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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령신문 |
| 의령군의회 하종성 의원(가 선거구)은 제301회 의령군의회 제1차 정례회 제2차 본회의 5분 자유발언을 통해, 의령 출신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 선생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추모비 이전과 3·1절 기념행사 마련, 역사교육 강화 등 세 가지 정책을 제안했다.
하 의원은 의령의 나라사랑 정신이 의병에서 항일독립운동으로 이어진 역사를 언급하며, 백산 선생은 백범 김구, 백야 김좌진과 함께 이른바 ‘삼백(三白)’으로 불렸던 우리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간 의령군의 선양 노력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선생의 역사적 위상에 걸맞은 관심과 계승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고 밝혔다.
먼저, 1976년 의령읍 동동 소입마을 입구에 건립된 추모비가 국도 20호선 우회도로 개설 이후 군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고 지적하며, 이에 접근성과 역사적 상징성을 갖춘 의병박물관 앞으로 추모비를 이전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1919년 3월 14일 의령읍에서 3천여 명이 참여한 만세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며, 지역별 3·1절 기념의 뜻을 모아 의령읍을 중심으로 군민이 함께하는 대표 기념행사를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아울러 백산 선생 생가와 백산 나라사랑 너른마당의 전시·해설을 보강하고, 디지털 콘텐츠와 체험 프로그램을 확대해 다음 세대를 위한 역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 의원은 "오늘날 백산이라는 이름이 백범과 백야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그렇다면 누가 먼저 나서야 하겠는가. 바로 백산 선생의 고향인 우리 의령이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백산 선생의 얼을 기리고 의령의 자긍심을 높이는 뜻깊은 여정에 집행부에서도 한마음으로 지혜를 모아 줄 것을 당부하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자유발언 전문)
존경하는 군민 여러분! 윤병열 의장님과 동료 의원 여러분! 그리고 오태완 군수님과 공직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하종성 의원입니다.
의령은 ‘의병의 고장’입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홍의장군 곽재우와 의령의 의병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300여 년이 흐른 뒤, 의령에서는 독립만세의 함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의령읍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군내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었고, 수많은 군민이 나라의 독립을 외쳤습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스스로 일어섰던 의령의 나라사랑 정신은 항일독립운동으로 다시 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의 한가운데에는 의령이 낳은 위대한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 선생이 계셨습니다. 백산 선생은 백범 김구 선생, 백야 김좌진 장군과 함께 이른바 ‘삼백(三白)’으로 불릴 만큼 우리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인물입니다. 고향의 전답을 팔아 백산상회를 세우고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으며, 교육과 언론을 통해 민족의 계몽에도 힘썼습니다. 만주에서는 발해농장과 발해학교를 세워 민족의 자립과 독립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본 의원은 오늘, 선생의 위대한 업적만을 이야기하고자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닙니다. 백산 안희제 선생의 고향 의령이, 과연 선생을 그 역사적 위상에 걸맞게 기억하고, 기리고 있는가. 바로 이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우리 군은 그동안 백산 나라사랑 너른마당 조성과 다큐멘터리 제작 지원, 웹툰 제작 등 선생의 삶과 업적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이어왔습니다. 이러한 집행부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백산 선생을 더욱 널리 알리고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본 의원은 다음 세 가지를 제안합니다.
첫째, 백산 안희제 선생의 추모비를 의병박물관 앞으로 이전해야 합니다. 백산 선생의 추모비는 1976년 의령읍 동동 소입마을 입구에 세워진 이후, 50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국도 20호선 우회도로 개설 이후, 이제 그곳은 차량들만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곳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군민들조차 위치를 잘 알지 못할 만큼, 사람들의 눈과 기억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추모비는 누구나 쉽게 찾아와 백산 선생을 기억하고 그 뜻을 되새길 수 있을 때, 그 의미가 더욱 살아납니다. 그런 점에서 의병박물관은 의령의 의병정신과 호국의 역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공간이자, 군민과 방문객 모두가 쉽게 찾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백산 선생의 삶과 뜻을 가까이에서 접하고, 홍의장군 곽재우로 대표되는 ‘의병정신’과 백산 안희제 선생으로 이어지는 ‘독립정신’을 함께 기억할 수 있도록, 선생의 추모비를 의병박물관 앞으로 이전할 것을 제안합니다.
둘째, 의령의 3·1운동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기려야 합니다. 1919년 3월 14일, 의령읍 장터에는 3천여 명의 군민이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이튿날에도 만세의 함성은 계속되었고, 독립을 향한 열기는 의령 곳곳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이처럼 의령은 의병의 고장인 동시에 자랑스러운 항일독립운동의 고장입니다. 따라서 지역별로 이어지고 있는 3·1절 기념의 소중한 뜻을 하나로 모아, 의령읍을 중심으로 군민이 함께하는 기념행사로 발전시킬 것을 제안합니다. 특히 3천여 명의 군민이 독립만세를 외쳤던 의령읍은 그 역사적 의미가 분명합니다. 백산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와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수많은 군민을 함께 기리는 의령의 대표적인 3.1절 기념행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해마다 홍의장군 축제로 의병의 역사를 기억하듯, 그 나라사랑 정신이 항일독립운동으로 이어진 역사 또한 이제는 제대로 기려야 할 것입니다.
셋째, 백산 선생의 삶과 독립정신을 살아 있는 역사교육으로 이어가야 합니다. 지난해 전국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백산-의령에서 발해까지>는 백산 선생이 걸었던 길과 독립운동의 여정을 다시 조명했습니다. 이제 그 길을 오늘의 역사교육으로 이어야 합니다. 백산 선생 생가와 백산 나라사랑 너른마당 등 관련 공간의 전시와 해설을 보강하고, 디지털 콘텐츠와 체험 프로그램을 다각화하여, 우리 아이들이 선생의 정신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러한 노력이 이어질 때, 백산 선생이 걸어온 길은 과거의 기록에 머무르지 않고 다음 세대가 배우고 기억하는 살아 있는 역사로 이어질 것입니다.
존경하는 선배·동료 여러분! 그리고 오태완 군수님을 비롯한 공직자 여러분! 백범 김구, 백야 김좌진과 함께 ‘삼백(三白)’으로 불렸던 백산 안희제 선생. 하지만 오늘날 백산이라는 이름이 백범과 백야만큼 우리 국민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먼저 나서야 하겠습니까. 바로 백산 선생의 고향, 우리 의령이어야 합니다. 제대로 기억하고, 제대로 기리고, 다음 세대에 온전히 전하는 것. 그것이 백산 선생의 고향, 의령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백산 선생의 얼을 기리고 의령의 자긍심을 높이는 뜻깊은 여정에 집행부에서도 한마음으로 지혜를 모아 주시기 바랍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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