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곡초에 있었던 석조여래좌상에 얽힌 부자기운 받기 이야기를 아시나요?
정곡면 호암 이병철 생가에서 부자기운 받고 정곡초에 있었던 석조여래좌상에서 마무리해야 온전한 효험이 있다는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의령사람이라도 그리 많지 않다.
경남미래교육원 운영 시작과 함께 많은 차량과 학생들이 의령을 방문하면서 의령군민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중교리 석조여래좌상에 얽힌 이야기가 관심을 끌고 있다.
그 이야기는 호암 생가에서 부자의 기운을 받고 중교리 석조여래좌상에서 그 기운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중교리 석조여래좌상은 2구가 1925년 정곡중 뒤편의 미륵골 옛 절터에서 발견된 후 정곡초 운동장으로 옮겨져 있다가 2005년 불상 1구를 도난당했다.
지금 정곡초에는 2019년 의병박물관으로 이전한 후 그 자리에 흔적만 덩그러니 남아있어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는 것이다.
기자가 찾아간 지난 8월 29일 오후 정곡초 운동장에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로 질퍽해 있었다.
정곡초 박치우 교장은 “의미있는 석조여래좌상이 설치 장소만 남아있어 찾아오는 사람마다 아쉬워한다. 해결 방안으로 지난해 석조여래좌상 가품 설치와 안내판 그리고 학생과 마을주민은 물론 관광객이 함께 쉴 수 있는 공간제공을 위해 공모사업 신청을 했으나 탈락했다”며 “다시 신청해서 학교 운동장을 쾌적한 분위기로 조성하고자 한다”고 했다.
박목 정곡초 운영위원장은 “정곡초 운동장은 학생뿐만 아니라 정곡주민은 물론 관광객의 편의 제공을 위해서도 의령군과 의령교육지원청이 협의를 해서 좋은 해결방안을 찾아 관광객과 주민, 학생 모두에게 관광지의 면모를 보여주었으면 한다”고 했다.
인터넷 포털 자료와 안내표지판 내용에 따르면 중교리 석조여래좌상은 큰 불상 높이 88cm, 작은 불상 높이 67cm. 1972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두 상 모두 연화대좌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좌상으로 머리를 복원하였으며 신체 곳곳에 마모와 흠이 많다. 작은 불상은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좌상으로 마모와 박락이 심하다.
머리와 오른팔 그리고 왼손도 떨어져 나갔으며 양 무릎이나 팔 등은 부분적으로 복원되어 있다. 건장한 어깨에는 편단우견을 걸쳤다. 큰 불상 뒤에 있는 주형 거신광배(舟形擧身光背)의 길이는 96cm, 폭 78cm로 원형의 두광과 신광을 돋을 새김하였다.
그리고 안쪽은 굵고 바깥쪽은 가는 2조의 윤곽선을 새겼다. 원형 두광 내부에는 직경 17.5cm의 원을 그리고 둘레에 꽃무늬[花文]를 배치하고 가장자리의 나머지 공간에 불꽃을 표현하였다. 두 불상 모두 가슴에 적당한 볼륨감이 있고, 앉은 자세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신체의 굴곡 그리고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신체 비례와 광배 형식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불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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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곡초에 있었던 석조여래좌상. 왼쪽이 도난당한 불상, 오른쪽은 현재 의병박물관 입구로 옮겨져 있는 불상. ⓒ 의령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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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의병박물관 앞에 있는 석조여래좌상 ⓒ 의령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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