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명 인척에 문경동, 박운, 이황, 곽재우, 오운, 박녹 -
유학자, 시인, 교육자인 허원보(許元輔: 1455년, 세조 1년∼1507년, 중종 2년)가 경남 고성에서 살다가 1480년경 혼인 새살림을 의령현(의령군) 가례(嘉禮)에 꾸린 이래, 그와 그의 후손과 그의 인척들은 역사적인 중요한 일들을 많이 남겼다. 유명 인척으로는 문경동, 박운, 이황, 곽재우, 오운, 박녹 등이 있다. 허원보는 가례를 몹시 사랑하면서 지역 이름을 ‘가례’(嘉禮)라 하고, 그 끝 글자를 따서 자신의 호를 ‘예촌’(禮村)이라 했으며, 그 시대의 유명한 학자이며 벼슬아치였던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 한훤(寒喧) 김굉필(金宏弼), 창계(滄溪) 문경동(文敬仝), 김영(金瑛) 등과 깊이 사귀었다.
▲ 허원보의 자녀와 인척 관계
허원보는 슬하에 6남 2녀를 두었다. 부인 해주 오(吳)씨의 아버지는 호군(護軍·정4품)을 지낸 오한(吳漢)이다. 호군은 중앙 군사 조직인 오위(五衛)에 속한 벼슬이다. 허원보 부부의 묘는 의령읍 무동(무전)에 합분이고, 재실 이름은 고망재(高望齎)이다. 허원보의 묘갈명(묘비문)은 처음 퇴계 이황이 지었으나, 묘비가 갈라져 조선 후기 의금부도사 척암(拓菴) 김도화(金都和: 1825~1912년)가 새로 지었다.
허원보의 장남 허수(許琇: 1478년, 성종 9년〜1539년, 중종 34년)는 한양(서울)에서 선릉(宣陵: 조선 성종의 능) 참봉(參奉) 등의 벼슬을 지내고,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가례 서쪽 현재의 칠곡면 수부 마을, 압수 마을, 도산 마을 지역과 연고를 맺었다. 그의 무덤은 칠곡면 압수 마을 뒷산에 있고, 그의 재실 존저암((尊箸庵)은 칠곡면 도산 마을 서쪽 산중턱에 있다. 그의 부인은 감사(관찰사·현재 도지사에 해당)를 지낸 윤수천(尹壽泉)의 딸이다. 허수는 퇴계 이황의 처백부가 된다. 현재 전하는 허수의 묘갈명은 퇴계의 10세 종손 성리학자 고계(古溪) 이휘녕(李彙寧: 1788〜1861년)이 지었고, ‘도산’(陶山) 마을 이름은 퇴계의 연고지 경상도 예안현(현재 경북 안동시) ‘도산’(陶山)에서 따온 것이다. 허수의 장남 허안세(許安世)는 중훈대부(종3품) 예빈시(禮賓寺·‘예빈사’라 읽지 않음) 참봉, 차남 허안정(許安鼎)은 군자감정(軍資監正·정3품·군자감은 군수품 기관)을 지냈으며, 이들의 무덤도 칠곡면에 있다. 그래서 칠곡면 수부, 압수, 도산 마을은 허씨들이 모여 사는 지역이 되었다.
허원보의 장남 허수가 서울에서 지낸 까닭으로 허원보의 가문과 많은 재산은 주로 둘째아들 진사 허찬(許瓚: 1481∼1535년)이 관리하였는데, 그는 창계 문경동의 맏사위이다. 허원보의 친구이기도 한 문경동(1457~1521년)은 문과에 급제하고, 춘추관 편수관, 성균관 사성, 청풍 군수(종4품)를 지냈다. 허찬의 장남 허사렴(許士廉)은 생원시와 진사시 모두 합격하였으며, 퇴계의 처남으로서 퇴계의 요청에 따라 청량산(경북 봉화군) 절에서 함께 독서했다. 허사렴은 퇴계와 퇴계의 제자에 대해 기록해 둔 ‘도산급문제현록’(陶山及門諸賢錄·제자 309명)에 올려 있다. 허찬의 차남 허윤렴(許允廉)은 역사책에서 처음이름 허사언(許士彦)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진주 목사(牧使·정3품)를 지냈다. 허찬의 맏사위가 퇴계(退溪) 이황(李榥: 1501∼1570년)이고, 퇴계는 허찬의 묘갈명을 지었다. 둘째사위가 충의위(忠儀衛: 공신 자손으로 구성된 중앙군)를 거친 김진(金震)이다. 허사렴의 맏사위 오운(吳澐: 1540∼1617년·본관 고창·함안 출생)은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제자이며 문과 급제 후 충주 목사, 광주 목사를 지내고, 임진왜란 때 경남 백령(白嶺)에서 2만여 명의 의병을 모아 곽재우 장군과 함께 싸운 의병장령이다. 정유재란 때도 공을 세워 도원수 권율(權慄)의 추천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정3품)에 오르고 경주 부윤(종2품), 공조참의를 지냈다. 허사렴의 둘째사위 박녹(朴漉: 1542∼1632년·본관 반남(潘南): 나주의 옛 이름)은 경북 영주 사람으로서 임진왜란 때 고향 사람들의 추천으로 의병장이 되어 다른 지역 의병장들과 협력하여 전공을 세우고, 태릉(조선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 능) 참봉, 의금부도사를 지냈다.
허원보의 셋째아들 허경(許瓊)은 참봉을 지냈으며, 딸 셋을 두었는데, 맏딸은 황해도 관찰사(감사)를 지낸 곽월(郭越: 1518∼1586년·곽재우 아버지)의 후처가 되어 의병장 곽재우(郭再祐: 1552∼1617년)를 3살 때부터 길렀으며, 직접 낳은 곽재지(郭再祉), 곽재기(郭再褀)도 눈부신 의병 활동을 하였다. 곽월과 이황은 사촌동서 간이다. 허씨 부인은 곽월보다 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