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극로는 ‘해방 3년사’ 시기 한글운동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했다. 북한 잔류 이후에는 북한에서 김두봉과 함께 국어정책을 이끌어나갔다.
또 그는 이에 앞서 1930·40년대 조선어학회를 통해 다른 민족주의자들과 함께 한글을 연구·정리·보급·유지하여 민족을 보전하는 한글운동을 벌였다. 이와 같은 조선어학회의 한글운동은 해방 뒤 남북의 정권 모두에 계승․발전됐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이극로의 한글운동을 재조명하는 논문이 지난 9일 경복궁에서 열린 한글날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돼 눈길을 끌었다. 이날 고려대학교 박용규 박사는 '물불 이극로의 한글운동' 이라는 제목으로 한글을 빛낸 사람들 주제발표를 했다. 이번 행사는 (재)외솔회, 한국어정보학회, 한글문화산업디자인연구소, 한글재단,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재)외솔회가 주관하고, 문화관광부, 한글인터넷주소추진총연합회가 후원했다.
박용규 박사는 머리말에서지금까지 그에 대한 연구는 민족운동과 한글운동을 분리하여 부분적으로만 다루었다. 그 결과 1910년대 만주와 중국에서의 독립운동가로서의 활동상이 구체적으로 고찰되지 못하였다. 또한 1920년대 유럽에서의 민족주의 역사가로서의 활동도 분석되지 못했다. 아울러 1930·40년대 한글운동가로서의 그의 역할도 규명되지 못했다며 이 논문에서는 먼저 일제시기 한글운동에서의 그의 활동상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다음으로 해방정국기 한글운동에서의 활약상도 검토하고자 한다고 했다.
이와 같은 검토는 일제시대와 해방정국기 이극로의 한글운동에서의 위상을 재조명하는데 기여하며, 아울러 분단체제 성립 이후의 국어학과 국어운동을 규명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유종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