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황제가 친서에 사용한 대한제국(大韓帝國) 국새(國璽)
김민수 기자 / 입력 : 2009년 03월 19일
고종황제가 친서에 사용한 대한제국(大韓帝國) 국새(國璽)
김민수 한민족운동단체연합 홍보국장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 수립을 선포하고 광무황제로 등극하여 대한국새(大韓國璽),황제지새(皇帝之璽),황제지보(皇帝之寶),칙명지보(勅命之寶),제고지보(制誥之寶),시명지보(施明之寶),대원수보(大元帥寶),원수지보(元帥之寶)를 새로 제작하였다.
러일전쟁을 예견한 대한제국 고종황제는 1903년 독일,이탈리아,러시아,프랑스 황제에게 친서를 보내어 동맹을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고 1904년 1월 23일 대외적으로 중립을 선포하였으나 일제가 1904년 2월 23일 한일의정서를 강제 체결하였다.
고종황제가 독일,프랑스,러시아,이탈리아 황제에게 보낸 친서에 사용한 황제어새는 2 종류인데,한 종류는 1903년 이탈리아 황제에게 보낸 친서에 사용된 것이며 다른 한 종류는 1906년 러시아 황제에게 보낸 친서에 사용된 것으로 유리원판 사진만 남아있다.
1901 - 1903년 사이에 제작된 국새(國璽)는 1903년 러시아 황제에게 보낸 친서에 사용된 것으로 상서원(尙書院)에서 관리하는 것이 상례이나,고종황제가 직접 관리한 점은 러일전쟁 발발 이후 대한제국의 정치적인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종묘의 신실(神室)에 봉안한 의례용 어보(御寶)와 국새(國璽)를 비교해 보면 어보의 무게는 3.4kg으로 국새의 4배에 달하며 크기에도 큰 차이가 있으며 어보는 은과 구리가 주성분인 반면,국새는 은과 금으로 제작하였다.
문화재청은 경운궁의 역사문화경관을 침해하는 서양미술관을 철거하고,고궁박물관은 경운궁 석조전에 대한제국관을 개관하고 국새를 황실 역사·문화를 대표하는 태극기,애국가,KOREA,독도·간도,경운궁,환구제와 함께 전시하여 일반에 공개하여야 한다. |
김민수 기자 /  입력 : 2009년 03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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