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출신 이극로 국어학자 지역문인이 기획특집 조명 의령문학 9호에 게재 연구촉진 시금석 될 듯
광복이후 북한에 잔류한 의령출신 국어학자 이극로 선생을 조명하는 글이 지역문단에서 처음으로 의령문학에서 기획특집으로 다뤄진다.
이 같은 움직임은 그동안 이념의 벽에 부딪혀 선생의 존재가 남한사회에서 묻혀버렸고 의령사람들조차 선생이 정녕 무엇을 했던 사람인지 알지 못할 뿐 아니라 또한 알려고 조차 하지 않았다는 반성에서 출발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15일 의령문인협회 김영곤(사진) 전 회장은 `한글발전의 큰별 의령인 고루 이극로' 기획특집이 11월 말에 간행될 의령문학 제9호에서 다뤄진다고 밝혔다.
기획특집에 따르면 선생은 1893년 의령군 지정면 두곡리에서 아버지 이근주와 어머니 성산이씨 사이에서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여섯 살부터 열여섯 살 때까지 마을의 두남재에서 한문을 수학하였고, 18세가 되던 일제강점기 1910년에 의령 집을 떠났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령에서 드러난 선생의 행적의 전부.
기획특집은 이후 조선어문을 학술적으로 천명하기 위해 한글철자를 통일시키고 표준어를 정하였으며 외래어 표기를 통일하여 궁극적으로 한글사전을 편찬한 선생의 업적을 소개하고 있다.
특집기획과 관련, “항간에 일제 강점기 때 결정된 국보를 재지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그중 단연 국보 1호급으로 훈민정음 해례본이 지칭되고 있다. 그만큼 우리 한글의 우수성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다. 이처럼 우수한 한글 발전의 중심에 우리 의령인 고루 이극로 선생이 있었다는 것을 백번 천번 자랑으로 삼아도 좋을 일이기에 이 점을 지역문학인의 한 사람인 필자가 먼저 선생의 찬란한 한글 업적을 대대적으로 밝혀 보고자 함이다”고 김 전 회장은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 특집은 새로운 사실을 밝히기에 역부족이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의령에서 드러나지 않은 선생의 행적을 추적한다든지, 의령을 떠난 이후의 행적과 선생의 학문적 성과를 실증적 학문적 수준에서 연구한다든지 하는 작업에 앞서 빈약한 기존 자료를 종합적으로 정리해 선생의 업적을 소개하는데 그치기 때문.
이에 대해 “현존하는 자료확보 부족으로 인해 전적으로 서적, 인터넷 검색 등을 활용하되 특히 박용규 선생의 이극로 평전에 의존한 한계를 먼저 밝혀두는 바이며 이를 계기로 우리 의령에서도 선생을 보다 깊이 있게 연구하는 새로운 시금석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다룬다”고 김 전 회장은 밝혔다. <유종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