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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제기된 의령농협 미곡처리장(RPC)의 벼 131t 증발사건은, 신용불량자에게 백미를 외상 공급하면서 대금 12억여원을 회수 불능케 하고, 감사에 적발되지 않기 위해 담보물을 매입하면서 벼 131t을 임의 처분한 횡령사건임이 경남도경찰청 수사결과 밝혀졌다.
이에 따라 농민회가 10일 `의령농협 미곡처리장 비리사건 규탄 및 대책마련 촉구대회'를 의령농협 앞에서 개최한 데 이어서, 농협이 11일부터 경찰청 수사에서 드러난 RPC 벼 횡령사건에 대한 전면적인 감사를 벌이는 등 후속 대처에 나서 주목되고 있다.
농민회 집회
지난 10일 오전 `의령농협 미곡처리장(RPC) 비리사건 규탄 및 대책마련 촉구대회'가 의령농협 앞에서 개최됐다.
이날 집회에는 전국농민회총연맹 의령군 농민회(회장 황성철)와 한국농업경영인의령군연합회(회장 전병호) 회원 등 100명이 참여했다.
군 농민회 황성철 회장은 “지난 4월 RPC 벼 131t 증발사건이 터졌을 때 `도난' 또는 `비리'사건 연루로 확신하고 철저한 원인규명을 요구했지만 농협측은 자연감모와 정곡지소의 기계 오작동으로 인한 오류가 있었다고 했었다”며 “그런데 우려한 부분이 현실로 나타났다. 농협의 이미지는 실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이러한 엄청난 사건을 구속된 두 사람만 계획하고 조정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며 “능력과 자질을 갖추지 못한 이사와 감사를 선출한 조합원들에게도 있지만 직책에 의무를 다하기 위한 교육사업을 하지 않은 조합의 책임이 근원적이다”고 덧붙였다.
이날 농민회는 △재발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 수립 △경제사업에 대한 투명한 경영시스템 수립 △손실금에 대한 대안 수립 △사건과 관련해 은폐, 묵인, 방조한 직원 해임 △직분을 다하지 못한 이·감사 사퇴 등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의령농협 전용삼 조합장에게 전달했다.
전 조합장은 “재발방지를 위해 분기별로 재고조사를 하고 업무점검 등도 철저히 하고 경제사업 투명경영은 조합장 취임시 약속했다”며 “손해배상에 대해서는 이사회에서 결정돼야 한다. 일단 재산압류조치를 해놨다. 조합원들에게 손해가지 않게 하겠다”고 밝혔다. 성명서 전달 이후 전 조합장은 농민들과 일문일답의 대화를 가졌다.
양재명씨는 “농협의 사건들이 사실인가. 조합장도 그 부분에 대해 인정하느냐”고 질문했고 전 조합장은 “취임 후 사건을 알기 위해 3번이나 노력했지만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보고 받은 내용 또한 미비하다. 확실하게 인정한다 안 한다고 말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특히 농민회 남성우 정책실장은 “사건 당시 현 조합장은 상관없었다고 생각하는지. 그 당시 어떤 직책에 있었는냐”고 질문했고 전 조합장은 “2001년 가을부터 2003년까지 의령농협에서 경제상무로 있었다. 그 이후 지소에 있어 결재권은 없었다”며 “RPC의 장부 미비에 대해 정리하라고 이야기는 했었다”고 답변했다.
남 정책실장은 “현 조합장의 책임은 없다고 생각하느냐”며 불법대출 등을 따지며 전 조합장의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집회를 마무리하면서 전창배씨는 “그동안 대의원들은 무엇을 했으며 또 이사, 감사들은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다”며 농협 체계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한 조합원은 “이사, 감사들은 사실 허수아비였다. 이사, 감사를 꼭 다시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청 수사
경남경찰청은 지난 5일 의령농협 RPC 벼 131t (1억4천600만원 상당)을 빼돌린 일당 6명을 적발, 이중 의령농협 RPC 박모 전 소장과 의령농협 박모 전 영업과장 등 2명은 구속하고, 나머지 표모 강모 오모 성모 등 4명은 불구속 처리했다고 밝혔다.
구속된 두 박씨와 불구속 처리된 표씨는 지난 2001년 2월부터 2003년 5월까지 모두 440회 동안 백미 3천420여t (시가 68억900만여원 상당)을 당시 부산 부전동 소재 모 농협공판장이란 상호로 미곡상을 경영하던 신용불량자인 윤모씨에게 무단 신용 공급해 12억7천400만여원을 회수 불능케 하여 재산상 손해를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백미 외상거래시는 상응한 담보물건과 연대보증을 세우고 이사회 승인을 받아 공급해야 함에도 그 임무를 위배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박씨와 윤씨는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이고, 향응·접대를 둘러싸고 이들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다고 경찰은 덧붙였다. 사건은 종결됐고 윤씨의 신병은 확보되지 않고 있다고 경찰은 밝혔다.
두 박씨는 2003년 5월 윤씨의 채무 12억7천400만원에 대한 감사 지적을 피하기 위해 이 중 6억3천만원을 타인 명의로 분산시키고, 그에 따른 담보물 임야 5만평을 매입하면서 계약금 1억4천만원을 변제키 위해 벼 131t을 거래명세표도 작성하지 않고 임의 처분하여 횡령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2천500만원을 들여 1억5천만원짜리 임야를 9억3천만원이라고 감정평가서를 위조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또 두 박씨는 2003년 8∼9월경 RPC 법인통장에 입금된 미곡 공급대금 2천만원을 1천만원씩 2차례에 걸쳐 인출해 개인용도로 임의소비 횡령한 혐의도 받고 있다.
강, 오, 성씨는 백미가공·판매업무와 관련한 재고조사·감독업무 등 임무를 위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과제와 전망
경남도경찰청의 수사 종결에 따라 의령농협 RPC 벼 131t 횡령사건은 마무리 수순을 밟아야 하는 단계에 들어서고 있지만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10일 농민회에서 △농협의 책임 있는 관계자들의 연루 여부 △자기 역할을 다하지 못한 이·감사의 책임 △손실액 14억여원에 대한 채권 확보방안 등 과제를 제기해 공론화하고 있는 반면, 농협은 이에 대해 당초 자연 증발했다며 이사회에서 감모손실 처리해 신뢰를 상실한 데다 경찰청 수사를 통해 뒤늦게 추가 비리사실을 인지하는 등 자체 감사 능력을 상실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취임 후 사건을 알기 위해 3번이나 노력했지만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보고 받은 내용 또한 미비하다. 확실하게 인정한다 안 한다고 말할 수 없다”고 전용삼 조합장은 10일 농민과의 일문일답에서 말했고, 농협의 다른 고위간부 또한 “증발된 벼에 대해서만 알았지 다른 불법적인 일에 대해서는 몰랐다. 언론 보도를 통해 감정평가서 위조, 2천만원 횡령 등 추가 비리사실을 알았다. 자체감사를 다시 실시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이러한 사정은 지도·감독기관인 농협중앙회 의령군지부도 마찬가지다. 농협은 그동안 자체감사에서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지 못했고 파악할 능력도 상실했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다. “총체적 부실경영과 총체적 부패에 빠져 있음을 확인하고 참담함을 가눌 수 없다”는 농민의 불신을 달래기에 역부족이다.
또 비리연루 혐의자에 대한 구명운동이 일부 군민사이에서 벌어져 의령농협 RPC 벼 횡령사건의 해법은 좁은 지역의 안면에 부딪혀 순탄치 않게 전개될 전망이다. <유종철·김창현·최진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