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고수 명상> 황금 들녘의 한숨
이효영교수 기자 / 입력 : 2001년 10월 15일
지난 여름의 혹독한 가뭄으로 밭농사는 시원찮지만 쌀 농사만은 올해도 풍년이 찾아오고 있는 것 같다.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들녘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마음마저 푸근하게 만들어 준다. 가뭄과 싸우면서 힘겹게 농사를 지어온 사람들의 감회야 이를 말이 있겠는가! 그러나 정작 농민들의 마음은 불안과 울분의 검은빛으로 변해가고 있는 듯하다. 일각에서는 그 흔하던 태풍이 찾아오지 않는 것을 원망하는 소리마저 들린다. 이유는 물론 쌀값 하락 때문이다. 지난해 추수기에 16만원대였던 80킬로짜리 쌀 한가마 값이 15만원대로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9월초부터 시장에 나오기 시작한 햅쌀 가격은 통상 전년도보다 비싼 것이 일반적인데도 불구하고 올해는 오히려 낮은 수준이고 그나마 하락세를 타고 있어 앞으로도 더 내릴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러다 보니 그간 정부의 양곡 수매 감축 분을 보완해 온 농협과 미곡처리장들이 쌀 구매를 꺼리고 있다. 정부가 수매하는 물량을 늘리는 것이 우루과이라운드협정 때문에 불가능한 현실에서 값의 고하에 상관없이 쌀을 처분할 곳도 마땅치 않다. 그렇다고 생산 농민이 쌀을 내놓지 않고 보관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수익성 여부를 떠나 당장 연말이면 각종 영농자금을 상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칫 쌀값 대란이 오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정부나 정치권에서도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는 있지만 일시적 미봉책 이상의 속시원한 해결책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기본적으로 우루과이라운드협정에 발이 묶여있는 데다 수년간 지속된 풍년으로 쌀 생산이 늘어난 반면 소비는 오히려 빠른 속도로 줄고 있고 의무적으로 들여와야 하는 수입쌀도 이미 산업용 수요를 초과하는 수준이어서 쌀 시장이 거의 포화상태에 다다르고 있기 때문이다. 쌀 재고량이 1,000만석에 육박하여 쌀을 쌓아둘 창고가 모자란다는 이야기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유일한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북한에 대한 쌀 지원도 내외 여건상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막대한 재원의 조달이나 북한에 대한 `퍼주기'라는 국내적 문제도 그렇지만 국제규범에 벗어난다는 통상마찰의 소지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확기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농림부에서는 쌀에 대한 정책방향을 지금까지의 양 위주에서 앞으로는 질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내놓고 있어 농민들을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있다. 쌀 농사에 대한 지원을 완전히 포기하겠다는 의미는 물론 아니겠지만 이제 더 이상 정부가 쌀 가격을 과거처럼 지지하기는 어렵다는 선언인 것만은 분명하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황금 들녘의 행복감이 사라지고 한숨이 터져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옛날엔 이맘때면 진짜 마음이 푸근했어요. 논둑에 나가 앉아있노라면 벼가 누렇게 익어서 찰랑거리고..., 몽실몽실한 황금 들녘. 마치 황금을 가득 가진 것처럼 푸근했어요. 행복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꼈어요. 그러나 지금은 황금이 아니라 병색. 병들면 누렇게 뜬다고 하잖아요. 황금 들녘을 바라보던 행복했던 마음이 병든 누런 마음으로..., 아무튼 이런 입장이 되어버렸어요." 알다시피 문제의 근원은 소위 `세계화'의 대세에 편승한 농업시장 개방 압력에 있으며 우리 정부와 농민의 힘으로 막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늦어도 2004년까지는 추가개방이 불가피하다. 자세를 가다듬어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마련하는 길 외에 달리 방도가 없다. 열정만으로 풀릴 문제가 아니다. 덮어두거나 미룬다고 피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농민의 희생이 불가피할 것이지만 그것을 덜어줄 책임은 우리 국민 모두의 몫이다. |
이효영교수 기자 /  입력 : 2001년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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