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臥薪嘗膽(와신상담)

장해숙의 고사성어 풀이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입력 : 2020년 07월 08일
臥薪嘗膽(와신상담)

장해숙의 고사성어 풀이

ⓒ 의령신문
주(周)나라 경왕(敬王) 이십사 년, 오(吳)의 합려왕은 월(越)의 구천왕(句踐王)과 취리는 곳에서 싸워 월의 전략에 걸려 패했다.
그때 오나라 합려왕은 적의 화살에 맞아 손가락을 다쳤는데 패해서 도망치는 중이라 충분한 치료도 못한 채 가까스로 형이란 곳까지 도망쳐 왔으나 갑자기 그 상처가 악화해서 죽었다.
그는 마지막 숨을 거둘 때 태자 부차(夫差)에게 반드시 월나라에 복수하여 이 분함을 풀어야 한다고 유언했다.
부친의 뒤를 이어 오왕이 된 부차의 귀에는 부친의 그 목소리가 떠난 적이 없었다. 눈에는 부친이 임종할 때의 그 분함 표정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부친의 원수만은 갚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심 아래 매일 밤마다 장작 위에서 잠자고(臥薪) 그때마다 부친의 분함을 되새기면서 복수심을 더욱 굳혔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방을 출입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부친의 임종의 말을 외치게 했다.
“부차여, 너의 아비를 죽인 자는 월왕 구천임을 잊어선 안 된다!”
“네,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삼 년 안에 반드시 원수를 갚겠습니다.”
부차는 그럴 때마다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은 그가 임종하는 부친에게 대답한 말과 같았다. 이렇게 해서 그는 낮이고 밤이고 복수를 맹세하고 쉬지 않고 군사를 훈련하며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월나라의 구천왕은 이 소문을 듣자 먼저 앞질러서 오나라를 치고자 그의 다시 없이 좋은 신하인 범려의 충고도 듣지 않고 군사를 일으켰다. 부차는 지체 없이 이를 맞아서 싸웠다. 양군은 오나라의 부초산에서 격돌했으나 부차의 세찬 복수심으로 단련된 오나라의 군사에 의해 월나라군은 대패하여 구천왕은 패잔병을 이끌고 가까스로 회계산으로 도망쳤다.
오나라군은 진격하여 그 산을 둘러쌌다. 오도 가도 못하게 된 구천은 나라를 버리고 오나라의 신(臣)이 된다는 조건으로 항복 했다.
힘껏 싸워서 죽기는 차라리 쉽다. 그러나 죽고 나면 그것으로 끝장이다.
또 다시 월나라를 일으키려면 살아서 창피를 견디는 수밖에 없다는 범려의 충언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구천왕의 항복을 받은 부차는 승자의 넓은 도량으로 그를 용서 했다.
구천왕은 고향으로 돌아가게는 되었으나 그 나라는 이미 오의 속령이고 자신은 오왕의 신하라는 신분이다.
지난날에 부차가 장작 위에서 잠자며 복수심을 굳혔듯이 구천은 항상 몸 가까이에 쓸개를 놓아두고 앉았을 때나 누웠을 때나 음식을 먹고 마실 때나 언제나 그 쓴 쓸개를 핥으며(嘗膽) 회계산에서의 치욕을 생각하며 복수심을 불태웠다.
그는 또 손수 밭갈이를 하고 농사를 지었으며 아내도 직접 베를 짜고 조의조식(粗衣粗食)을 감수했으며 사람을 잘 부리고 그 충언을 들으며 항상 굳굳하고 당찬 마음을 먹고 고난을 견디며 오로지 국력이 다시 발흥하기에 힘썼다. 그러나 그 복수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구천왕이 회계산에서 오나라에 항복하고 십이 년이 지난 해의 봄, 오왕 부차는 기(杞)의 황지에 제후들을 모두 모아놓고 천하의 패권을 잡았다.
부차는 득의의 절정에 있었다. 그때 고때까지 은인자중하고 있었던 구천왕은 범려와 함께 부차가 없는 틈을 타서 일거에 오나라를 쳐들어갔다. 구천은 오의 잔류군을 대파하기는 했으나 결정적인 타격을 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사년 뒤 구천왕은 다시 오를 공격 했다. 지금의 소주(蘇州) 동남방에 있는 입택이란 곳에서 오군을 크게 무찌르자 그대로 그 곳에 병사를 주둔시키고 각지에서 오군을 패주케 했다. 그리고 이 년 후 다시 입택에 집결한 월군은 오나라의 수도 고소까지 육박하더니 이듬해에는 드디어 고소성을 포위하고 오왕 부차의 항복을 받았다.
이렇게 해서 회계의 치욕을 씻은 구천왕은 부차를 남동으로 귀양 보내고 그 곳에서 여생을 보내게 하려 했으나 부소는 구천왕의 호의를 거절하고 깨끗하게 스스로의 목을 베어 죽었다.
구천왕은 다시 북쪽으로 진군시켜 회하를 건너 제 진 등의 제후들과 서주에서 서로 합친 후 오나라를 대신 해서 천하의 패권을 잡았다.
복수심을 품고 항상 그것을 잊지 않으려고 고난을 견디는 과정을 와신상담이라 하는데 이것은 오왕 부차와 월왕 구천의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오나라와 월나라가 서로 원수가 되어 싸우듯이 극히 사이가 나쁜 상태를 오월이라고도 한다.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입력 : 2020년 07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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