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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령신문 |
| 애순) “그래 맞다. 나라 구한다꼬 니 남편 전쟁터로 나갔을 때...살아볼라꼬 억척을 부리는 니가 ...내 사실 멋지다 생각했다.”/ 관식) “맞지요. 양곡네처럼 자기 자리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 내는 그기야말로 나라를 구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더”/ 만복이) “그렇지! 마 의병이 따로 있나?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기 나라 사랑이고 의병의 일이지. 안 그렇습니까?” (제 50회 홍의장군축제 이머시브 마당극 ‘모두가 의병’ 중 대사 일부 인용)
지난 4월 17일∼20일에 열린 홍의장군 축제는 사) 의병기념사업회 주최로 의령 군민공원 일원에서 개최되었다. 의령 군민공원은 성대한 축제의 한마당이 되고 그 중앙 사거리에 옛 모습 그대로를 재현한 조선의 저잣거리가 펼쳐졌다.
그 저잣거리를 무대로 특별한 연극 한 편이 무대에 올랐다. 임진년 왜란으로 나라가 진퇴양난에 빠지자 곽재우 장군은 분연히 일어나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키던 그때, 경상도 어느 저잣거리에서 민초들은 고군분투 삶과 싸우고 있었다. 이번 공연은 고초를 겪는 민초들의 이야기를 이머시브(관객참여) 마당극 형식으로 진행하어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모두가 의병’이란 제목처럼 칼을 들고 전장에서 싸우진 못 하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자식을 키우며 끝까지 살아낸 사람들 모두가 의병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 이번 홍의장군축제의 큰 주제 (의병! 과거와 현재의 만남 “나도 의병”)과도 맥을 같이 한다.
이 연극을 이끌고 있는 ‛달다방 프로젝트’의 김정아 대표는 “처음 홍의장군 축제 추진위원회의 요청을 받고 ‛홍의장군’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특히 해전이 아닌 육지전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 시대엔 곽재우 장군이라는 위인뿐 아니라 모든 민초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책임을 다하고 때로는 죽음을 불사르며 이 나라를 지켜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이 극의 내용을 (민초들의 이야기)로 전환·기획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제 마치 옛 조선의 저잣거리로 들어 온 시간 여행자처럼 이 연극의 인물들을 만나보자.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전국의 장터로 말을 팔고 다니는 장돌뱅이 만복이, 허풍스럽지만 유쾌하다. 언년이는 양곡집 상인으로 남편이 의병으로 전장에서 죽고 홀로 다섯 아이를 키우느라 부지런하고 억척스럽다. 남몰래 의병 활동을 하며 장터 짚풀집에서 장사하는 관식이와 그의 아내 애순이. 그들은 ‛상놈’이라는 천시받는 신분으로 장터에서 힘겹게 생계를 이어 나가고 있다.
따각-따각-따각! “이랴!” 장돌뱅이 만복의 등장은 요란스럽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조선 최·고·의 말·장·수“라고 허풍스럽게 외쳐대며 관객들을 말에 태우고 장터를 누비며 논다. (물론 진짜 말은 아니다.) 당시 장돌뱅이는 마을 간 물자를 나르고 민초들의 힘겨움을 웃음으로 위로하며 바깥에서 일어나는 소식을 전달하는 중요한 메신저 역할을 했다. 관객들은 함께 말을 타고 즐기며 극 속으로 한 발짝 들어간다. 이것이 이머시브 공연의 묘미다. 때때로 장터는 생계의 터전이다 보니 서로의 이해관계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언년) “쌀가마니 지푸라기 모아가 맹글어 봤어예 하나 살랍니꺼?”/ 애순) “이기 무슨 소리고? 느그 양곡집 아이가? 우리 장에 짚풀집이 없는 것도 아이고 여서 망태기를 이래 이래 팔고 있다꼬?”/ 언년) “언·니 망태기는 그 집만 팔아야 한다고 누가 그래요? 그런 법이 있으면 함 들고 와봐요.”/ 애순) “뭐 법? 왜놈들 맨치로 상도덕도 모리고 그저 지 잇속만 챙기믄 그만이지.”/ 언년)“왜..왜...왜놈? 여기서 왜놈이 왜 나와요?” 언년과 애순의 투닥거림이 격해지자 관식은 애순을 만복은 언년을 말린다.
이쯤 되면 관객들도 싸움 구경이 마냥 재미있을 순 없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둘의 싸움을 지켜본다. 언년(울먹이며) “내가 아만 다섯이다. 전쟁통에 서방 잃고 아들하고 우짜든둥 먹고 살아 볼라꼬 부지런히 이것 저것 맹글어 파는 것도 죄가?” (점점 복바친다.) / 만복) “아이고 혼자 고생하면서 열심히 살았는데...고만 진정하이소” / 관식) “자네도 그만 하소. 와 모질게 몰아 세우노. 이웃 간에 이러지 마소.”/ 애순) “지만 새끼 키와요? 당신은 제발 우리 걱정도 좀 하소. 요새는 뭐...뭐꼬...의병? 나라 걱정 혼자 다 하제. 내는 뭐 쇠로 된 가슴이라 나라에 전쟁이 났다캐도 꿈쩍 안 하고 있는 줄 알아요? 전쟁이 나믄 뭐! 사람이 죽어가는 기 뭐! 내는 그딴거 하나도 안무서버요. (아들 생각하며) 내는 오늘 밤에 묵을꺼 없어가 물 한 바가지에 밥 한 줌 겨우 풀어가 그 밥물로 끼니 때울까...내 새끼 그래 굶길까...그 걱정이...그기 젤로 무서버요.” 이 장면을 지켜보는 관객도 자식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렇듯 장터는 민초들의 생존의 터전이고 소통의 장이며 웃고 싸우고 화해하고 부대끼는 인간 냄새나는 생활 공간이다.
연극을 끝까지 지켜본 유모씨(의령군 거주)는 “우선 재미있게 봤어요. 배우들의 연기가 무대와 의상, 배경음악과 잘 어우러져 몰입할 수 있었어요. 당시 민초들의 삶도 실감났고요. 특히 난세에도 자식을 키우고 지키려는 모성애에 깊이 공감했어요. 사실 이런 마음 하나하나가 모여 이 나라를 지탱해 온 것이 아니겠어요?”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렇다면 이 연극을 공연한 ‘달다방 프로젝트’는 어떤 팀인지 알아보자. 가장 인상적인 공연이 (섬집, 엄마)가 아닐까? 이 연극은 평소 연극을 접하기 어려운 섬마을을 찾아가서 주민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채록한 뒤 각색하여 무대에 올린다. 그리고 주민들을 위한 마을잔치로 극을 마무리한다. 극단의 배우들과 섬마을 주민들이 어우러지는 (잔치 한마당)같은 기획이 신선하다. 그래서일까? 이 공연은 주민과 관광객에게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한마디로, 관객에게 찾아가는 연극! 특히 문화 소외 지역의 주민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로 만든 연극을 눈앞에서 본다면 얼마나 감격스러울까? 이렇듯 문화는 위로이고 희망이고 행복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문득 (이야기가 가진 힘)에 주목했다. (이야기)에는 누구나 매료된다. 또 어떤 주제를 전달함에 있어 쉽고, 재미있고, 감동을 주는 가장 효율적인 매체이다. 여기에서 오태완 군수의 ”반세기를 지켜 오면서 의령군이 전파한 ‛의병정신’은 현재 대한민국 국민에게 꼭 필요한 시대 정신입니다.“라는 말이 의미있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이 ’의병정신‘에 이야기를 입히고 그것을 극으로 만들어 하나의 문화로 정착시켜 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문화는 과거를 현재로 연결시키며 미래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리고 의미를 공간적으로 확장하는 기능도 한다.
이번 연극은 그런 의미에서 과거의 의병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리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누군가 “당신은 지금 무엇을 지키며 살고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특별한 사람만이 대단한 것을 지키는 게 아니라 일상 속에서 가족을 지키고 일터에서 책임을 다하는 평범한 ‛우리 모두가 의병’이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것이다.
연극이 끝난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위에서도 “나도 의병” “너도 의병” “모두가 의병”이라고 배우들과 관객이 함께 부르던 노래가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허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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