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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촌 사랑방> 회체(會體)


백한이계관시인 기자 / 입력 : 2001년 04월 30일
내 어린 어느날 어머니께서는 가마솥에 물을 끓여 함지박에 담아 얼리고 보글보글 잘 익은 막거리 술을 체에 받쳐 큰 동이에 가득 채우고, 두자나 통통히 자란 미나리를 베어다가 살짝 데쳐 넓직한 대야에 상큼한 회를 치고 계셨고 이웃집 아저씨는 몇백년 묵은 안산뫼 등 넓은 잔디밭 둘레에 아름들이 도래솔에 하얀 포목포장을 치고 계셨다.
 뽀송뽀송 새싹이 솟아오른 잔디밭에 이슬이 마를 무렵 행이 누나 형수 마을 여인들이 노소 신분을 가릴 것 없이 모두 모여 의견을 교환하고 질문을 하며 회의를 끝내더니 마시며 노래부르고 춤을 추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어린 나이인데도 총명했던지 사월 초파일도 아니요 오월 단오일도 아닌데 남정네는 모두 일을 하고 있는데도 싸리문을 열어놓은 채 스스럼없이 놀고 있는 며느리, 시어머니들의 화기애애한 행복한 표정을 읽으며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오늘 무슨날이야?" "응 회체날이다" "회체가 뭔데" "응 마을 여인들이 겨울내내 길삼과 농사일에 찌들은 기분(스트레스)도 풀고 품앗이(두레)에 얼킨 계산도 할겸 마음 열고 묵었던 생각들을 헐어내는 날이란다. 특히 고부간 시누올케간 수원했던 갈등도 씻어내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을 한단다." "돈은 누가 내는데?" "십시일반 모두 가을에 곡식을 거둬 두었지" 그러면서 간장 단지가 오가고 길에 자갈도 깔며 내를 건너는 징검돌도 고정시키는 것을 눈여겨 보았다. 8·15 해방후에 흉년은 겹쳐 먹을 것이 없어 누구나 어려운 시기에 지도자란 사람들은 좌우로 이념의 뜻도 모른체 암투를 하고 있을때도 오직 유일한 부녀회의 회체는 잔인한 사월에 열렸고 그 아름다운 정경은 연분홍 꽃잎이 집에 청푸른 살구가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형상처럼 나의 인생에 각인되어 늘 그리움을 낳고 있다.
 그러나 이 민주주의 문명세계에 동마다 무슨 부녀회, 무슨 어머니회 수도 없는 간판속에 몇몇 바람잡는 여인이 모여 갈대처럼 흔들리는 정치 바람 부는데로 온천이다, 뷔페다 하여 서로 어울리지만 가정에 돌아오면 TV에 매달려 이웃사정 모른다면야 분명히 문명은 인심을 삼켜버린 것이 아닐까. 옥구슬 같은 아동들은 이부제 학교로 밀려가고 날로 늘어만 가는 폐교 그나마 남은 학교엔 성스러운 선생님께선 2, 3백리 출퇴근에 지쳐가고 도시로 떠난 자녀들은 무엇을 하는지 돌아올 줄 모르는 폐허의 사각지대에 행복이 살아 숨쉴 수 없고 행복의 씨가 싹틀 수 없는 메마른 인심에 농촌 후계자의 뿌리가 내릴 수 있을까.
 얼마전에 어느 군에서는 귀농을 유치하기 위하여 발벗고 나섰다는 보도가 있었다. 날로 황폐해지는 향토를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많은 위인들의 공감을 이루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그러나 부질없는 일, 100만의 실업자가 우글거려도 7만의 일자리는 가동이 정지된 현실의 정서가 무엇을 뜻하는가. 3D 일자리를 얻기 위해 밀입국자는 늘어만 가는데 골프만 잘 치면 수백억, 공만 잘 던져도 수백억, CF모델의 옷벗고 사진 몇장 찍으면 수십억, 제주도에서 흥분한 사쿠라가 진해, 김제, 경주, 청주, 서울, 강릉, 북상중에 도처에서 상춘객이 떼몰림하여 축제를 열고 지조와 정절을 헌신짝처럼 팔아서라도 돈만 뿌리면 귀부인의 대접에다 뭇남자가 흠모한다. 세쌍 결혼하면 그날 한쌍이 이혼하는 현상은 문명의 향유가 아니라 종말을 재촉하는 민족적 형극이 아닐 수 없다. 아~ 그립다. 우리 어머니들이 우리꽃 정서를 머금고 손발이 부르트도록 아름다운 행복을 배우며 누리던 회체는 언제 다시 열릴까. 경향각지에 사는 우리 향우들 새봄부터 회채를 열어보자.
백한이계관시인 기자 / 입력 : 2001년 0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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