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우글방> 내 고향 선비 어른들
전승수 기자 / 입력 : 2001년 04월 30일
꼴망태나 개똥망태를 메고 새벽이면 이 골짝 저 골짝 산과 들을 오가시는 우리 어린시절 고향 어르신들의 모습, 지금 생각하면 그 분들은 내노라하는 선비들이셨고 다들 이름난 선비였다. 고향 의령은 유난히 산이 많아 구부러진 비탈길에다 돌마저 많은 곳이다. 내 어릴 때 저녁이면 으레 마을 골목골목마다 농부들의 거름지게 발채에서 떨어진 지푸라기와 쇠똥 개똥들로 온통 지저분해졌다. 날마다 그 시간이면 우리 할아버지들은 마을의 이 골목 저 골목을 어슬렁어슬렁 다니시며 이 오물들을 메고 다니는 망태에 마치 밤톨 줍듯 한 무더기 한무더기씩 모두 말끔히 주워담아 자기집 거름 밭에 모아두셨다. 나이가 든 한참 뒤에서야 깨닫게 되었지만 아마 할아버지들의 이 일은 일거사득(一擧四得)이었다. 우선 우리 할아버지들의 그런 노력 덕분에 동네 골목마다 깨끗해져 좋았고, 그 다음으로는 그것이 집집마다 농사를 짓는데 소중한 퇴비로 쓰여질 수 있어 좋았으며, 게다가 할아버지들의 건강유지에 그리고 자라나는 동네 아이들에게 공동체에서의 지도자상에 대한 산 교육을 시켜주는 효과도 있었기 때문이다. 양반과 선비라면 흙에 손을 대지 않는 것으로 알았던 그때 그 사회에서 어찌하여 내 고향 의령에선 그러한 풍습이 이어져 왔었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그 사실을 어디서나 자랑하고 부지불식간에 배워온 그 교훈의 탓인지 길거리에 흐트러져 있는 담배꽁초나 종이조각들을 보게 되면 잘 줍는다. 사람이 배운다는 게 무엇일까? 휴지나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는 나이든 사람들이 아무리 길거리를 깨끗이 하여야 한다고 외쳐본들 무슨 성과가 있을 것인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 윗사람의 소행은 아랫사람의 거울'이란 옛말이 진실로 가슴에 와 닫는다. 그 옛날 고향 의령에선 동네마다 아침저녁이면 우물질을 위해 동구 밖 우물가로 물동이를 인 우리들의 어머님 형수 누님들이 각양각색의 옷차림새로 모여드는 것을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하지만 그 소중한 우물 주변은 자동차를 몰고 온 몰염치한 사람들로 인해 오가는 길마저 무척 불편한 게 지금의 현실이다. 그들 중의 한 사람이라도 다소 개인적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공동이익을 위해 우물 주변을 깨끗이 하려고 노력해 본 일이 있을까? 우물 주변까지 자동차를 타고 온 사람들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이기적인 그런 행동이 과연 어떻게 비쳐질 것인가를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이러한 사람들의 행동을 볼 때마다 우리네 할아버지들이 몸소 행하셨던 이 일거사득의 교훈이 얼마나 값어치 있는 것인가를 재삼 느끼게 된다. 다 같은 건강을 위하는 일인데도 이처럼 생각의 차이가 나타나는 것일까. 지금 이 사회에선 부정과 부패 그리고 부조리 등을 없애야 한다고 아우성들이다. 그런데도 길거리엔 담배꽁초나 휴지조각이 뒤섞여있다. 그렇게 언론이 공중도덕을 외면한 이런 모습들을 떠들썩하게 보도하고 시정하자고 외치고 있다. 하지만 부끄러움을 깨닫고 최소한의 참회라도 하는 사람들의 기사는 어느 한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으며 오히려 추악한 자기 변명의 소리들만 가득 차있을 뿐이다. 지금 우리 의령의 골짜기 어디를 가나 도시에서 주말이면 자동차 행렬이 이어진다. 그때마다 느끼는 낯부끄러움을 지금 우리들은 알아야 한다. 나는 지금도 개똥 망태를 메고 산과 들, 이 골목 저 골목을 다니시던 그때 그 할아버지들이 자랑스럽고 우러러 보이기도 한다. 할아버지의 그 망태는 분명 무언중 동네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따르게 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
전승수 기자 /  입력 : 2001년 0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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