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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靑春), 의춘(宜春)

장명욱(의령군 홍보팀 주무관)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입력 : 2024년 04월 12일
ⓒ 의령신문
 
57명으로 기억한다. 아니 정확하게 57명이다. 학년별로 한 반뿐이었고 우리 반은 15명이었다. ‘57'은 25년 전 폐교된 ‘나의 모교' 경남 의령군 칠곡면 의춘중학교 전교생 숫자다.

유치원부터 중3까지 꼬박 10년을 같은 반을 했다. 학생 수가 워낙 적다 보니 2반이 있을 수 없다. 그 시절 우리들은 친구가 아니라 형제자매였다. 피 한 방울 나누지 않아도 우린 작은 칠곡면에서 같이 산 가족이었다. 아직도 친구 집 전화번호 끝자리 3800, 1517 등이 기억난다.

우리가 중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아침에 등교하면 전교생이 마실 물을 가마솥에 끓였다. 그때는 오찬물이라고 했는데 가마솥 아궁이에 땔감을 넣고 물을 끓이는 것은 하루 첫 일과였다. 끓인 물을 식혀 선생님께 그리고 선배들 반에 배달하는 것을 마쳐야 이날 당번 임무는 끝난다. 우리는 피까지는 아니라도 확실히 물은 나눠 마셨다.

학교 뒤에는 공동묘지가 있었다. 우리는 공동묘지를 사랑했다. 점심을 먹고 자주 올라갔다. 적어도 우리에겐 공동묘지는 망자보다 생자에게 더 필요한 곳이었다. 우리는 은닉하기 최적인 공동묘지를 무대로 술래잡기, 총싸움, 짤짤이(동전 따먹기)를 했다.

문제는 야간 극기 체험을 공동묘지에서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지만, 우리 때는 학교 주도? 극기 체험을 했다.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일렬로 줄을 묶어 공동묘지에 올라가는 담력 향상 운동을 매년 꼬박 했다. 여자애들은 자동으로 눈물샘이 터졌고, 남자애들도 나중 알았지만, 오줌을 지렸다고 한다.

어른들이 9시 뉴스를 보기 시작할 때쯤 우리들은 다시 학교에 모였다. 지금은 큰일 날 소리지만 당시 우리에게 최고의 놀이는 서리였다. 학교 근처에는 하우스가 많아서 먹을 게 많았다.

수박 서리는 애교였고, 친구 중에서 베테랑은 닭서리도 서슴지 않았다. 두려움은 나중 문제고, 서리를 하면 꼭 나눠 같이 맛있게 먹었다. 신포교 밑에서 불을 지펴 훔쳐 잡아 온 닭을 삶아 먹은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몇몇 친구들은 막걸리도 마셨다. 우리들의 인생 화양연화는 분명 의춘중학교 시절이었다.
우리는 시골에서 아침에 가마솥에 물을 끓이고, 점심에는 공동묘지에 올라 짤짤이했고, 저녁에는 서리를 했다. 이래도 15명에 친구 중에는 변호사도 있고, 1타강사도 있고, 최고 용접전문가도 있다. 하나같이 여자애들은 시집을 잘 갔는지 부러움을 샀다.

이렇게 추억 한가득 담긴 우리 모교는 세월의 된서리를 맞고 장렬히 전사했다. 학생이 없으니, 학교는 사라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지만 20년 넘게 흉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가슴이 아팠다.

이랬던 의춘중학교가 다시 태어났다. 폐교 터에 청춘센터가 들어선 것이다. 친구들의 반응은 다들 이랬다. “실버타운이 아니고?” 그래 녀석들아. 청년센터가 들어섰다고!

이 기막힌 극적 반전의 시나리오는 의령군이 썼다.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던 학교 부지를 매입했고, 첫 삽을 뜨더니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의령군은 청년 거점 복합타운 조성을 목표로 현재 공유오피스, 공유 스터디 카페, 공유 주방 등의 시설을 갖춘 창업 공간을 만들었고, 내년에는 1인실 12호를 갖춘 주거 공간도 완성된다고 밝혔다. 장기적으로는 전시장, 공연장을 갖춘 문화예술센터 조성도 구상 중이라 했다.

지난 19일 의령청년센터 ‘청춘만개' 개관식에서 청년들을 만났다. 우리가 떠난 자리에 많은 청년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이 신기했다. 특히 칠곡면을 거점으로 하는 청년단체 ‘홍의별곡'의 활약 소식에 더욱 반가웠다. 이들은 의령의 다양한 전통 자원 체험을 통해 지역사회와 청년을 연계시키는 지역살이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는데 지난해 서울, 경기도, 부산, 대구 등 전국 각지에서 57명의 청년이 의령군 칠곡면을 찾았다고 했다.

57명? 우연의 일치에 흠칫 놀랐다. 30년 전 내가 학교 다닐 때는 그렇게 적게 보이던 수가 지금은 너무나 많게 보였다.

25년 전 57명이 떠난 자리에 청년 57명이 들어왔다. 일부는 벌써 전입신고를 마쳤다고 한다.

의춘중학교에서 ‘의춘(宜春)’은 ‘풍우가 고른 봄을 맞이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흔들리지 않는 청춘이 어디 있느냐마는 우리가 비켜난 그곳에서 그 시절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청년들 역시 인생 최고의 봄날을 맞이하길 바라고 또 바란다.

청춘, 의춘에 정말 잘 왔다.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입력 : 2024년 04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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