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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군 가례를 몹시 사랑한 허원보의 삶

문학박사 허만길(전 문교부 국어과 편수관)
편집국 기자 / 입력 : 2012년 07월 20일

- 예와 학문과 시와 나라사랑의 고장으로 -













▲ 허만길
  고려 말의 충신으로서 경남 고성(옛이름 철성)에 살던 호은(湖隱) 허기(許麒)의 증손자 예촌(禮村) 허원보((許元輔: 1455년, 세조 1년~1507년, 중종 2년)가 혼인 후 새살림을 의령현(현재 의령군) 가례(嘉禮)에서 꾸렸는데, 이것이 김해 허씨가 의령현에 본격적으로 살게 된 계기이다. 1480년 전후의 일이다.
  허원보의 할아버지 허유신(許惟新)은 조선 초에 문과에 급제하고, 통훈대부(정3품) 영산(경남 창녕의 옛 지명) 현감과 대성(사헌부 대관)을 지냈으며, 문장이 뛰어나 조정의 본보기가 되었다. 허원보의 아버지 허여(許旅)는 무관으로서 적순부위부사정(迪順副尉副司正: 종7품)과 충순위(忠順衛)를 지냈다. 허원보의 형 송와(松窩) 허원필(許元弼: 1452년, 문종2년〜1529년, 중종 24년)은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통정대부(정3품) 상의원(尙衣院: 임금의 의복, 대궐의 재물관리 관서) 판관과 군수를 거쳐, 성종 22년(신해년, 1491년) 야인(여진족)의 국경 침입 때 도원수 허종(許踪)을 따라 공을 세우고 원종공신에 오르고, 의주진(義州鎭) 병마동첨절제사(종4품)가 되었다. 허원보의 아우 허원질(許元質)은 진사(進士)였다.
  ▲ 예촌 허원보의 삶
  유학자, 시인, 교육자인 예촌 허원보의 가례 사랑은 가례를 예(禮)와 학문과 시(詩)의 역사적 고장으로 자리 잡게 한 중요한 계기가 된다. 또 그 후손들은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의 의병활동에 주요 버팀목이었으므로, 가례를 나라사랑의 얼이 서린 고장으로 드러나게 했다.
  허원보는 ‘예(禮)를 아름답게 밝힌다’는 뜻으로 지역 이름을 ‘가례’(嘉禮)로 하고서, 그 끝글자를 따서 자신의 호를 ‘예촌’(禮村)이라 했다고 허씨(許氏) 가문에 전해 오는데, 신빙성이 높다고 본다. ‘호’(號)는 살았을 때 사회활동을 하면서 허물없이 쓰기 위해 본명이나 자(字) 이외에 쓰는 이름을 뜻한다.
  족보에 26살에 사마시(소과. 생원시 및 진사시)에 합격한 허원보는 본성이 순후(醇厚)하고 효와 우애를 몸소 실천했다(性本醇厚躬行孝友)고 되어 있다.
  ‘김해 허씨 세보 권1’(55쪽〜56쪽. 1936)에는 조선 후기 의금부도사 척암(拓菴) 김도화(金都和: 1825년~1912년)가 ‘생원 예촌공 비명’(生員禮村公碑銘)이라는 제목으로 쓴 허원보의 묘갈명(묘비문)이 실려 있다.
  김도화는 가승(家乘: 직계 조상의 일을 기록한 책)을 살펴보면, 퇴도(退陶: 이황의 호는 ‘퇴계退溪, 퇴도退陶, 도수陶叟’였음.) 이황 선생이 일찍이 묘갈명을 썼지만, 묘비가 갈라져(碣泐) 글이 전하지 않음이 불행이라 하고서, 허원보는 “천성이 순후(淳厚)하고, 효와 우애가 하늘에 드러나 어버이를 섬김에 정성을 다하고, 형제들에게 우애가 지극하고, 인간관계에서 틈이 없고, 문장을 일찍 성취하였다.”(資性淳厚 孝友出天 事親也盡其誠 處昆季極其愛 人無間然 文詞夙就)라고 했다. “자신을 단속함에 있어 엄정하고, 남을 대함에 있어 온화하면서 정중하고, 자식들에게 반드시 덕성과 신의로 가르쳤다.”(其律身也嚴而正 其接人也和而莊 敎諸子必以義方)고 했다. 또 “일찍이 ‘가례’(嘉禮)의 산수를 몹시 사랑하여 작은 집을 지어놓고 ‘白巖’(백암)이라 현판을 걸고, 낚시질로 스스로 즐기고, 시를 읊어 풍류로 삼으면서, 세상의 명예와 이익과 어수선함과 화려함을 멀리했다.”(嘗酷愛嘉禮山水規置小屋而扁之曰白巖漁釣爲自娛嘯詠爲風流世之聲利紛華皆窅如也)라고 했다.
  김도화는 허원보가 한훤(寒暄. 한훤당) 김굉필(金宏弼)과 더불어 대니산(戴尼山: 대구시 달성군 현풍면의 산)에서 도를 설명하고 문장을 논하고(講道論文), 한겨울 추위에 젊은이 62명과 모임을 가진 글이 없어진 것이 아깝다고 했다. 허원보가 살아온 자취의 아름다움(事行之懿)과 왕성한 학문 활동(師友問學之盛)이 세상에 많이 전해 왔으나, 전란(임진왜란)의 화재(병선兵燹)로 대부분 잿더미로 변하고 조금밖에 남지 않음이 몹시 아쉽다고 했다.
  허원보가 직접 지은 가례 ‘백암’(白巖) 정자에서 함께 술을 마시고 시를 읊으며 가깝게 지냈던 사람으로는 족보와 묘갈명에서 공통적으로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 한훤(寒喧) 김굉필(金宏弼), 창계(滄溪) 문경동(文敬仝), 우랑(佑郞. *묘갈명에는 좌랑佐郞으로 되어 있음. ‘우랑’, ‘좌랑’은 벼슬이름) 김영(金瑛)으로 나타나 있다. 묘갈명에는 한훤(한훤당) 김굉필과의 도의적 사귐은 황금처럼 단단했다(寒喧道義之契 金如斷而足徵)고 했다.
  탁영 김일손(1464년, 세조 10년∼1498년, 연산군 4년)은 1486년(성종 17) 식년 문과(3년마다 치르는 과거)에 2등으로 급제하였고, 홍문관 교리, 사간원 헌납, 이조 정랑(정5품) 등을 지내고 무오사화 때 사형당했으며, 중종반정으로 관직이 회복되었다. 한훤당 김굉필(1454년, 단종 2년∼1504년, 연산군 10년)은 1494년 유일지사(遺逸之士: 학행이 뛰어난 선비)로 천거받아 관직 생활을 시작하여 사헌부 감찰, 형조 좌랑(정6품)을 지냈고, 무오사화 때 평안도 희천에 2년간 유배되었다. 창계 문경동(1457년, 세조 3년~1521년, 중종 16년)은 1495년 증광 문과(나라의 경사 때 치르는 과거)에 급제하고, 춘추관 편수관, 성균관 사성, 청풍 군수(종4품)를 지냈다. 문경동은 허원보의 친구이기도 하지만, 허원보의 둘째아들 허찬(許瓚)의 장인이고, 퇴계 이황의 처외조부이다.
  가례를 몹시 사랑하고 예(禮)와 학문과 시(詩)를 중시한 허원보는 제자들을 기르면서, 가례의 ‘백암’(흰바위)을 사랑하여 그 옆에 ‘백암’ 정자(백암정白巖亭)를 직접 짓고, 그 시대의 유명한 사람들과 굽이진 물에 술잔을 띄우며 시를 짓는 유상곡수(流觴曲水)의 풍류를 즐겼는데, 그때의 시도 한 수 남아 있다. 이 유상곡수 터는 이황이 허원보의 손녀의 남편으로 장가들어 그의 장모와 아내가 술잔을 띄워 보내면 이황이 그 술을 마시는 낭만의 자리가 되기도 했다.
  ▲ 허원보, 이황, 곽재우의 관계
  허원보는 슬하에 6남 2녀를 두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년∼1570년)의 부인 허씨(허찬許瓚 큰딸)는 허원보의 손녀이다.
  곽재우(1552년~1617년) 장군의 계모(곽월 후처)로서 곽재우 장군을 세 살 때부터 기르고, 곽재우 장군과 함께 눈부시게 의병 활동을 한 곽재지(郭再祉), 곽재기(郭再褀)를 낳은 허씨 부인(허경許瓊 큰딸)은 허원보의 손녀이다. 곽재우 장군의 아버지 곽월(郭越: 1518년~1586년. 황해도 관찰사. 도지사에 해당)이 허원보의 손녀의 남편인 것이다. 이황과 곽월은 4촌 동서간이 된다.
  곽재우 장군 지휘 아래 있던 17장령(장수) 중 허언심(許彦深)은 허원보의 증손자(허안인(許安仁 아들)이며 곽재우의 매부인데, 허언심의 묘갈명에 곽재우는 허언심의 부제(婦弟: 부인의 남동생)라 했다. 허원보는 곽재우 장군의 계모로 보아 외증조부이자, 곽재우 장군 누나의 시증조부이다. 17장령 중 오운(吳澐)은 허원보의 증손녀(허사렴許士廉 큰딸)의 남편이다. 이렇게 허원보의 후손들은 곽재우 장군의 의병 활동에 주요 버팀목이 되었던 것이다.
  이황과 곽월이 허원보의 손녀의 남편이 된 것은 허원보 사후의 일이다. 이런 점들로 보아, 허원보의 삶과 사람됨과 학문적, 사회적 지위를 짐작할 수 있으며, 사후에도 그의 존재감이 얼마나 컸던가를 알 수 있다.
  허원보와 부인 해주 오(吳)씨의 묘는 의령군 의령읍 무동(무전)에 합분(합장)이고, 재실(齋室: 제사 지내는 집) ‘고망재’(高望齎)는 무덤 가까이에 있다.
  <참고문헌> ㅇ金海許氏世譜 권1, 1936. ㅇ김도화 지은 허원보 묘갈명 ‘生員禮村公碑銘’. ㅇ이황 지은 허찬 묘갈명 ‘進士公墓碣銘’. ㅇ허만길, “김해 허씨의 의령 정착 과정”, 의령신문 제298호 2012.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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