을 나오는 길에 핸드폰을 들고 있는 대만의 청소년들을 만나 제품을 확인해보니 삼성의 애니콜이었다. 정말 자랑스러웠다. 저 대영제국의 콧대 높은 수도 런던에서도 삼성전자가 30%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하여 기적 같은 일이라고 놀랐는데 5대양 6대주에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모양이다. 필자는 고 이병철 회장과 같이 의령의 작은 산골마을에서 태어난 것을 늘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병철 정주영 김우중 박태준 그리고 그분들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부국강병의 길로 인도한 박정희 대통령은 절망의 땅에서 태어나 세계를 종횡무진으로 누빈 위대한 영웅들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절로 되었다.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영토를 확장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오후에는 그간의 피로를 풀기 위하여 장춘곡에 있는 유황 온천장으로 향하였다.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금새 산악지대로 접어드는 듯 하드니 유황냄새가 코를 찌르고 여기저기서 휴화산처럼 온천수가 분출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이런 온천이 발견되면 고급스런 건물을 짓고 유락시설을 만들고 난리 법석을 폈을 법 하건만, 이곳은 제대로 된 옷장도 없이 칸막이 수

▲ 김병관 (전 서울 재향군인회장)

납장이 있었는데 대만 사람들은 대부분 열쇠를 채우지 않았는데 우리 일행은 사용료 20원(한화 약 800원)을 주고 열쇠를 채우기에 바빴다. 대범하면서도 검소하게 사는 대만 사람들의 모습에서 대국적인 기질을 엿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