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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당 조재학 선생의 자연사랑

조도순 (가톨릭대학교 생명·환경학부 교수, 유네스코 MAB한국위원회 위원장)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입력 : 2019년 07월 11일
오당 조재학 선생의 자연사랑
조도순 (가톨릭대학교 생명·환경학부 교수, 유네스코 MAB한국위원회 위원장)

ⓒ 의령신문
의령이 낳은 뛰어난 유학자이며 독립운동가였던 오당 조재학 선생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독립운동과 관련한 업적만 알려져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난 6월에 오당 조재학 선생의 한문 원고를 모은 ≪오당유고≫의 한글번역판인 ≪국역 오당유고≫가 출판됨으로써 이제는 오당선생의 독립운동 과정뿐만 아니라 그분의 저술활동, 사상, 윤리, 인적 네트워크 등을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다.

1960년대 초 필자의 부친(조만희 선생님)이 교장으로 계시던 유곡면 송산초등학교에 새로운 온실이 만들어졌다. 필자는 자주 온실에 들어가서 그곳의 온도, 습도, 향기를 즐기고 새로운 식물들에 관심을 가졌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대학에서 식물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또한 지금까지 우리나라와 해외의 자연보전에 힘써 왔다. 이번에 출간된 오당유고의 국역판을 읽으면서 필자의 몸에 오당 증조부의 DNA가 강하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오당선생은 독립운동이 실패한 후 남강가 외딴곳에 초옥을 짓고 이를 봉소암이라 명명하고 기거하셨는데 화정면 상정리의 본가와 봉소암에 많은 화초와 과일나무를 심으셨다. 필자가 어릴 때 살던 상정 고가에는 국화, 작약, 목단, 수국, 치자나무, 앵두, 포도, 석류, 단석류, 감(봉옥시), 참중나무, 동백나무가 있었다. 매년 봄에 필자의 할머니와 어머니는 참중나무 잎으로 가죽자반을 만드셨다. 오당선생이 울릉도에 귀양가셨을 때 가져오신 동백나무는 초등학생이던 필자가 턱걸이를 할 정도로 컸고 1-2월에 빨간 꽃이 만개하여 동네의 겨울철 혼사에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봉소암은 이러한 화초 외에도 단감나무, 호두나무, 밤나무가 더 있었다.

국역 오당유고에는 감, 삼, 매화, 오동, 국화, 소나무 등 꽃과 나무를 대상으로 한 다수의 한시들이 들어있다. 오당선생께서는 많은 초화들 가운데서 특히 국화를 좋아하셨다. 그 이유로 봄이나 여름에 피는 꽃과는 달리 온갖 풍상을 견딜 수 있고 다른 꽃들이 지고 없을 때 의연하게 홀로 그 절개를 드러내고 향기를 내뿜는 꽃이라는 점을 내세우셨다. 평생을 나라의 독립에 뜻을 두고 살다 가신 오당선생에게 가장 어울리는 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당선생은 동의보감 등 의학서적을 탐독하여 집안이나 주변의 마을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해 주셨으며 제자 중에는 한의사도 있었다. 한약으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한약재로 사용되는 식물들을 잘 구별할 줄 알아야 하는데 오당선생은 상당한 식물학적 지식을 가지고 계셨을 것으로 생각된다. 오당선생은 의학서 외에도 나무와 꽃에 관련된 책도 많이 읽으셨기 때문이다.

오당선생은 자연을 무척 사랑하셨다. 평생의 소원중의 하나가 금강산 등정이었는데 75세에 이르러서야 지리산 천왕봉과 금강산 비로봉에 오르셨다. 내금강과 외금강의 명소마다 시를 남기셨는데 그 가운데 금강산 만물상에서는 28행으로 된 장문의 7언시를 쓰시면서 자연을 좋아하는 것이 당신의 병이라고 말씀하셨다. 1914년에는 독립의군부 사건으로 울릉도로 2년의 유배를 떠났는데 그곳에서도 촛대바위, 알봉, 송곳산, 공암 등 명소마다 시를 남기셨다. 울릉도에 유배중이셨을 때 나리분지에 거주하셨는데 그 당시 울릉도를 개간하던 사람들이 무성한 나무들을 도끼로 찍어내어 자연을 파괴하였다. 이를 개탄하시면서 ‘고목탄식’이라는 시를 쓰셨는데 ‘큰 나무를 자라게 하면서도 그 큰 나무를 버린 것은 하늘의 무슨 뜻인가’하고 한탄하셨다.

필자도 천연기념물을 비롯한 자연환경의 보전을 위해서 여러 번 울릉도를 다녀왔고 2003년에는 비무장지대를 통과하여 금강산의 구룡폭포, 만물상 등의 명소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오당 증조부께서 울릉도와 금강산을 다녀오신 것을 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좋은 시를 남기신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두 장소의 의미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오당선생은 영남, 호남, 호서, 서울-경기 지방 등 전국 각지에 많은 친구들이 있으셨고 각 지역의 명산, 유명한 누각과 정자마다 지인들과 다니면서 정치와 사회를 논의하고 시를 쓰셨다. 필자가 자연보전을 위해서 전국을 돌아다니고 전세계 40여개국을 방문하게 된 것도 어쩌면 오당선생께서 한 곳에 오래 정착하지 않으시고 평생을 전국을 주유하신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를 좋아한다. 그는 ‘자연으로 돌아가라’를 주장한 개혁주의자였고 인생의 마지막에는 식물학에 심취하여 식물의 씨를 수집하고 식물의 그림을 그리고 표본을 만든 아마추어 식물학자로 살았다. 그가 쓴 책은 프랑스에서 식물학 교과서로 사용될 정도였다. 꽃과 나무와 약초를 좋아하시던 오당선생의 식물과 자연에 대한 사랑을 생각하면, 선생께서 만약 식물학을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던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사셨다면 아마 루소 이상의 식물전문가가 되셨을 것으로 생각된다.

자연에 대한 사랑과 자연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불의와 불공정, 불평등에 대한 저항에서 나온다. 일제가 조선을 지배한 일, 인간이 힘없는 자연을 훼손하고 착취하는 현상,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것, 사회의 불평등, 이러한 것들은 그 근본은 같다. 오당선생의 식물과 자연에 대한 사랑은 항일독립운동과 궤를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오당유고의 한글번역판을 통하여 오당선생의 일생, 철학, 활동, 가족과 관련된 역사 등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오당 증조부와 필자 사이에는 글 쓰는 솜씨를 제외하고는 많은 공통점이 있음을 깨달아 비록 만나 뵙지는 못했지만 그 숨결을 훨씬 가깝게 느끼고 있다. 필자가 식물학을 전공하고 그 동안 자연보전을 위해 노력해 온 모든 것은 오당선생의 후손이기에 필연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입력 : 2019년 07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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