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하는 마음
남상태 (전 재경의령군향우회장)
젊을 때는 정도로만 산다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을 배려하려는 부드러운 맛은 없는 딱딱한 인간이었다. 이렇게 사는 동안 좌절도 맛보았고 평탄한 길만을 걸었다기보다 오히려 전투에 임하는 자세로 살아 왔다고 볼 수 있다. 가정생활도 예외가 아니어서 매사에 내 고집대로 밀어붙이는 강경한 태도로 일관해 왔다. 그러니 가족들이 항상 긴장 속에서 살았고, 특히 아내가 가장 큰 피해자였다. 그래도 잘 참아 주었으니 참으로 고마운 사람이다.
독선이 곧 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공자 말씀에 육십에 이순(耳順)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은 나에게 꼭 맞는 말이 아닌가 싶다. 내 나이 60이 넘으면서부터 독선은 서서히 중단되고 나와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상대를 받아들이는 자세로 바꾸게 되었다.
그러나 가끔 젊을 때처럼 상대방의 입장에 서 보기를 거부할 때가 있다. 어느 야당 여성정치인의 경우, 정말 이건 아니지 않은가. 온 국민이 매스컴을 통하여 두 눈을 똑 바로 뜨고 본 장면을, 본인이 그 사건 발생의 원인까지 제공해 놓고도 “나는 보지 않았다”고 부인하면서 국사를 의결하는 헌법기관에 떡 버티고 있다. 그런 인간의 입장은 되어 보고 싶지는 않다. 더욱이 그녀를 감싸는 정치인들. 절대로 그런 인간들의 입장에 서 보고 싶지도 않고 울분을 참지 못하는 것은 아직도 수양이 덜 된 탓인가.
얼마 전에 우리나라 항공산업을 대표하고 있는 재벌의 딸이 승객 280여명을 태우고 출발하는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이 견과류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규정된 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트집으로 사무장과 승무원을 꿇어앉히고 욕설을 퍼붓고, 바인더를 던져서 상처를 입혔다고 한다. 그래도 분이 안 풀려서 비행기를 출발점으로 회항시켜서 사무장을 내리게 했다니, 오만과 교만이 극에 달하기는 했지만 그 인간의 입장에 한 번 서 보기로 한다.
그 때 여승무원의 귀에 대고 “제대로 절차를 밟아야지, 모르지는 않았을 텐데 바빠서 그랬구나” 말하면서 윙크라도 해 주었으면,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을 지도 모른다. 그랬더라면 소문이 널리 퍼져서, 종사자들이 그 여인이 나타나면 존경하는 마음으로 서로 얼굴을 보려고 발돋음을 할지도 모른다. 이런 멋진 오너 밑에 있는 그 그룹의 모든 종사자들이 일에 지쳐서 몸살을 앓더라도 행복할 것이고, 온 국만이 좋아하는 기업으로 발전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배려의 힘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 철없는 여자의 교만과 독선 때문에 집안 망신에 기업 망신, 나아가서 나라망신까지 시킨 결과를 초래했다.
우리 아이가 내가 아끼던 물건을 깨뜨린 일이 있었다. 아깝지만 깨뜨린 사람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다치지는 않았나? 다치지 않았으면 되었다. 그까짓 것이 무슨 대수냐.’하고 지나갔다. 그 때에 반대로 ‘야! 조심성 없이. 그 물건 얼마짜린데 깨뜨려먹어? 당장 사 와!’ 이렇게 나만의 화풀이를 했다면 당사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 물건을 고의로 깨트린 것이 아닐진대 그 당사자 보다 마음 아픈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살다보면 실수를 할 수도 있고, 범죄의 길을 피할 수 없을 경우도 있을 것이다. 따지기 전에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긍정(肯定)과 배려(配慮)와 이해(理解). 여기에다 아량(雅量)을 곁들어서 바라본다면 상대방을 용서할 수 있을 것이며, 다툼이 없고 평화스러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이것은 극히 평범한 진리이면서도 쉽게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이 우리 인생사다. 나는 아집과 독선을 내려놓고 일단 긍정적으로 상대방을 배려하려는 자세로 변한 후로는 세상이 더 밝게 보이고 내 주위의 모든 분들이 나에게 행복을 전달해 주는 고마운 분들로 보이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