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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우당 생가 전경. ⓒ 의령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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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령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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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생과 성장 홍의 의병장(紅衣 義兵將) 곽재우는 현풍 곽씨로 자는 계수 아호를 망우당(望憂當)이라 하였다. 장군은 1552년(명종7) 8월 28일 경남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 외가에서 태어났으며 16세 때 상산 김씨와 결혼했다. 상산 김씨는 부제학 언필의 손녀이며 한호 행(行)의 딸이고 남명 조식의 외손녀이다.
♦ 벼슬길에 나아감 장군은 수차례 걸쳐 과거에 응시하였고 별시에 나아가 정시에 합격했던 것을 보면 벼슬에 나아갈 뜻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가 돈지 강가에거 고기나 낚으며 일생을 아인으로 살아갈 결심을 하였던 것은 과거의 합격이 파방되어 수포로 돌아간 실망에서 비롯된 듯하다.
♦ 의병을 먼저 일으킴
의병을 가장 먼저 일으킨 사람은 곽재우 의병장이었다. 그 때가 1592년 음력 4월 22일이다. 어찌 보면 먼저 침략을 당한 지역이 경상도였기 때문에 장군이 먼저 의병을 일으킨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도내의 명망 있는 인사나 유생들은 근왕병을 일으키라는 왕의 명을 받은 이후에 와서 의병을 일으켰으나 장군은 그러한 명령이 내려지기 전에 벌써 의병을 모집하였다.
♦ 망우당 생가 건립 경위 ① 2002년도에 자연문화유산 제주도 교육을 경남도 담당자와 같이 교육을 신청하여 교육을 받았다. 교육을 받고 저녁 식사 후에 문화재청 담당자와 경남도 담당자와 함께 약주 한잔 하면서 유곡 은행나무 주변 정비를 해야 한다며 3억을 지원 요청하였다. 그 자리에서 문화재청 담당자가 지원을 하겠다고 흔쾌히 승낙하였다. 그 후에 3억 원 내시가 떨어지고 얼마 후에 교부 결정된 후에 교부금이 배정 되었다.
② 사업비 3억 원은 은행나무 주면에 토지 매입에 5.636㎡(1704평)을 매입하고 1m를 성토하여 다지니 부지가 형성되었다.
사업비 잔액으로 옛터 건축사에 설계 계약하니 사대부 집안의 자 형으로 건축설계가 나왔다. 곽씨 문중에서도 좋은 형태라고 하였다.
③ 당시 망우당 생가 건립에 대하여 문중과 군수님 과장도 아무도 생각조치 않을 때 본인이 문화재 청장 면담을 요청하여 망우당 생가를 복원 건립하고 싶다고 건의해 청장님이 그 자리에서 국장, 과장 담당자를 불렀다. 청장이 하시는 말씀이 군수도 아니고 담당 직원이 여기까지 찾아와서 열심히 일 하려고 하니 청장님이 그 자리에서 당장 10억 원을 경남 의령에 교부하라고 긴급 지시했다.
그 후에 교부 결정과 얼마 후 송금 되었다.
그리고 예상이 부족하여 김종호 기획 감사실장님한테 10억 원을 예산 편성해 달라고 건의하니 네가 평소 그렇게 열심히 하더니 꼭 그렇게 큰 성과를 이루었으니 편성해 주겠다고 흔쾌이 승낙하였다. 총 사업비 20억 원을 확보하고 기본 설계를 토대로 본 설계를 착수하여 부지 매입 및 부지조성(2001년 11월부터 2002년 5월 17일까지)을 완료하여 설계승인 현상 변경 및 신청 승인, 2003년 2월 18일부터 12월 5일까지 완료하고 도급자 (유)동현건설 대표자 이병국으로부터 2004년 12월 9일부터 2005년 10월 20일까지 총 공사비 17억 5천만 원 투입하여 안채 외 8동을 건립하고 그 후에 장독구입 등 내부를 마무리 하면서 현재 망우당 생가가 완공 된 것입니다. 공무원 하면서 제일 보람된 일을 추진한 것 같습니다.
♦ 생가 현황 의령군 유곡면 세간마을 현고수에 북을 매달아 의병을 모았던 북동편 유곡 은행나무 천연 기념물 제302호 뒤편에 1천705평 대지에 조선 초기 건축양식 자 형으로 안채, 사랑태, 대곡간채, 소 곡간채, 별채, 대문간채, 소문간채, 화장실 등 8동의 건물과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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