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訓民正音 解例本과 諺解本(훈민정음 해래본과 연해본)

임명석(재경 궁류면향우회 고문·우림화랑(佑林畵廊) 관장)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입력 : 2020년 05월 28일
향우 기고

訓民正音 解例本과 諺解本(훈민정음 해래본과 연해본)
임명석(재경 궁류면향우회 고문·우림화랑(佑林畵廊) 관장)

본 기고문은 임명석 관장이 지난 3월 중소기업 CEO 대상으로 미술가격정보사인 아트 프라이스(Art Price)사 주최의 ‘감정의 노하우’ 특강에서 흥밋거리로 준비했던 ‘훈민정음의 해례본과 언해본의 숨은 이야기’ 원고이다. 이 특강이 코로나19로 무기 연기됨에 따라 본지를 통해 그 숨은 이야기를 독자들과 공유하고자한다. <편집자 주>
ⓒ 의령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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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석(재경 궁류면향우회 고문·우림화랑(佑林畵廊) 관장)
1443년(세종 25년) 세종대왕이 훈민정음(訓民正音)을 28자로 연구 창제(創製)하여 3년 동안 다듬고 실제로 써본 후 1446년 음 9월 상순에 발포(發布) 하였다. 훈민정음(訓民正音) 해례본(解例本) 문자는 천지인(天地人)을 바탕으로 하는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원리를 기본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있고 한글로 풀이한 언해본(諺解本)과 예의본(例義本)이 있다. 실록본으로 전하는 것은 예의본에 속한다. 이 가운데 완전한 책의 형태를 갖춘 것은 해례본이다. 비교적 해례본만 기억하고 언해본 예의본이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훈(訓)은 가르치다, 민(民)은 백성들에게, 정(正)은 올바른, 음(音)은 소리 언어를, 따라서 훈민정음은 백성들에 어둠을 깨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당시는 우리글이 아닌 한문(漢文)을 가리키고 사용하는 시절이라 집현전 대신들이 훈민정음을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최만리(崔萬理) 신석조(辛碩祖) 김문(金文) 하위지(河緯地) 정창손(鄭昌孫) 등이 훈민정음 창제가 옳지 않다고 주장 하였다. 최만리는 반대 상소문을 주도 하였다. 그는 집현전 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겸 학자이지만 훈민정음 발포 1년 전 1445년 10월 23일 돌아가신다. 반대 이유는 배우기 쉬운 한글을 중인과 하인들까지 깨우친다면 사회혼란이 우려 되고 명나라에서 조선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훈민정음의 특징은 한 음절을 초성자(初聲字) 중성자(中聲字) 종성자(終聲字)로 나누는 음소문자(音素文字), 음절(音節) 단위로 적은 음절문자의 성격을 함께 지닌 것이다. 창제 당시에는 28자를 음소, 운소, 음운, 음절, 오행의 조화로 지었으며 성조(聲調)를 표시하는 방점이 쓰였다. 오늘날에 24자만 쓰인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든 목적은 우리가 중국 글자(한문)를 빌려서 우리말을 읽고 쓰고 있으나 맞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우리말에 적합한 새 글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서민을 비롯하여 쉽게 배우고 만 백성들이 어려운 한문보다는 쉬운 글로 깨우치기를 바랐던 마음 이었을 것이다.
당시 제작 과정에 참여한 집현전 학자들은 정인지(鄭麟趾).박팽년(朴彭年).최항(崔恒).신숙주(申叔舟).성삼문(成三問).강희안(姜希顏).이개(李塏).이선노(李善老) 등이다. 이들이 뒷받침 연구를 함께 수행하였다. 세종 28년 당시 예조판서 정인지는 서문에 기록 하였다. 금정음지작(今正音之作) 이제 훈민정음을 만드는 것은, 초비지영이역색(初非智營而力索) 처음부터 슬기로 마련하고 애써서 찾은 것이 아니라, 단인기성음이극기리이기(但因其聲音而極其理而己) 다만 그 (원래에 있는) 성음의 원리를 바탕으로 이치를 다한 것뿐이다. 이기불이칙하득불여천지귀신동기용야(理旣不二則何得不與天地鬼神同其用也) 처음부터 이치는 둘이 아니니 어찌 천지 자연, (변화를 주관하는) 귀신과 그 사용을 같이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음28자각상기형이제지(正音28字各象其形而制之) 훈민정음 스물여덟자는 각각 그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
언해본이 현존하는 곳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서강대 소장본은 세조(1459) 때에 간행된 것이다. 고려대 소장 단행본은 부분이 떨어져 나가 없는 부분을 복사한 곳이 있다. 서울대 소장본은 필사본으로 서강대와 같은 본래 본. 일본 가나자와본(金澤本) 궁내성본(宮內省本) 2곳 소장본이 있다. 세종대왕기념관 소장 언해본은 선조(1568) 희방사 본 소장 복각본이다. 가장 완벽한 것은 서강대 소장본인데 이것은 단행본이 아니고 월인석보(月印釋譜)(1459) 제 1권에 실린 것으로 책이름이 세종어제훈민정음『世宗御製訓民正音』이라고 표기 되어 있다.
우리 국민이 편리하게 사용하는 우리글 한글(언문)은 세종대왕께서 어떻게 창제 하셨는지 추측만 있을 뿐이었는데, 훈민정음 해례본은 약 500년 세월 동안 자취를 감추었다가 1940년 7월 경북 안동 와용면 가야리 228 광산김씨 종택에서 발견된다. 이용준의 처가인 광산김씨 긍구당서고(肯構堂書庫)에 이 해례본이 보관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이용준이가 발견하고 김태준에게 이야기를 전하게 된다. 김태준은 말로만 전해오는 해례본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 이용준과 함께 안동으로 내려가 해례본을 직접 확인 후 당시 문화재 수집 활동에 소문이 나 있는 간송 전형필(1906~1962)에게 소개하게 된다. 간송은 해례본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와 의논 후 은행으로 달려가 해례본 금액 1만원 사례금 1천원 주고 구입 하게 된다. 그때 당시의 물가로 따지면 기와집 11채 값인 거금을 주고 구입 하게 된다. 그 많은 돈을 주고 구입하게 된 것은 간송의 아버지가 큰 힘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는 일본인 소장가에게 넘어가기 전에 빨리 잡아야 한다고 아버지가 조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간송이 구입한 훈민정음 목판본은 1책 33장이며 두 장 빠진 부분을 붓으로 글자를 적어 넣었다고 한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귀하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첫째 해례본 책자를 많이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 한다. 그 이유는 당시 조정대신들 일부와 양반들의 반발이 심하여 소량으로 제작 되었을 것이다. 둘째 연산군 1504년 7월 22일 언문 사용을 금지하는 기훼제서율(棄毁制書律) 전교를 내렸다. 연산군 폭정을 비방하는 투서 방문(榜文)이 나돌았고 그 내용이 언문으로 쓰여 있어 훈민정음 교습을 중단시키고 해례본 구결(口訣)을 강제로 수거하여 불태워 소멸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 후 선조 임금은 언문을 귀하게 여겨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키자 백성들에게 교서 교지(敎旨)를 언문으로 써서 내렸다고 한다. 셋째 1553년 9월 14일 (명종 8년) 경복궁 화재로 많은 유물이 불타버렸다. 조선왕조실록 당시 기록엔 그 화재로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서적과 귀한 왕실보물이 모두 불타 소실되었다 한다. 태조 즉위한 3년에 창건한 강령전(康寧殿) 사정전(思政殿) 흠경각(欽敬閣)등 모두 불타 사라졌다. 2008년 상주 배모씨 소장품은 간송미술관 소장본과 동일한 판본이다. 이 판본은 안동 광흥사(廣興寺) 나한상 속에 있던 유물이었음이 밝혀졌다.
긍구당과 회양당. 훈민정음 해례본 원소장처는 어디일까?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국보 제70호)의 원소장처가 어디냐'를 놓고 공방이 가열되었다. 2017년 3월 28일 광산 김씨 긍구당 후손들은 경북 안동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들의 선조가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의 원소장자라고 주장했다. 긍구당 14대 종손 김대중(84)씨는 "제가 10살 무렵 가을 대청마루에서 조부(김승수)께서 고모부(이용준 사위)에게 '훈민정음 책자를 가져갔으면 돌려줘야지 왜 아직 안 가져오는가'라며 심하게 꾸짖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의 표지와 앞 2장이 훼손된 이유와 관련, 김씨는 긍구당에 전해져 오는 편지와 지수정가(止水亭歌) 1편, 시조 63수 등을 증거로 제시하며 의도적인 훼손이라고 강조했다. 긍구당 서가에 보존 중인 서책 표지장에 있는 장서기(藏書記), 장서인(藏書印), 입춘첩(立春帖), 사돈지(査頓紙) 등 다양한 표식을 지워 긍구당 소장이라는 증거를 없애려 한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 "세종실록에 의하면 1433년 최윤덕 장군의 막료인 이정(李禎) 공이 군공으로 판관 벼슬을 받았다"며 "훈민정음의 반포는 논공행상이 끝난 13년 뒤인 1446년이다. 이정이 군공으로 훈민정음 해례본을 받았다는 말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용준이 장인 김응수와 장모 송씨에 보낸 편지 12통도 긍구당이 원소장처임을 부정할 수 없는 증거라고 말했다. 그는 "훈민정음, 매월당집 등 여러 서책이 유출되던 시기인 1939년과 1940년, 1941년에 이용준이 보낸 편지에는 책을 갖고 온 일에 대해 '범행자부대죄(犯行自負大罪)'라며 자신의 범행이 대죄이며 저지른 행위는 범죄였음을 시인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이용준은 자신이 책을 가져간 일에 대해 '고속이서지례(古俗貽書之例- 옛 풍속에 책을 주는 사례)'라는 표현을 쓰며 자신에게 책을 그냥 준 것인 양 하라는 말을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해 앞서 2017년 2월 23일에는 진성 이씨 회양당 후손들이 같은 장소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역시 자신들의 집안이 원소장처라고 강조했다. 그 근거로 1927년 회양당 고택 형제들이 합심해 편찬한 '여자소학(女子小學)'이란 책자를 제시했다. 회양당 후손들은 "해례본은 세상에 그 존재가 알려지기 전에 원소장자에 의해 이미 한글교육용 교재로 사용됐다"며 "이용준은 18세 무렵인 1933년 긍구당으로 장가를 들었는데 해례본에 기초한 여자소학은 그보다 앞선 6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는 이용준이 장가들기 전부터 회양당에서 해례본을 보관·활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또 '긍구당 장서인을 없애기 위해 표지를 없앴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언문책을 가진 자를 처벌하는 연산군 정책 때문에 부득이 찢어냈다"고 하면서도 "1976년 11월 열린 문화재청 자문회의 결과 '의도적 훼손이 아니라 2장이 없는 채로 오랜 기간 전래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과를 도출했다"고 했다. 문화재청이 1962년 12월 20일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국보로 결정하면서 밝힌 발굴 과정과 구입 과정도 소개했다. 1940년까지 이한걸가에서 소장하고 있던 해례본은 그의 선조 이정이 여진을 정벌한 공으로 세종으로부터 직접 받았다며 "발견 당시 앞부분 두 장이 낙장돼 있던 것을 이용준이 글씨로 보완했다"고 했다.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은 진성이씨 회양당 출신으로 광산 김씨 긍구당의 사위인 이용준이 1939년 간송 전형필(간송미술관 설립자)에게 거금을 받고 넘긴 것으로 전해진다. 1962년 12월 국보 제70호, 지정.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입력 : 2020년 0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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