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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부림면 중심 ‘의령군 낙동농민조합 사건’의 주역 3명이 경상남도의 2026년도 제1차 독립유공자 포상신청에 포함됐고 이들 3명 중에서 2명이 탐진 안씨로 확인돼(2026년 7월 9일 의령신문 제691호 15면 보도) 탐진 안씨 집성촌인 부림면 입산마을에 대한 근·현대사 재조명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백산 안희제 선생의 생가가 있으며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의 거점인 부림면 입산마을. 애국지사 안효제·안창제·안희제 선생 등 3인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이 마을에 아직도 국가로부터 훈장을 받지 못한 또 다른 ‘독립과 건국의 거목’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거목이 근산(槿山) 안준상 선생과 한뫼 안호상 박사 두 분이다.
두 선각자는 일제강점기 항일투쟁에 나섰고 해방 후에는 대한민국의 기틀을 닦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러나 정작 국가보훈부의 독립유공자 서훈 명단에서는 이들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본지는 명실상부한 ‘독립운동의 성지’인 입산마을의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두 영웅의 발자취를 추적하고 서훈 지연의 문제점을 짚어 봤다.
안준상 선생
안준상(1898∼1994) 선생은 기미년 3·1 만세운동 당시 20대의 젊은 나이로 서울에서 일어난 ‘기미독립선언서’를 고향 의령으로 몰래 반입한 주역이다. 그는 일제의 감시를 뚫고 가져온 독립선언서를 직접 등사하여 영남 지역과 의령 전역에 배포했으며, 현재의 입산마을 만세공원 터를 중심으로 의령 지방의 만세운동을 막후에서 진두지휘했다. 동래고등보통학교와 일본 와세다대학 경제학과를 거친 엘리트였던 안 선생은 학업에 안주하지 않고 집안 아저씨인 백산 안희제 선생의 민족 기업 ‘백산상회’에 투신했다. 그는 안희제 선생을 보좌하며 항일 자금 조달과 비밀결사 활동에 깊숙이 관여했으나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기록을 남기지 않아 그간 온전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광복 후에는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 의령군 선거구로 출마해 당선돼 대한민국의 첫 헌법을 제정하고 정부 조직의 기틀을 닦는 데 헌신한 선각자다.
안호상 박사
안호상(1902∼1999) 박사는 ‘홍익인간’ 이념으로 민족 교육의 백년대계를 세운 대한민국 초대 문교부 장관으로서 오늘날 우리 교육의 뿌리인 ‘홍익인간(弘益人間)’ 이념을 법제화한 인물이다. 입산마을의 안효제 선생과 백산 안희제 선생의 뜻을 이어받은 그는 1919년 중동중학 재학 시절 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였던 ‘대종교’에 입교하며 확고한 민족주의 사상을 정립했다.
1922년 중국 상해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과 교류하며 민족운동에 투신한 그는 이후 독일 예나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했다. 일제강점기 말기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 교수로 재직하며 일제의 황국신민화 정책과 조선어 말살 정책에 맞서 강단에서 우리 역사와 민족 철학을 은밀히 전수 청년들에게 독립 정신을 심어주었다. 해방 후에는 문맹 퇴치 운동을 전개하고 학제를 정비하는 등 국가 백년대계의 기초를 닦았다. 사후 의령 출신 인사 최초로 사회장(社會葬)으로 치러져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을 만큼 큰 업적을 남겼다.
서훈 명단에서 빠진 이유
이처럼 뚜렷한 업적에도 두 분이 아직 독립유공자로 서훈 되지 못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에 대해 향토사학계와 전문가들은 크게 두 가지 이유를 꼽는다. 첫째, 해방 후 제헌 의원과 초대 장관 등 고위 정관계 행적이 워낙 뚜렷하다 보니 국가보훈부 심사 과정에서 ‘독립운동’ 그 자체보다 ‘해방 후 정치적 행보’에 가려져 정당한 평가가 후 순위로 밀렸을 가능성이다. 둘째, 일제강점기 당시 비밀결사나 자금 조달 등 막후 활동의 특성상 일제 측의 공식 ‘재판기록’이나 ‘수형 기록’ 등 문서화 된 직접 증빙 자료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현재 경상남도와 의령군은 두 분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해 ‘의령 안준상 고택(사진1)’과 ‘의령 안호상 고택(사진2)’을 각각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집은 문화유산인데 그 집의 주인인 인물들은 독립유공자가 아닌 ‘역설적인 상황’이 수십 년째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지역 주민들과 유족들은 아쉬움을 토로한다. 입산마을 한 주민은 “백산 안희제 선생을 비롯해 세 분의 독립유공자가 계신 우리 마을은 의령의 자랑”이라면서 “안준상 선생과 안호상 박사처럼 나라를 위해 온몸을 바친 분들이 서훈에서 제외되어있는 것은 의령의 역사를 반쪽만 기억하는 것과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제는 국가보훈부와 의령군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일제강점기 당시의 판결문 중심의 엄격한 심사 기준에서 벗어나 문중 소장 자료와 당시의 정황 기록과 해방 직후의 건국 공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요구된다. 전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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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1) 안준상 선생 고택 현재 본채를 보수 중. ⓒ 의령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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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1-1) 안준상 선생 고택 현재 본채를 보수 중. ⓒ 의령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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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2) 안호상 박사 고택. ⓒ 의령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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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2) 안호상 박사 고택. ⓒ 의령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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