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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령신문 |
| 고루 이극로(1893.8.28∼1978.9.13) 박사의 기념비 제막식(사진)이 지난 5월 10일 오전 11시 안태고향인 지정면 두곡리 소재의 기강문화센터 앞마당에서 (사)이극로박사기념사업회(회장 고영근) 주최와 이극로 박사 기념비건립위원회(위원장 이종순) 주관으로 열렸다. 이곳에는 2022년 10월 정영만 재대구.경북 의령군향우회장.대구대학교 겸임교수가 사비로 건립해 기증한 이 마을 출신인 이호섭(작사.작곡가.방송인) 노래비도 있다.
이날 행사에는 이극로 박사 기념사업회 이종수(박사의 종증손) 부회장, 기념비건립추진위원회 이종순(박사의 삼종손) 위원장, 이승철 경남대 교수와 이형철 변호사(박사 맏형의 증손), 이종선.정원식(초계정씨신반문중 회장) 부부를 비롯한 박사의 후손과 마을 주민, 의령군의 최우석 경제문화국장, 국립국어사전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성수현.김복근 공동위원장, 박희구 의령군 삼락회장, 김영곤(전 의령군행복학습관장) 행정학 박사, 동부농협 주현숙 조합장 등 1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고루 이극로 박사 기념비 제막식은 박사의 후손인 이종룡 박사의 사회로 내빈 소개, 제막, 비문낭독(이승희 철학박사.시인), 인사.기념.축하의 말씀, 박사의 육성 청취(1928년 독일 베를린대학교에서 발표한 ‘실험도해 조선어 음성학’), 한글노래(이극로 작사.채동선 작곡) 합창 등으로 진행되었다.
이 기념비문 전면에는 박사의 젊은 시절 사진과 약력(1,200여자), 그리고 비문 지은이 이종룡과 세운이 이종순 성명을, 뒷면에는 ‘한글노래’ 악보를 각각 새겨두었다. 이 비문은 모바일 QC코드로 인식 가능하다.
비문은 “위대한 한글학자이자 민족운동가인 이극로 박사는 1893년 8월 28일 이곳 두곡마을에서 태어났다. 전의이씨 전서공파28세로 아버지 근주와 어머니 성산이씨의 8남매 중 막내였으며, 호는 고루, 물불, 동정 등으로 불렀다.”로 시작하여 “이극로 박사는 일제강점기에는 ‘말은 민족의 정신이요, 글은 민족의 생명’이라는 신념으로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헌신했으며, 광복 후에는 민족분단을 막고 통일조국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 민족이 비록 남북으로 분단되었지만 같은 언어를 쓰며 한민족의 정체성을 공유하고 살아가는 데는 고루 이극로 박사의 공이 실로 지대하다 할 것이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같은 평가의 기초자료로서 고루 박사의 활동과 업적 등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마산 창신학교에서 수학 후 1912년 서간도로 가서 대종교에 입교하여 윤세복, 박은식, 신채호 등과 교류하며 동창학교와 백산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독립군으로도 활동 △1916년 상하이로 가서 임시정부 요인들을 도우며 동제대학을 졸업 △1922년 베를린대학교에 입학하여 정치경제학, 철학, 언어학 등을 공부하며 동방어학부에 조선어과를 설치하고 유럽에서 최초로 한글 활자로 ‘허생전’을 인쇄 △1927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세계피압박민족대회에 조선 대표로 참석하여 일제의 식민총치를 비판하고 조선독립의 정당성을 국제사회에 알렸으며, 동년 베를린대에서 ‘중국의 생사공업’이란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대학 정치경제학부와 파리대학 음성학부에서 연구활동을 계속.
고루 박사의 1929년 귀국 후 활동과 업적에 대해서는 “조선어학회 대표를 맡아 일제에 맞서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한글사전편찬사업을 추진하여 광복 후 ‘조선말 큰사전’을 완성하였으며, 국어 교과서편찬과 초등학교 의무교육이 시행되도록 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구속되어 온갖 고문을 당하고 징역 6년형을 선고받아 함흥형무소에서 복역했다.”며 “해방정국에서는 통일국가 수립을 위해 좌우합작운동에 앞장섰으며, 1948년 평양에서 열린 전조선정당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에 건민회 대표로 참석했다가 북한에 체류했다. 북한에서 무임소 장관과 조국평화통일위원장 등을 역임하고 북한의 문화어 운동을 주도했다. 1978년 9월 13일 85세의 나이로 별세하여 평양애국열사릉에 안장되었다.
1929년 12월, 평안남도 진남포 출신으로 경성여자사범학교를 졸업한 김공순 여사와 결혼하여 슬하에 억세, 대세, 한세, 세영, 세덕 3남2녀를 두었다. 저서로는 ‘조선의 독립운동과 일본의 침략정책’,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한 조선의 독립투쟁’, ‘고투 40년’, ‘조선어 연구’, ‘조선어 소사전’ 등이 있다.”고 기록했다.
이종수 부회장은 기념사에서 고루박사기념사업회는 설립(2010년) 이래 그동안 광화문 세종공원에 ‘조선어학회 한말글수호기념탑비’ 건립 등에 이어 오는 6월에는 고루 박사의 모든 문집을 집대성(5권)해 발간 계획하는 등 선양사업을 여러분들의 성원으로 꾸준히 펴고 있다고 보고했다. 특히 기념사업회의 크고 작은 사업에 앞장서서 성원해주신 이종순 위원장께서 이번 기념비사업비도 자진해서 전액 사비로 추진해 주신데 대해 깊이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이종순 추진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16년 전에 자랑스러운 고루 할아버지가 문득 생각이 나서 지은 시 “한글사전 펴낸 고루 이극로 박사를 회상하며‘를 낭송하며 후손으로서의 숭조사랑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종순 위원장의 제부인 정원식(초계정씨신반문중회장) 시인.수필가 역시 시 ’한글을 빛낸 인물- 고루 이극로 박사를 추모함‘을 낭송하며 말미에서는 ’공의 업적은 삼팔선이라는 철의 장막으로/ 80여년의 침묵으로 가리워져 있었으나/ 늦게나마 세상에서 빛을 보게 되었다.‘고 이날의 행사를 축하했다. 김형철 경남대 교수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받쳐 우리말과 글의 지킴이로 활동해온 고루 할아버지의 정신을 이번을 계기로 후손들이 더 알리고 잘 지켜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우석 경제문화국장은 축사(오태완 군수의 축사 대독)에서 일제강점기에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헌신했던 고루 박사의 숭고한 한글사랑을 길이 기리기 위한 국립국어사전박물관 의령건립추진운동이 성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희구 삼락회장은 ‘물불, 그리고 고루 이극로, 한글을 사랑한 독립운동가 기념비 제막식에 즈음하여’란 제하에 메시지 ‘영원히 겨레를 비추이는, 등불이 될지어러라!’를 남겼다. 박해헌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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