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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년 만에 뒤늦게 서훈신청 대상 오른 평범하지만 위대한 정곡 농민운동 주역

경남도, 1914년 개간 민유지
수탈 목적 총독부의 토지측량
저항한 남차권 이일우 이정신
남찬우 등 독립유공자 4명
서훈 신청서 국가보훈부 제출

당사자에서→ 기관으로 신청자
주체 바뀌면서 판결문 등에
이름 올린 대상자 신규 발굴
선고 복역 기간 기준 완화도
한몫…역사적으로 부각 ‘보완’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입력 : 2024년 08월 27일
ⓒ 의령신문

평범하지만 위대한, 역사적으로 부각되지 못한 1914년 의령군 정곡면 농민운동과 관련하여 이곳 주민 4명에 대하여 독립유공자 서훈이 신청됐다.
지난 8월 14일 경상남도(도지사 박완수)는 경남 출신 또는 경남에서 활동한 미서훈 독립운동가 34명에 대하여 독립유공자 서훈신청서를 국가보훈부에 제출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경상남도의 보도 자료에 따르면 ‘이번 서훈 신청 대상자 남차권, 이일우, 이정신, 남찬우 선생은 1914년 8월 26일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원이 토지 수탈을 목적으로 의령군 정곡면 일대 국유지(國有地)와 민유지(民有地)의 경계선을 측량하는 것에 반대해 주민 700여 명과 함께 토지측량을 못 하도록 저지해 징역 8개월 등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정곡면 농민운동과 관련하여 이들 4명은 110년이 지나서야 서훈신청 대상에 오른 것이다. 왜 이들 4명은 이제야 서훈신청 대상에 오른 것일까.
경상남도에서 제공한, 이일우 선생과 관련하여 판결문 자료에는 이일우 선생과 함께 전중진(田中鎭·1860∼1941), 남병우(南炳祐·1859∼1926), 이진우(李震雨·1864∼1925), 남종우(南宗祐·1878∼1918) 등 4명의 이름들이 나란히 올라 있었다. <사진>

국가보훈부 홈페이지→ 보훈인물→ 독립유공자(보훈록)에 들어가면 전중진 1999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남병우 2000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이진우 2001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남종우 2003년 건국포장 추서 등의 내용이 기록돼 있다.

이들과 관련된 판결문에는 이름이 함께 올라있으면서 전중진, 남병우, 이진우, 남종우 선생은 이미 1999년∼2003년 건국훈장 애족장, 건국포장이 추서된 반면, 이일우 선생은 왜 이제야 그것도 20년 넘어 뒤늦게 서훈신청 대상자에 포함됐을까. 그것도 같은 사건인 정곡면 농민운동과 관련하여 이일우 선생뿐만 아니라 남차권, 이정신, 남찬우 선생과 함께 그 이름들이 판결문에 함께 올라있는데 왜 남차권 이일우 이정신 남찬우 선생은 이제야 20년이나 뒤늦게 서훈신청 대상자에 올랐을까.

이에 대하여 경남도 관계자는 “그동안 서훈신청 주체가 당사자였는데 2019년 들어 경북도를 중심으로 기관으로 바뀌면서 판결문 등 입중자료를 확보하여 이번에 경남도도 나서 신규 서훈신청 대상자를 발굴하게 됐다”라며 “의령군 정곡면 농민운동 서훈신청 대상자 중에는 6개월 이상 징역형 선고, 3개월 이상 복역 등 그동안 적용되던 서훈 신청 대상 기준이 완화된 경우도 포함돼 있다”라고 했다.

경남도는 실제 독립운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입증자료가 부족해 서훈을 받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경남연구원, 18개 시군과 합동으로 독립운동가 발굴·서훈 신청 전담팀(TF팀)을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이번 서훈 신청은 지난해 창원만세사건 참여자 등 24명과 올해 5월 창원 흑우연맹 관련 6명에 대한 서훈 신청에 이어 미서훈 독립운동가 서훈 신청 인원수로는 역대 최대 규모이다.
경남도는 신속하고 빈틈없는 서훈 심사 진행을 위해 판결문 등의 주요 입증자료 외에도 부산 소재 역사기록관에 형집행원부, 형사공소사건부와 미서훈 독립운동가의 제적부를 발급받아 서훈 심사기관인 국가보훈부에 제출했다.

경남도는 미서훈 독립운동가 발굴 확대와 친일행적, 이적행위 등에 대한 정밀한 사전 조사를 위해 지난 5월 ‘경상남도 독립운동 선양사업 자문단’을 구성했다.
자문단은 신종우 복지여성국장을 당연직 위원장으로 선임하고 현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적심사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전성현 동아대학교 역사문화학부 교수, 경상남도의회 백태현 기획행정위원회 위원장 등 10명으로 구성했다.

지난 7일 2024년 경상남도 제2차 서훈 신청 예비 대상자 36명을 대상으로 자문단 회의를 개최했고, 친일 행적 이력이 의심되는 2명을 사전 심사에서 제외하고 34명에 대해 서훈을 신청했다.
독립운동가 서훈은 독립운동 당시의 활동내역도 중요하지만 독립운동 이후의 일생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검증하기 때문에 수십 년 동안 독립운동을 했어도 일제 식민통치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했거나 광복 이후의 형사사건 등의 사유로 서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신종우 경상남도 복지여성국장은 “이번에 서훈을 신청한 34명의 독립운동가들은 지역 내 농민운동, 토지조사사업 반대운동, 의병운동 등 평범하지만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위대한 분들인 만큼 모두가 서훈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1914년 정곡면 농민운동과 관련하여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인 남상순(南相舜·1878∼1949)에 대하여 국가보훈부 홈페이지→ 보훈인물→ 독립유공자(보훈록)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1878년 7월 21일 경상남도 의령군(宜寧郡) 정곡면(正谷面) 성황리(城隍里)에서 태어났다. 자는 화윤(和允), 호는 죽정(竹亭)이다. 1914년 정곡면장으로 있으면서 일제가 토지수탈을 위해 토지를 측량하자 주민들과 함께 적극 항거하였다. 

경남 의령군 정곡면 중교동(中橋洞) 동쪽 방향 일대의 토지는 같은 면 죽전리(竹田里)·성황리(城隍里)·예리(禮里)·중교리(中橋里) 등 4개 마을의 주민들이 개간하여 만든 토지로 수년 전부터 지세(地稅)를 납부해오던 민유지(民有地)였다. 그런데 일제는 기존 관행을 무시하고 이 토지를 국유지로 편입하고 임의로 조선농업주식회사(朝鮮農業株式會社)에 불하하였다. 그 결과 1914년 8월 26일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臨時土地調査局)에서 이 지역에 직원을 파견하여 측량을 강행하고자 하였다. 당시 정곡면장으로서 이러한 소식을 사전에 듣고 토지소유자이자 지역 유지인 전중진(田中鎭)·남병우(南炳祐)·이진우(李震雨) 등과 논의한 후, 다수의 주민들을 측량 현장에 모아 토지 측량을 적극 저지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8월 23일부터 25일까지 3일간 면내 각 가호에 토지소유 유무에 관계없이 모두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마을 이장에게도 응하지 않으면 벌금을 거두겠다는 뜻을 통고하고 동참을 독려하였다. 1914년 8월 26일 임시토지조사국 기수(技手)인 일본인 시마다 시게이치(島田滋一) 등이 해당 지역을 측량하고 조사원들이 부근 토지소유자들을 입회(立會)시켰다. 당시 조선농업주식회사 대표인 미나미 카시이치로(南賢一郞)도 직접 방문하였다. 지역 사정을 잘 아는 A가 그를 안내하였고 실측 후 표찰(標札)을 세우는데 적극 협조하였다. 

이에 그 부근에 모여 있던 동민 수백 명에게 “이번 측량은 동민의 권리를 무시한 압제의 작업이므로 단연코 못하게 하여야 한다”고 절규하였다. 동시에 이들을 지휘하여 곧바로 현장으로 가서 조사원들을 비방하고 조사원들이 심어놓은 표찰을 뽑아버렸다. 또한 이 회사의 고용인 B가 등에 지고 있던 원목(杬木)도 빼앗아 던져버렸다. 주민들과 함께 A를 잡아서 구타하였고 입회한 경찰관의 보호를 받고 도망가던 A를 쫓아갔다. 

중교동의 이인섭(李仁燮)이 경영하던 주막까지 추격하여 그의 집을 포위하고 물러나지 않았다. 그 결과 조사위원들의 토지측량이 용이하게 진행될 수 없었다. 다음날인 8월 27일 측량지와 기타 각 지역에 모여 있던 조사원들은 경찰관의 비호를 받으며 A의 안내에 따라 조사에 착수하였다. 

하지만 다시 현장에 모여든 군중은 표찰을 철거하고 A를 인사불성이 되도록 난타한 후 수레에 실어 의령군 읍내로 옮겼다. 수많은 군중은 수레를 뒤엎어버리고 거듭 A를 구타하였다. 이후 A가 정곡면 중교동 심영택(沈榮澤)의 주막으로 재차 피신하자 이 집을 포위하고 계속 비방하였다. 

결국 조사국원들이 측량을 중지하기에 이르렀다. 이 일로 소요의 주도자로 지목되었고 임시토지조사국원의 공무집행 방해 등 혐의로 붙잡혔다. 이후 1914년 10월 12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소요와 상해죄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유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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