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와의 인연
이종순(재부 의령군향우회 자문위원/ 사단법인 고루 이극로 박사 기념사업회 이사)
우리 집 옥상은 오래 전부터 분으로 텃밭을 이루어 대추나무, 앵두나무, 포도나무, 가지, 고추, 토마토, 오이 등 각종 채소류를 무 농약으로 재배하면서 때로는 음식찌꺼기도 주다보니 터줏새 까막까치와 참새 등 여러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들어 먹이를 찾고 매미가 둥지를 틀고 벌과 나비, 잠자리가 노니는 꽃동산 같은 곳이다.
이곳에 지난 7월 16일 금요일 오후 5시경 텃밭에 물을 주고 있는데 까마귀 한 마리가 머리 위로 날아들었다. 순간 깜작 놀라기도 하면서 호수를 놓고 까마귀를 잡으려 달음박질로 잡고 보니 몸 길이가 약 50cm 정도였고 커다란 부리로 콱콱거리며 좇으려 하여 놓아주었으나 까마귀는 가지 않고 바닥에 물을 먹고 있었다. 목이 말라 왔는가 생각을 했는데 날아가지 않고 하루 밤을 새웠다.
토요일 아침 5시경 올라가 보니 까마귀는 이리저리 서성거리고 있었다. 옛날 말에 까치가 울면 길조이고 까마귀가 울면 흉조라 하였는데 내 집에서 하루 밤을 지새웠으니 불청객 같은 존재였으나 일단 길조와의 인연이라 생각하고 먹이로 멸치 대가리를 주었으나 먹지 않았다. 토요일 외출을 하고 오후 5시경 돌아오니 계단에 새의 분비물이 있어 이상하게 생각하고 4층까지 올라가니 배설을 해놓고 철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몸이 아픈 것 같아 병원으로 가기위해 잡았으나 처음처럼 반항하지 않았다.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동물병원으로 달려가면서 보험도 안 될 텐데 치료비는 얼마나 달라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토요일이라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다시 집 옥상에 놓아두고 분에 물을 주고 있는데 고개를 돌려 물줄기에 물을 받아먹고 있었다. 이제 경계를 하지 않고 식구 같은 느낌으로 가까이에서 친밀감이 생겨서 삶은 감자를 잘게 잘라서 주었으나 역시 먹지는 않았다.
일요일 아침에 올라가니 앵두나무 위에서 나를 주시하며 콱콱거렸다. 말은 통하지 않았으나 2박 3일간 잘 있다가 간다는 인사를 한 것 같았다. 아침식사를 하고 올라가보니 날아가고 없었다.
그간 관심을 갖다 보니 정이 들었는지 서운하였지만 자연으로 돌아갔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만에 하나 집에서 생을 마감하였더라면 치료를 시키지 못한 자책감에 후회할 뻔도 했다. 야생조(野生鳥)가 4층까지 계단으로 오른다는 것은 인연이 아니고서는 이해가 어려운 일이다.
고려시대 정몽주 선생의 어머니께서 자식교육을 위해 지은 시(詩) 한 수가 전해오는데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난 까마귀 흰 빛을 새오나니/ 청강에 고이 씻은 몸 더럽힐까 하노라”하였으나 까마귀와 관련된 고사성어 반포지효(反哺之孝)의 뜻은 까마귀 새끼가 자란 뒤에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주는 효성이라는 뜻으로 자식이 자라서 부모를 봉양한다는 뜻이며, 오조사정(烏鳥私情)은 까마귀가 새끼 적에 어미가 길러준 은혜를 갚는 사사로운 애정이라는 뜻으로 자식이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려는 뜻이고, 원걸종양(願乞終養)은 부모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봉양하기를 원한다는 지극한 뜻을 이르는 말로 까마귀는 우리사회에서 퇴색되어가는 효 문화에 시사(時思)하는 바가 크다.
또한 까마귀는 작은 양의 물병에도 돌을 넣어 물을 먹을 정도로 지능이 발달하여 7세 아동의 수준으로 옛날에는 길조(吉鳥)라 하였으나 중국의 한자문화와 좋아하는 붉은색의 상극이 되는 검은색을 경시하였고 중세 유럽에서는 죽음을 의미하며 인간의 인식변화로 흉조라 하였으나 이제 더 이상 흉조(凶鳥)가 아니라 효심(孝心)이 지극한 효조(孝鳥)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