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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굴산 둘레길을 다녀와서


김만권 기자 / 입력 : 2010년 12월 14일

둘레길은 산을 오르기 보다는 둘러본다는 좀 쉬운 느낌이 든다. 산은 가고 싶은데 오르기 힘든 사람에게는 둘레길이 너무 반가운 길이다. 산행은 수직적 포물선이라면 둘레길은 수평적 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자신감을 갖고 둘레길을 찾게 되지만 가끔 힘든 코스가 나타나 산을 오르는 맛도 즐길 수 있어 매력을 느낄 때도 있다


둘레길은 원이다 윤회사상으로 보면 인생도 언젠가 다시 돌아오는 둘레길이란다. 똑같은 곳은 아니지만 어느 둘레길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런데 얼마전 내가 다녀온 고향의 자굴산 둘레길은 다른 지방의 낮은 둘레길과는 사뭇 다르다. 보통 둘레길이라면 산자락의 나지막한 둘레길이지만 이곳은 산의 팔부능선 허리를 가로지르는 둘레길이라 시원한 바람을 쏘이면서 저 멀리 펼쳐지는 고요하고 풍요로운 시골마을 전경을 멀리서 내려다 볼 수 있고, 겹겹이 쌓여있는 산들도 바라볼 수 있고, 정상을 에워싸고 있는 자굴산의 아기자기한 모습을 쳐다볼 수도 있다. 산을 오르다 보면 정상에 도착하면 정상주를 한잔하면서 무엇을 달성했다는 정복자의 성취감에 도취되는 맛이 좋지만 둘레길은 중간 중간 쉬어가면서 그 산속에 오래동안 보지 못했던 신비함을 켜내는 탐구자의 즐거움을 안겨주는 자연속의 건강 길이다. 자굴산(해발 897m)은 의령군의 서쪽 칠곡면과 가례면 대의면의 경계를 이루는 합천군과 가까운 산으로 ‘망루처럼 우뚝솟은 산’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자굴산 둘레길은 해발 600-700m에 위치한 총연장 6㎞중 3.7㎞가 우선 개통된 미완성 둘레길로 둘레길에서 정상을 오르는 맛도 함께 보면서 금지샘, 베틀바위, ‘형아바위’ (필자가 붙이고 싶은 이름으로 형님과 아우, 형수와 아내로 엮어진 전설을 담고 있는 바위)등 이 산에 깃든 믿기지 않는 얘깃거리가 즐거움을 더했다.



나는 이 자굴산 자락에 있는 칠곡면과 가례면사무소에서 공무원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산 정상 부근의 헬기장을 설치할 때는 하루에 두 차례나 산 정상을 다녀온 적도 있으며 산행하기 더없이 좋은 산이라고 많은 사람에게 소개 하였지만 이제는 제대로 이 산의 아름다움과 숨은 얘깃거리를 알리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동안 제법 잘 알고 있는 산이라고 여겼는데 이제와서 보니 정말 산의 제 모습은 보지 못하고 겉만 보고 자랑해온 것 같다



자굴산 둘레길을 찾는 방법은 두가지다. 산을 좋아하는 보통사람은 논 밭 가까이 마을 입구에서 출발해서 정상을 향해 등산로를 거쳐 둘레길과 만나는 여러 지점에서 시작하는 방법과 산을 오르기가 힘겨운 사람이나 여가가 적은 사람은 자동차를 이용해 ‘쇠목재’에 주차하고 여기서 출발하는 방법이 있다. ‘쇠목재’란 갑을 마을에서 자굴산을 쳐다보면 자굴산 정상의 모습이 소와 같으며 이 고개(재)가 소의 목에 해당한다는 뜻에서 ‘쇠목재’라 불리고 있다



남명 조식선생은 이산의 금정사(지금은 없어짐) 부근의 명경대에서 시를 읊고 학문을 연마했으며 그의 제자인 홍의장군 망우당 곽재우장군은 보리암(지금은 주춧돌의 잔해만 일부 남아있음)에서 책과 무예를 닦은 곳으로 훌륭한 인재를 키운 얘기 거리가 많은 산이다



뭔가 닮아 보이는 바위랑, 이상하게 생긴 ‘연지 나무’(가지가 붙었다 떨어져 있는 모양), 줄기가 미끈하게 자라는 비단같은 무늬가 있는 비단나무, 군락을 이룬 자작나무, 굴참나무, 띄엄띄엄 우뚝 선 소나무, 산돼지가 땅을 파헤치고 검은 흙탕물에서 목욕을 한 흔적이 보이는 산돼지 목욕탕. 절터샘, 생강나무, 설대나무, 바위가 산산 조각이 난 너덜바위 길이 인상적이다. 산 저쪽자락에 있는 병풍같은 바위는 ‘벌 바위’라 해서 벌들이 새 살림을 차릴 때는 꼭 그 바위에 집을 지어 벌꿀 냄새가 나는 석청바위라는 고향친구의 설명이 더욱 재미있었다.



저멀리 보이는 못이 대의면 모의 ‘신전못’ 이며 이 곳이 천하장사 이만기장사의 고향이다, 천하장사는 모의마을에서 아랫동네에 있는 초등학교까지 십오리길을 걸어 다녔고 그의 부친은 시골의 5일장 장날마다 삼베와 모시를 지게에 지고 팔러 다녔다고 한다. 많이 걸어다닌 집안이라 다리가 튼튼해서 천하장사의 바탕이 되었다고 하니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것도 맞는 것 같다



둘레길 중간의 절터샘은 물맛은 상큼했다. 주위의 감나무나 돌담을 보니 절이 있었던 것 같은 데, 이 암자에 있던 스님은 이 물만으로도 많은 사람에게 적선을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절터샘 비닐바가지가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표주박에 담긴 물을 마시는 나그네를 상상하면서 손바닥에 올려놓은 나무 잎에 물을 담아 물맛을 보니 조금은 맛이 다른 느낌이었다.



마음의 둘레길을 다녀온 기분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내 나이도 어느덧 예순이 지나고 보니 그동안의 인생길을 돌아보는 느낌도 들었다. 그동안 이정표 없이 달려온 길이 지금은 인생의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 조차도 잘 모르겠다. 지금부터라도 이 길을 뒤에 오는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 이정표를 세우는데 있어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한다. 절터샘과 중간 중간 쉼터에 쉬면서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걸어가야 좋을 지 망설이는 누군가에게 많은 얘기를 들려주고 올바른 길잡이 노릇을 하고 싶지만 잘 될지 모르겠다



완성된 자굴산 둘레길이 개통되는 날 어릴적 나와 함께한 벗들과 같이 이 둘레길을 찾으면서 못다한 얘기를 더 나누고 싶다

김만권 기자 / 입력 : 2010년 1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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