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울릉도 유배(1914∼1915년)를 마치고 귀향하면서 오당 조재학 선생(迂堂 曺在學·1861∼1943년)이 가지고 온 동백나무 2그루 중 화정초에 옮겨 심은 1그루는 이미 지난 2010년경 고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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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생태원 조도순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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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령신문 | 이와 같은 사실은 오당 선생의 증손자인 조도순 국립생태원 원장이 지난 12월 배포된 경상북도 출연 독도재단의 매거진 ‘독도로’에 밝히면서 확인됐다.
‘독도로’ 제43호는 ‘세대를 잇는 울릉도·독도 사랑 국립생태원 조도순 원장에게 듣는 독립운동가 오당 조재학 선생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20∼23쪽 4쪽 분량을 할애하여 조 원장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기사 아래 인터뷰기사 파일 첨부)
오당 선생과 울릉도, 그리고 동백나무. 여기에 더하여 화정초의 교화로 지정된 동백나무. 동백나무는 특별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그러니까 동백나무는 화정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오당 조재학 선생님께서 울릉도 동백나무를 의령에 옮겨 심으셨다고 들었는데, 이 동백나무와 관련된 일화를 듣고 싶습니다’, 라는 질문에 대하여 조 원장은 “오당 선생이 울릉도 유배를 마치고 귀향하시면서 동백나무 두 그루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한 그루는 현재 ‘의령 상정리 조씨고가’로 알려진 오당 선생 생가에, 다른 한 그루는 오당 선생이 분가하여 새로 지은 본가에 심었고 저도 어릴 적부터 이 동백나무와 함께 자랐습니다. 1960년대 제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당시 약 50살이었던 동백나무는 나뭇가지를 붙잡고 턱걸이를 했을 정도로 상당히 커서 나무 높이가 집 지붕 높이와 비슷했고 겨울이면 동백나무 붉은 꽃이 만개했던 기억이 납니다”라며 “이후 본가를 매각하게 되면서 이곳의 동백나무는 아버지께서 교장으로 계셨던 화정초등학교에 기증해 옮겨 심었습니다. 교목으로 지정해 소중히 키웠는데, 안타깝게도 2010년경 고사했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니까 조 원장은 지난 1915년 울릉도에서 가지고 온 동백나무 2그루 중 화정초에 옮겨 심은 1그루는 교목으로 지정해 소중히 키웠는데 안타깝게도 이미 2010년경 고사했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하지만 화정초 교화 동백꽃비에는 이러한 내용을 제대로 기록하지 않아 지금 화정초에 있는 동백나무가 지난 1915년 울릉도에서 오당 선생이 가지고 온 동백나무 2그루 중 1그루인 것으로 잘못 이해 및 전달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고 있다.
동백나무와 관련하여 조 원장은 “하지만 오당 생가에 심었던 동백나무는 생가 앞마당으로 옮겨져 여전히 건강하게 잘 자라는 중입니다”라며 “제가 국립생태원에서 은퇴하면 이 동백나무 가지를 꺾꽂이해서 후계목을 육성하려고 합니다”라고 덧붙엿다. 후계목 이야기는 의령에서 전국 최초 임진 창의의 역사적인 현장인 유곡면 현고수 후계목 사업과도 맞물려 주목을 끌기도 했다.
‘원장님께서 생각하시는 오당 조재학 선생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라는 질문에 대하여 조 원장은 “저의 증조부인 오당 선생은 대단한 유학자이셨고, 면암 최익현 선생의 제자로서 독립운동을 하셨습니다. 일제강점기 초기에 독립의군부 활동을 하시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울릉도로 귀양을 가셨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습니다”라며 “그러나 1920년대 이후 다양한 독립운동이 결실을 거두지 못하자 오당 선생은 고향인 의령 상정에서 가까운 남강가에 봉소암이라는 초가집을 짓고 혼자 지내셨습니다. 사진 찍는 것도 거부하셔서 남아 있는 사진이 없어 아쉽습니다. 다만 오당 선생이 가보처럼 간직하셨던 면암 최익현 선생의 초상화는 잘 보존되어 후손들이 올해 의령군 의병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라고 했다.
한편, 오당 선생은 화정면 출신으로 의병운동과 파리장서 운동에 관여한 독립운동가이다. 면암 최익현을 따라 1906년 태인·진안 등지에서 의병운동을 전개하였고, 최익현 의진의 소모오위장으로 활동하였다. 1913년에는 임병찬과 함께 대한 독립의군부를 조직하였고, 1914년 4월에는 광무 황제의 밀조를 받은 사건으로 울릉도로 1년간 유배되었다. 1919년 회당 장석영 선생 등과 파리장서 사건을 주도하고 1921년 고사연구회를 창립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정부에서는 198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유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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