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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당 서세 400주기에 되새기는 ‘의령 구하기’

의병제전, 명품문화관광축제로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입력 : 2017년 06월 07일
망우당 서세 400주기에 되새기는 ‘의령 구하기’

의병제전, 명품문화관광축제로
<1> 의령의 현주소

출산 감소와 초고령사회 진입
고령인구 자연 감소로
공동체의 존립 근간 위협
의령군 인구 감소는 ‘심각’ 단계

일자리 부족 등 여러 현상
복합적으로 빠르게 진행
의령만의 정밀한
중흥시스템 만들어야 할 시기

의령신문은 45년의 연륜을 가진 의병제전이 명품 문화관광축제로 도약하는 것을 모색하기 위해 모니터링, 모니터링 평가회, 관계전문가 조언 등을 기획하였다. 이를 위해 최근 연구된 1) 곽재우 선비의 생애와 정신을 정리하고, 지방이 가진 공통문제(인구 감소)에 대한 의령군민의 자세, 2) 2017년 4월 21일부터 4월 23일까지 의령군 일원에서 열린 제 45회 의병제전 행사전반에 관한 모니터링과 모니터링 평가회 정리, 3) 관계 전문가의 조언과 인근 지자체(창녕, 함안, 합천, 산청, 거창 등)의 문화행사 등을 조사하고 종합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로 하였다. <편집자 주>

올해는 임진왜란 당시 의령에서 전국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켰던 망우당 곽재우(1592∼2017) 홍의장군 서세 400주년이다. 망우당 곽재우 선비를 기리는 사업으로 1955년 3월 창립된 ‘곽 망우당 기념사업회’는 1959년 ‘홍의장군 곽망우당’, ‘홍의장군’, ‘망우당전서’, ‘망우당 곽재우 연구’와 같은 전기 논문집 간행, 1971년 김현택, 오윤부, 권수기 등이 의병기념사업회(회장 안호상)를 발족하였으며, 그 후 의병탑 건립추진위원회(회장 김현택)가 건립 모금운동을 전개하여 1972년 1월 15일 착공하여, 1972년 4월 22일 높이 27m의 의병탑을 의령읍 남산 기슭에 세웠고, 1973년 4월 22일 제 1회 의병제전을 거행하였다. 1976년 박정희 대통령의 분부로 정부에서 충익사 성역화사업 시행을 결정하였고, 예산 7억 6천만 원을 들여 1978년 12월 22일 충익사 성역화 사업을 준공하였다. 2010년 의령군민의 청원을 받아들여 6월 1일을 ’의병의 날‘을 지정하였다. 의병제전은 2017년 경상남도 대표 문화관광축제로 선정되었다.

역사를 볼라치면 어떤 계기로 한 인간과 그와 뜻을 같이하는 집단이 등장하기도 한다. 곽재우 선비와 그와 함께한 17장과 무명의 의병들이 그런 경우다. 막상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걸고 국가와 이웃을 위해 나선다는 것은 한 인간이 갖고 있는 총체적 인격을 나타내는 것이다. 곽재우 선비의 창의는 곧 그의 인격 자체다. 곽재우 선비의 과감한 창의 결단과 경상우도 동문들과 민초들이 합심 합력하여 낙동강과 남강 유역에서 이룬 의병의 성과는 불멸의 역사가 되었다.

2014년 7월 남명학연구원에서 발간한 ‘망우당 곽재우’는 그간 곽재우에 관한 연구논문 중에서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묶은 책이다. 곽재우 정신은 전통문화인 유학에 근거하였다. 곽재우는 그 당시 주류학문인 성리학에만 몰두하지 않고 현실에 유용한 학문을 폭넓게 학습하였다. 그의 정신세계는 성리학의 2대 도덕범주인 인의(仁義)가운데 의(義)에 편중되어 강한 엄숙성, 동적 에너지를 띠었다. 그 스승에 그 제자라는 말이 남명 조식과 망우당 곽재우만큼 적합한 예도 없다.

곽재우 선비는 왜적의 침입에 나라가 위기에 이른 것은 대내적인 모순 탓이라고 인식하고 김수와 같은 부패한 공권력을 더 중요한 적으로 간주하고 선전포고 하였다. 대외적으로는 왜적과 대내적으로는 정부의 부패한 공권력과 싸운 유일한 의병장이었다.
곽재우 선비는 친가를 비롯한 외가, 매가 등 친족이 부유한 가산을 기초로 강력한 경제적 기반과 많은 노비를 소유하고 있었다. 지역적으로 의령, 현풍, 밀양, 창녕, 함안, 산청, 합천의 대표적 사족들과 깊은 연관을 갖고 있었고, 연혼한 가계들 대부분이 문과를 통해 중앙에 진출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가계와 지역적. 경제적 기반이 저절로 의병활동으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었다. 곽재우 선비가 갖고 있던 개인적 성품과 리더십이 구심점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6세에 조식의 외손서가 된 곽재우는, 아마도 15세 이전에 남명 조식한테 글을 배웠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영남학파의 학맥을 이은 명문사족의 후손으로 가계와 학문이 모두 출중하였다. 25세 때는 의주목사로 부임한 부친 곽월을 따라가 번화한 의주에서 3년을 보냈고, 27세 때는 부친의 사행 길을 배행하여 당시 동양문물의 중심지인 북경에서 몸소 선진문물을 견학할 기회를 가졌다. 34세에 이르러 과거를 치름에 합격여부에 구애되지 않고 쓰고 싶은 내용을 쓴 끝에 합격된 과거가 취소되었다. 부친의 별세로 여묘삼년의 상례를 끝낸 곽재우는 38세에 풍광이 아름다운 의령현 돈지강(낙동강과 남강 합류지역) 가에 은둔하기로 결심하였다. 돈지강사 생활 3년 만에 발발한 임진왜란을 맞아 자신의 사재를 털어 가장 먼저 창의하여 낙동강 본류와 남강유역을 방어선으로 유격전술을 구사하여 왜적의 보급로와 전리품 수송로를 차단하여 왜적의 호남침입을 차단하고 경상우도를 지켜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수군이 해상작전을 안심하고 수행할 수 있도록 후방기지를 확보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41세 때부터 46세 때까지 약 오년간 그가 중심이 된 의병은 빛나는 전공을 성취하여 의령의 영원한 자랑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당시 임금 선조는 곽재우를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하였고, 이를 안 곽재우는 전란이 끝난 후 벼슬을 버리고 영산 현 낙동강 변에 망우정을 짓고 은거하면서 생의 마지막을 보냈다.
곽재우의 충은 군을 위한 충이 아니라 민을 위한 충이었다. 당시 동서분당 이래 인물논평에 관한 문헌은 공사찬을 막론하고 서술태도가 당색에 따라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은 경우가 많은데, 유독 곽재우에 관한 기술에는 폄훼하는 자료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그는 명리에 초연했을 뿐만 아니라 군신간의 시기와 관·의병장 연루 투옥 등 혼란한 분위기 속에서 지혜롭게 대처하여 끝내 명철보신하였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곽재우 리더십연구, 곽재우를 내조한 부인, 곽재우를 도운 17의병장 가계연구 등이 아닌가 한다.

의령군이 발간한 2015통계연보에 의하면, 가장 인구수가 높았던 때가 1965년 107,208명이다. 의병탑이 건립된 1972년 당시 인구는 91,451명, 2014년 29,209명이다. 2003년 6월 의령군에서 간행한 의령군지(하권), 제 8장 의령교육의미래(1379쪽)에는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충절. 학문숭상의 애향심 고취, 여러 방면에서 인구 증가대책을 들고 있다.

지난해 한국고용정보원 자료에 의하면 전국 기초 자치단체 84곳이 30년 이내에 없어질 위기에 처한 곳으로 나타났다. 의령은 출산인구감소와 초고령사회 진입, 고령인구 자연감소로 공동체의 존립 근간이 위협받고 있다. 요즘 농촌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귀농과 귀촌 등 전입 장려정책만으로는 인구증가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의령군 인구감소는 ‘심각’ 단계로 특단의 대책이 긴요하다. 일자리 부족 등 여러 현상이 복합적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의령만의 정밀한 중흥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지방소멸 위기는 새로운 발상을 요구한다. 훌륭한 지방은 우연과 행운이 아니라 지혜와 윤리적 결단의 산물이다. 지방이 훌륭해지려면 지방자치단체 행정에 참여하는 군민과 고향을 아끼는 향우들이 훌륭해야 한다. 의령을 아끼는 군민과 향우들 각자가 어떻게 해야 지방소멸위기를 극복하고 스스로 훌륭해질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시대정신이란 우리고장의 현재를 진단하고 우리고장 미래를 전망하는 가치의 집약이다. 지금 요청되는 의령의 시대정신으로 ‘지방중흥’을 생각해 보았다. ‘곽재우 정신’을 되살려 지방소멸위기를 극복하는 ‘의령인의 집단지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자는 뜻이 담겼다.
425년 전 곽재우 선비가 우리 고장을 지킨 지혜와 지식과 그 배경을 깊이 안다면,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지방소멸문제에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남명 조식은 국가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제자들에게 ‘살아 있는 선비정신’의 핵심인 경(敬), 의(義)를 강조하였다. 행위와 실천의 개념이 뚜렷하지 않은 조선중기 성리학의 한계를 남명 조식은 간파했기 때문이다. 간략하게 현대식 표현으로 경은 개인의 도덕적 실천이고, 의는 적극적인 사회적 실천이다. 곧 지행합일이자 솔선수범이다. 곽재우 선비는 ‘경의’와 함께 공자가 편찬한 ‘춘추’에 입각한 절의정신을 현실세계에 적극 참여하는 실천적 지표로 인식하였다. 곽재우는 지역사정에 밝았고, 현실에 유용한 학문을 폭넓게 학습하여 창의로 솔선수범하고, 경상우도 남명 문인들의 깊은 신뢰를 받았다.
사람과 사람간 신뢰는 개인의 도덕적 실천(敬)임을 깨닫고, 열린 마음, 도전정신, 열정, 전문성으로 의령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적극적인 실천(義)이 곧 오늘의 의령실정에 걸맞게 재창조하는 새로운 의병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인구가 지나치게 감소하고 고령자만 남는 연령의 불균형, 지방이 소멸하고 수도권만 극점사회로 남는 국가공동체 불균형,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앞으로 30년 내다보는 안목과 ‘지방중흥’해내겠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의지가 필요불가결함은 말할 것도 없다. 군민과 삼십만 향우가 합심하여 만드는 의령중흥을 상상해 본다.
지역지도자를 꿈꾸는 사람들은 -실현 가능한 지방 중흥정책을 집단지성으로 만들고, 인구유지 및 증가 정책으로 젊은 여성들이 지역에 정착하고 생활하도록 매력적인 일자리와 유아·교육·의료 복지서비스를 파격적으로 제공하는 등- 깊이 고민할 것을 부탁하고 싶다.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을 둘러봐도 리더가 있느냐 없느냐가 그 곳의 운명을 가르기 때문이다. 허영일 편집위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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