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6-05-08 10:33:25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뉴스 > 향우1

의령여씨대종회, 시조공 비석문 제막식

백제왕손 기록, 장등산 시조공 묘역에서
편집국 기자 / 입력 : 2009년 12월 03일











관향을 의령으로 삼고 있는 의령여씨대종회(회장 여규태)는 지난 11월 17일 오전 11시 장등산 시조공 묘역에서 종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시조 의령군(宜寧君) 여공(余公) 기적비(紀蹟碑) 제막식과 시조공 기축년 추향봉제를 가졌다.


‘백제왕손 의령군 여공 기적비’는 “~여씨로 성을 삼은 가문은 우리 역사가 열린 새벽인 단군조선시대에 을여(乙余), 을루(乙婁) 두 분의 임금이 계셨고, 예(濊)나라에는 여수기군장(余守己君長)의 기록이 있다. 백제시조 온조대왕은 그 뿌리를 존중해 성을 부여(夫餘)라 했다. 여(餘)는 바로 여(余)와 통해 쓰는 글자이다. 그래서 백제말엽에는 왕족들이 余로 성을 삼는 경우가 많다. (중략) 서기 622년 백제의 멸망으로 의자왕과 태자 등 왕족들은 唐餘으로 강제이주되어 장안의 백제촌에서 한 많은 삶을 살게 되었으며 당이 망하고 새로 宋는나라가 건국된 후에야 그곳에서 우월한 혈통인 백제왕족 余氏 一族이 활력을 되찾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중에도 학문이 뛰어나고 민족의식이 투철했던 휘 善才公은 과거에 오른후 승진을 거듭해 간의대부란 높은 직위에 오르시었다. 백제왕가의 후예임을 긍지로 삼고서 조국과 백제를 멸망시킨 중국 땅에서 벼슬살이를 하고 있는 처지를 항상 자책해 오던 공은 천자가 직간을 받아들이지 않자 감연히 조국 땅으로 돌아갈 결심을 굳혔다. 때는 고려 선종원년 갑자로 단기 3417년, 서기 1084년이었다. 고려국왕은 크게 반기면서 극진한 예로 대우했다. 공을 의령군에 봉하고 의령을 식읍으로 내려 정착케 하였다. 이로써 余氏는 의령을 새로운 관향으로 삼게 되었고 공께서는 의령여시의 시조가 되신 것이다.(이하 생략)”고 기록하고 있다.


대종회는 시조공 묘역현창사업과 기적비 제막에 공로가 많았던 여영록 대종회 사무총장에게 공로패를, 의령의 화성석재공업사에게는 감사패를 각각 수여했다. 박해헌 발행인

편집국 기자 / 입력 : 2009년 12월 03일
- Copyrights ⓒ의령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이름 비밀번호
개인정보 유출,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지역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많이 본 뉴스 최신뉴스
“당 아닌 군민 선택 받겠다”…오태완 군수, 무소속 출마..
의령 리치리치페스티벌, AI 활용 포스터 공모전 개최..
의령군 제104회 어린이 대축제, ‘모든 공연·체험·먹거리 공짜!’..
의령군, 통합돌봄 본사업 ‘전국 상위권’…발굴·연계 체계 가동..
2026. 학부모회 운영 설명회 및 상반기 협의회 개최..
의령경찰서, 의병마라톤대회 코스 안전점검..
의령군–㈜빈푸드 투자협약 체결…70억 원 투자..
기고문) 안희제 생가 찾아서..
의령교육지원청, “학생 성장 지원을 위한 통합지원 협력체계 ” 본격 가동..
의령군가족센터 - 청아병원, 업무협약 체결..
포토뉴스
지역
범한산업, 최성목 대표이사 선임…“기술·품질 경쟁력 강화”..
기고
안명영(전 의령고 교감)..
지역사회
지난 4월 17일 의령국민체육센터 3층에서는 ‘향우 만남의 장’ 행사가 진행됐다...
상호: 의령신문 / 주소: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충익로 51 / 발행인 : 박해헌 / 편집인 : 박은지
mail: urnews21@hanmail.net / Tel: 055-573-7800 / Fax : 055-573-7801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남,아02493 / 등록일 : 2021년 4월 1일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전재훈
Copyright ⓒ 의령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
방문자수
어제 방문자 수 : 13,569
오늘 방문자 수 : 11,238
총 방문자 수 : 22,257,4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