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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 의령군향우회 임원

가례면 밀양박씨졸당공파 재실 ‘고금정’ 방문
편집부 기자 / 입력 : 2013년 06월 18일












지난 6월 1일 의령에서 개최된 제3회 의병의날 기념식에 참가했던 재경 의령군향우회(회장 이종규) 임원 및 회원 40여명은 이날 오후 3시 귀경길에 가례면 수성리에 있는 밀양박씨 졸당공파(拙堂公派) 박서휘(朴瑞輝)후예문중(회장 박경묵)의 재실인 고금정(鼓琴亭)을 방문했다.


이날 행사는 재경 의령군향우회가 5년 전부터 고향의 뿌리알기 차원에서 회원들의 문중을 순회 방문하는 것으로서 올해에는 퇴휴헌(退休軒) 박서휘공의 14대손인 박인묵 재경 유곡면향우회장의 주관과 졸당공파 박서휘후예문중의 후원으로 고금정에서 이뤄지게 됐다.


박경묵 문중회장은 깨끗하게 소제된 퇴휴정 대청마루에서 다과로 방문객을 대접한 후 환영사를 통해 재경 향우들의 방문을 환영한다며 문중을 소개했다.


이에 이종규 회장은 문중의 환대와 주선한 박인묵 회장에 감사하다며 이 같은 행사가 재경 향우들의 고향알기와 고향에 대한 자긍심 고취에 큰 도움이 된다며 행사의 의미를 강조하는 인사말을 했다. 박경묵 회장이 소개한 문중의 내력은 다음과 같다.


고금정은 의춘지(宜春誌)의 기록에 의하면 해남 현감, 충청병마절도사을 지낸 퇴휴헌(退休軒) 박서휘(朴瑞輝:1560~1633)공이 기유년(1608)에 평양우후로 등용되었으나 광해군의 실정과 권귀(權貴)의 전횡에 실망하여 관직을 버리고 낙향, 합천 삼가(대병면 성리)에서 처가인 의령 가례로 이사 온 후 73세로 별세하기까지 거문고를 타고, 설학 이대기, 부사 성여신, 죽헌 하성, 노파 이흘 등 지방의 유학자들과 종유하며 만년을 보낸 곳이다.


처음으로 건축된 고금정은 가례마을 동쪽의 야대위에 있었는데 중년에 황폐되었던 것을 중추원 참의를 지낸 박응화(朴應和)공이 주선하여 후손들에 의해 1913년에 지금의 이곳으로 옮겨 지은 것이니 올해로 이축한 지 100주년을 맞이했다.


퇴휴정 박서휘공은 박혁거세를 시조로, 신라 경명왕의 왕자 8대군 가운데 밀성대원군 언침(彦忱.시조의 30세손)의 후손인 박언부(彦孚)를 중시조로 한 밀양박씨의 후예이다. 특히 고려 8은과 두문동 72현의 한 분으로 칭송받는 송은 박익(松隱 朴翊)공의 넷째 아들인 증이조참판인 졸당 박총(拙堂 朴聰)은 퇴휴정의 6대조이자 파조(派祖)가 된다.


퇴휴정의 고조부는 태인현감을 지낸 박희문(熙文)이며, 증조부는 적량 만호였던 박언림(彦林), 조부는 수성제 박운(修誠齊 朴芸)공, 부친은 용매 만호인 박사신(朴士信)공이다.


신덕산 자락의 고금정은 ‘맑은 물을 뜬다’는 의미의 ‘읍청문(挹淸門)’을 들어서면 4칸 측면 2칸의 8작 지붕으로 사방에 흙 돌담장으로 둘러 싸여있다. 건물 중간의 두 칸을 사이에 왼쪽은 재실격인 ‘원덕제(遠德齊)’, 오른쪽은 강학과 시회의 장소인 ‘퇴휴헌(退休軒)’이다.


고금정은 임진왜란 때 정암진 전투와 정유재란 때의 화왕산 전투를 승리로 이끈 망우당 곽재우 의병장, 송암, 김면 등이 퇴휴헌공과 충의를 맹약하며 시를 주고받은 우국충정이 깃든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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拙堂公의 부친 松隱선생은


‘不事二君’한 고려말 충신


밀양박씨졸당공파의 파조는 졸당(拙堂) 박총(朴聰)이다. 졸당의 부친은 시조 박혁거세의 44세손(중시조 밀성대군의 15세손)인 송은(松隱) 박익(朴翊: 1332∼1398) 선생이며, 조부는 고려조의 익대공신으로서 판도판서 삼재상을 역임한 은산부원군(銀山府院君) 박영균(朴永均)의 장남이다.


송은 선생은 여말의 문신이자 두문동 72현 중의 한 분이다. 자는 태시(太始), 호는 송은(松隱), 본관은 밀성으로, 밀양시 부북면 사포리에서 태어났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한 후, 동경판관(東京判官)·예부시랑(禮部侍郞)·세자이부중서령(世子貳傅中書令) 등을 역임했으며, 무예에도 뛰어나 여러 번 왜구와 여진을 토벌하여 전공을 세웠다. 그러나 이성계가 즉위하자 벼슬을 버리고 송현(松峴)에 은거해 스스로 장님이라 일컬으며 저술에 전념했다.


그 뒤 이성계가 송은 선생에게 공조·형조·예조·이조판서와 좌의정 등을 제수했으나 사양하고 포은 정몽주·야은 길재·목은 이색 등과 교유하면서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켜 후에 팔은(八隱)으로 칭송됐다.


송은 선생은 사형제를 두었는데 첫째가 우당(憂堂) 박융(朴融)으로 우당공파조(憂堂公派祖), 둘째는 인당(忍堂) 박소(朴昭)로 인당공파조(忍堂公派祖), 셋째는 아당(啞堂) 박조(朴調)로 아당공파조(啞堂公派祖), 넷째는 졸당(拙堂) 박총(朴聰)으로 졸당공파조(拙堂公派祖)이다.


송은 선생이 네 자식들의 호를 ‘우당(憂堂)’, ‘인당(忍堂)’, ‘아당(啞堂)’, ‘졸당(拙堂)’으로 짓게 된 것은 그 뜻이 바로 모두 난세의 처세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식들에게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으로 시대가 달라졌으니 너희들은 다른 왕조에 충의를 다하라”란 유서를 남겼다. 이것 역시 시대를 사는 송은 선생의 철학이 담겨 있다고 하겠다.


현재 의령군에는 송은 선생의 셋째 아들 아당(啞堂) 박조(朴調)공을 파조(派祖)로 하는 아당공파의 후손들이 유곡면 신송산(1~3구)에 집성촌을, 넷째 아들 졸당(拙堂) 박총(朴聰)공을 파조로 하는 졸당공파(拙堂公派)의 후손들이 가례면 수성리와 정곡면 죽전리, 그리고 지정면 성당리 등지에 많이 살고 있다. 박해헌 발행인

편집부 기자 / 입력 : 2013년 06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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