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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출신 작곡가·방송인 이호섭, 문학박사 되다

서강대 대학원에서 논문 「고려시가와 음악의 관계 연구」로,
문학과 음악의 양 학제 통합연구한 첫 번째 성과로 평가 받아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입력 : 2019년 08월 28일
의령 출신 작곡가·방송인 이호섭, 문학박사 되다
서강대 대학원에서 논문 「고려시가와 음악의 관계 연구」로,
문학과 음악의 양 학제 통합연구한 첫 번째 성과로 평가 받아

ⓒ 의령신문
<찰랑찰랑>, <찬찬찬>, <10분 내로> 등 900여 곡을 작곡한 의령군 지정면 출신의 유명 작사가 작곡가 겸 방송인 이호섭(60) 향우가 8월 20일 서강대학교 대학원 2018학년도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박사의 정규학력은 중학교 졸업으로서, 고졸 학력 검정고시와 독학사 시험으로 대학 졸업 자격을 취득하여 2012년 서강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해 만학도로서 방송활동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석사와 박사 전 과정을 성적 장학생으로 졸업하면서 독학으로 일궈 낸 박사 학위라는 점에서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서강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박사 과정에서 고전시가를 전공한 이 박사의 박사학위논문은 「고려시가와 음악의 관계 연구」로, 고려속요와 정간보(井間譜)의 조응관계와 어울림을 통해 형태적 다양성을 가진 고려시가의 특징과 특성의 원인을 구명하였다. 특히 이 논문에서는 그동안 국문학계는 음악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고려속요의 노랫말만 대상으로 연구하고, 국악학계는 문학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음악만을 대상으로 연구함으로써 따로 분리되어 있던 연구 풍토에서 벗어나, 문학과 음악의 양 학제를 통합하여 연구한 첫 번째 성과라는 점에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러한 연구가 가능했던 것은 이호섭 박사는 음악가 출신으로서 문학을 전공하여 양 쪽 학문을 모두 섭렵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점을 살려 이호섭씨는 <쌍화점(雙花店)>과 <상저가(相杵歌)>의 정간보를 새롭게 해독하여 <쌍화점>은 중국 계통의 악곡이며, <상저가>는 오늘날 우리 민요의 자진모리 장단과 같은 리듬임을 밝혔다. 이 논문은 향후 국문학계와 국악학계의 학문연구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900여 곡에 이르는 작곡뿐만 아니라 KBS 라디오의 스타 M.C로 더욱 유명한 이 박사는 <이호섭·임수민의 희망가요>를 11년간 진행했고, 지금도 <아침마당>,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동치미>, <얼마예요?> 등의 TV 프로그램 패널로 활동하고 있다.
이 박사는 국민 정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한국 가요가 세계적인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지금, 대중가요도 이제 학문적으로 연구해야 마땅한 시점에 와 있다고 말하고, 이를 위해 <가요가창학> 및 <가요창작론>과 <대중가요 작사론> 등을 학문으로 편제하여 저술을 내 놓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가요대학교를 설립하여 ‘이호섭 가요제’와 연동하여 출신지 의령을 명실상부한 가요계의 중심도시로 자리 잡게 하고 싶다 원대한 꿈을 밝혔다.
한편 이 박사는 지난 26일 오후 6시 서울 강남의 더 리버사이드호텔 컨스트홀에서 문학박사학위수여 기념식을 갖고 그동안 응원해준 관계자 및 지인들에게 감사하면서 만학도가 된 사연과 학위논문 개요 등을 소개하며 더욱 정신할 것을 약속했다. 추석 후 고향 지정면 두곡마을에서 박사학위 취득 기념식도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는 이 박사의 논문 연찬을 지도해준 성호경 서강대 명예교수(고전시가 전공), 석현 한국연예예술인협회 이사장, 이선두 의령군수, 문봉도 의령군 의원, 재경 의령군향우회 이학수 회장과 남상태 정영조 윤학근 이종규 강완석 이용식 고문을 비롯한 13개 읍면향우회장, 가요 작가와 방송 언론인 등 300여명이 참석했으며, 이 박사가 작곡한 노래로 하춘화(마산항엔 비가 내린다), 강진(삼각관계), 이자연(찰랑찰랑) 등 인기 가수들이 축하공연을 하기도 했다.
ⓒ 의령신문

‘꿈꾸는 새’ 이호섭 박사
  이호섭 향우는 법관이 되고자 제17~18회 사법고시에 응시하기도 했으나, 좌익활동으로 연좌제에 걸려 있던 집안 내력으로 인해 법관의 꿈을 접고 가요계로 진출하였다고 한다. 가난하여 방 한 칸도 없이 경남 마산에 소재한 ‘남성여관’의 여관방에서 생활했던 부모님 사이에서 그는 1959년 집 없는 아이로 태어났다. 그리고 세 살 때, 후사가 없던 큰 집으로 양자로 입양되는데, 이때부터 그의 고난의 인생이 시작된다.
  큰아버지는 좌익활동을 하다가 자수하여 ‘보도연맹’에 가입했지만 6·25 전쟁이 발발하자 의령군 정곡면 막실재에서 부역자라는 누명을 쓴 채 희생되었다. 이 때문에 그에게는 부역자의 자식이라는 주홍글씨가 늘 따라 다녔다. 남편(호적상 아버지)의 누명을 풀 수 있는 방법은 자식을 판사로 만드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한 큰어머니는, 그가 판사가 되기를 기원하며 공부를 위해 마산으로 이사했다.
그러나 전 재산을 팔아 구입한 마산의 집이 1년 반 만에 철거를 당할 무허가 건물에 땅도 사기를 맞아 모자는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나 앉았다. 이때부터 그는 학업을 포기해야만 했고, 목공소·수도공사·건설현장 등에서 막노동을 하며 생계를 꾸리다가 독학으로 작곡을 터득하여 곡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서는 법관이 되는 방법밖에 없다고 판단한 그는 독학으로 법학을 공부해 제17회 사법시험에 응시했으나 낙방했다. 이듬해 제18회 시험에 응시했을 때 숙부님이 그를 불러 집안이 연좌제에 걸려 있어 합격되어도 판사로 임용이 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비밀을 알려 주었다. 어머니를 빚쟁이들로부터 구할 수도 없고, 또 자신은 공무원은 물론 대기업에도 입사할 수 없는 법정 무능력자라는 십자가가 지워져 있음을 그때서야 알게 된 그는 삶의 희망을 잃고 1979년 태풍 어빙호가 내습한 날 낙동강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그러나 하늘이 허락하지 않아 되살아난 그는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바보같이 내가 왜 죽으려 했을까? 죽을 수 있는 이 용기로 세상을 산다면 내가 이룰 수 없는 것이 무엇이 있으며 해 내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는 죽음을 초월한 이 깨달음을 얻자 그 순간부터 지금 TV에서 보는 웃음과 미소가 얼굴에 늘 가득 피어나게 됐다고 말한다. 즉, 그는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서, 다시 태어난 사람이 된 것이다. 인생의 가장 밑바닥까지 처절하리만큼 추락해 봤기 때문에 그에게는 어떠한 고난도 실패도 본전이다.
“저는 성공할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최악의 실패를 해도 저는 본전이거든요. 더 이상의 실패는 없기 때문에 성공밖에는 더 있겠습니까?”
  그는 연좌제(1980년에 폐지됨)로 법관이 될 수 없는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작곡가가 되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6~7년간의 긴 방황기를 거치면서 김밥장사·스탠드 바 M.C 등을 전전하다가 1987년 여고생 가수 ‘문희옥의 사투리 디스코’를 발표하면서 일약 가요계의 중심에 우뚝 서게 되었다. 한번 꽃이 피자 마치 팝콘이 터지듯이 <짝사랑><잠깐만>(주현미), <원점>(설운도), <싫다 싫어>(현철), <사랑의 불시착>(박남정) 등이 연달아 히트하면서 최고의 작사가로 급부상하였다. MBC 최고인기가요상을 1989년과 1990년 등 2년 연속 수상했다.
1991년에는 작곡가로 변신하여 <다함께 차차차>(설운도), <찰랑찰랑>(이자연), <찬찬찬>(편승엽), <카스바의 여인>(윤희상), <삼각관계>(강진), <내장산>(김용임), <10분 내로>(김연자) 등 890여곡을 발표하는 가요계의 미다스의 손으로 변신했다. 한국연예예술대상 작곡상과 국무총리상 등을 수상했다.
1993년에는 방송계로 진출하여 1997년 KBS2라디오 <이호섭ㆍ임수민의 희망가요>를 비롯하여 여러 방송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아 1995년 제22회 방송대상 M.C상, 한국연예예술대상 라디오 진행상 등을 수상했다.
그 사이에 그는 독학으로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와 대졸학력인정 독학사 시험에 합격하였다. 학교를 다니지 못한 한을 안은 채 살아왔던 그는 그동안 작곡가로서 터득한 음악적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학문에 기여하고자 2012에 서강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에 진학하였다. 본업인 작곡가와 방송인 생활을 하면서 학교를 다녀야 했던 그는 늘 시간이 부족했지만, 평생 그토록 다니고 싶었던 학교를 다닌다는 사실에 피곤한 줄도 모르고 달려왔다. 힘들 때마다 스스로에게 <꿈꾸는 새는 날개를 접지 않는다>라고 채찍질을 해 왔다. 자녀 또래의 대학원생들과 동학이 된 관계로 부모 세대의 표상으로서 모범이 되고자 노력했던 그는 석사와 박사 전 과정을 성적 장학생으로 졸업해 더욱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의 성적표는 대부분의 과목이 A+이다.
‘집 없는 아이’로 태어나 친부모를 떠나 양자로 입양되어 빚과 연좌제의 질곡을 차야만 했고, 그 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파란 많은 그의 인생은 가요계로 방향타를 틀면서 오랜 고생 끝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 작곡가로 또 방송인으로 늘 구김살 없는 웃음을 던져 ‘미소천사’로 불리는 그의 웃음 뒤에 가려진 눈물겨운 사연이 지난 8월 14일, TV조선의 <마이웨이>에서 소개되면서 그에 대한 응원이 빗발치고 있다. <마이웨이> 사상 최고의 시청률은 물론 게시판에 수많은 응원의 글이 달려 제작진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음악에서부터 방송 진행 및 박사학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오로지 노력과 인내로서 독학으로 일궈냈기에 더욱 값진 이호섭의 독학 인생! 그는 앞으로 가요대학교를 설립하는 것이 꿈이다. 그 꿈이 실현될 때까지 꿈꾸는 새는 결코 날개를 접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입력 : 2019년 08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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