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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덕천리(德川里)

남상태(재경 의령군향우원로회 회장)
편집부 기자 / 입력 : 2014년 02월 22일











▲ 남상태 회장
내 고향은 경남 의령군 유곡면 덕천리이다. 우리나라는 원래 산지(山地)가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태어난 곳은 온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두메산골이다. 마산에서 서북쪽으로 40여 킬로 떨어진 고장이다. 교통편도 좋지 않고 농지도 넓지 못해서 부자라고 해 봐야 논밭뙈기 합쳐서 오천 평 가진 사람도 드문 한촌(寒村)이다.


동네 앞에는 맑은 시냇물이 흘렀는데 웬만한 가뭄에도 마르는 법이 없었다. 그 냇물에는 갖가지 민물고기가 노닐었고, 겨울에는 오리 떼가 날아 와 물고기를 사냥하곤 했었다. 바로 동네 앞 냇가에 수양버들이 한 그루가 바람에 흔들리며 춤을 추었는데 지금은 간 곳이 없다.


봄이면 온 산이 진달래로 벌겋게 물들고, 산자락 곳곳에는 복숭아꽃,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폈었다. 그래서 민요 ‘고향의 봄'은 우리 고장 누군가가 지은 줄 알았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이 노래를 목청껏 부르노라면 마음은 온통 붉은 꽃으로 물들고, 세상에 우리 동네만큼 아름다운 고장은 다시없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여름밤에는 모깃불 피워 놓고 호롱불 밑에서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책장을 넘기다가 잠들곤 했었다. 깜깜한 밤에는 동네 앞 냇가에 내려가서 아낙네들은 위쪽에서, 남정네들은 아래쪽에서 시원하게 미역감고 돌아와서 모기장 속에서 드는 잠은 다시없는 낙원이었다. 평화로운 시골 동네, 그 때는 도시가 어떤 곳이며 서울이 어떻게 생긴 곳인지 관심도 없었다. 겨울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쇠죽 끓이고, 화로에 숯불 담아 방에 들여 놓는다. 낮에는 학교에 가고, 집에 돌아와서는 집안 일 돕고, 방바닥에 엎드려서 공부한다. 때로는 조카아이를 업어 재우고 애가 울면 따라 울기도 했고, 밤에는 뒷산에서 우는 올빼미 소리에 겁을 먹고 화장실 가기를 무서워했었다.


초등학교 졸업여행으로 바로 가까운 합천 해인사에 트럭 편으로 가게 되었는데, 출발하는 날까지 급장(반장)인 내가 여행비를 마련하지 못하고 애태웠었다. 출발 당일 아침에야 형님께서 여비를 장만해 주셔서 그 돈을 받아 들고 트럭 내려오는 곳을 향하여 안간힘을 다해서 신작로 쪽으로 달려가면서 소리를 질러 댔다. 그러나 트럭기사는 끝내 내 절규를 듣지 못하고 나만 뒤에 남긴 채 하얀 먼지를 일으키며 멀리 사라졌다. 그 때의 아쉬움이 지금도 내 가슴 한 구석에 남아있다.


그 오지에도 손꼽아 기다리는 때는 있었다. 설 명절과 추석 명절이 그것이다. 그 때가 되면 깨끗한 옷 입고 쌀밥 먹고 떡 먹고 아무 간섭 받지 않고 뛰어 놀 수 있었다. 설날에는 아이들과 젊은이들은 이집 저집 어른들을 찾아가서 세배하고, 맛있는 음식 대접받고 덕담 듣고 마냥 즐겁기만 했다.


그 시절 내 머리 속의 전기는 에디슨이 발명해서 불만 밝혀 주는 것으로 생각했지 오늘날처럼 모든 문명의 중추가 되는 것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 당시 우리 고향에서는 밤에는 호롱불 켜 놓고, 그 밑에서 아낙네들은 바느질하고. 남정네들은 책도 읽고 새끼도 꼬았다. 또 아낙네들은 겨울에 엷은 물안개가 솟아오르는 냇물로 손을 호호 불어 가면서 빨래를 했고, 그 빨래를 풀 먹여서 다릴 때에는 숯불 피워서 손잡이 달린 다리미에 담아 양쪽에서 맞당기며 다렸다. 디딜방아 찧어 밥해 먹고, 두레박으로 우물물 길어 마시고, 밤길 걸을 때에는 등불을 켜들고 다니거나, 관솔불 켜 들고 다녔어도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때는 '전기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은 해 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는 전기를 떠나서는 단 하루도 살 수가 없다.


거리에 가로등이 없고, 집에 전등, 텔레비전, 선풍기.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전기밥솥, 전자레인지, 커피포트, 컴퓨터, 핸드폰 등 가전기구 중 하나라도 없다면 크게 불편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병원의 의원(醫員)도 손 진맥과 청진기로 진찰해서 처방하고 치료해 주었었는데, 그것이 최선인 줄 알았다. 지금은 전자전기기기로 진찰하고 치료한다. 모든 생활이 전기를 이용하지 않는 것이 없고 심지어는 전파를 통해서 지구상의 어디서든지 마주보고 웃고 우는 세상이 되었다.


내가 이런 순박하고 행복이 가득한 전기 없는 세상을 벗어나게 된 것은 읍에 있는 중학교 진학 때부터이고, 그 때에야 비로소 전기에 조금 눈뜨게 되고 문명의 혜택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고 얼마 아니 가서 내 고향에도 문명의 물결이 밀려와 집집마다 전등불이 켜지고, 텔레비전이 들어오고, 동네에서는 확성기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고, 가로등이 온 마을을 환하게 밝히고 있어, 빛의 혜택을 못 보는 것은 오직 맹인뿐인 세상이 되었다.


내 고향은 망우당 곽재우 의병장 홍의장군이 이웃동네에서 태어나셔서 임진왜란 때에 의거하여 나라를 구한 충의의 고장이기도 하다. 의병은 자진해서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오직 구국일념의 숭고한 정신으로 병기ㆍ병력 모든 면에서 절대 열세였는데도 불구하고, 왜군과 싸워 나라를 구하였다. 나는 그 위대하고 숭고한 정신을 후손에게 일 년에 한 번씩이라도 일깨워 주기위하여 ‘의병의 날’ 국가 기념일 제정을 전국 의령군향우연합회의 목적사업으로 채택케 한 지 10년 만에 의령군의 국회청원을 통해 뜻을 이루었다.


이렇게 자랑스럽던 내 고향은 전기 대신 더 밝고 따뜻한 정(情)이 있었고, 정으로 엮여진 유대로 모두가 굳게 결속되고, 가족끼리, 이웃끼리 손을 마주잡고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아 왔다. 그러나 지금은 그 두텁고 따뜻했던 정이 엷어졌고, 또 눈물도 메마르고 물질만능의 세상이 돼 버렸다. 재물 때문에 형제간에ㆍ친인척간에 갈등과 다툼이 일고, 극단적 개인주의가 팽배해졌다. 그 따뜻했던 정은 어디로 가고 이제 차가운 물질문명만 남았단 말인가. 전기의 힘은 실로 엄청난 것이어서 정신문명을 밀어내고 세상 구석구석까지 번져가 가정뿐만 아니라 모든 생활과 산업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데가 없고 현대 문명을 선도하고 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했던가. 뉘라서 고향을 그리지 않으랴. 돌다리로 건너던 시내를 지금은 높다란 콘크리트 다리로 건너게 됐다. 꼬불꼬불하던 논밭언덕이 반듯반듯하게 정지되고, 꾸불꾸불하던 물길도 바로잡아졌다. 논밭 길도 넓혀져서 시골 같지 않은 시골이 되어 옛 시골 모습은 간데없지만, 그래도 내 고향에 들어서면 따뜻한 정이 나를 보듬어 준다. 호롱불 밝히던 시절에 정으로 밝히며 정으로 유대를 굳게 다지던 그 때의 내 고향이 매양 그립다.

편집부 기자 / 입력 : 2014년 0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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