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의 지명’으로
새롭게 펴낸 ‘우리고장 땅이름’
의령문화원
17년 만에 발간
스토리 전달로
울림에 방점을 둔
이전 방식과 다르게
사전식으로 풀이
정보 명확하게 전달
허백영 전 의령문화원장이 97년 집필한 ‘우리고장 땅이름’이 17년 만에 최근 새롭게 발간됐다.
의령문화원(원장 허흔도)는 지난 5월 ‘의령의 지명’을 문화원 회원들에게 배포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허 원장은 발간사에서 “‘우리고장 땅이름’은 1997년도에 제6대 의령문화원장을 역임하신 허백영 원장이 직접 골짝 골짝을 누비면서 땅 이름을 조사하고 상세히 기록하여 각고의 노력으로 출판한 책입니다”라며 “‘우리고장 땅이름’은 발간한 지 17년이 지나 책을 요구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본 문화원에 보관되어 있는 여분의 책도 없어 고심하던 중 의령군의 도움으로 예산을 확보하여 새롭게 발간하게 되었습니다”라고 했다.
허 원장은 “시대가 변천하고 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지명도 점차 기억에서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명을 알고 있는 어른들이 점차 머나먼 나라로 떠나가면서 지명도 같이 떠나가고 있는 실정이라 하루라도 빨리 재정비가 요구되는 상황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번에 ‘의령의 지명’을 집필한 박용식 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머리말에서 “이 책은 허백영 전 의령문화원장이 집필한 ‘우리고장 땅이름’의 성과를 계승한 것이다. 마을의 전승과 경관에 대한 설명은 인용 없이 그대로 옮겨왔다. 의령의 모든 마을을 일일이 찾아다닌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우리고장 땅이름’은 현재의 의령의 역사와 문화를 가장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는 업적이다. 특히 각 마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아스라이 남아 있는 삶에 대한 설명과 그들의 택호(宅號) 등은 사라져가는 전통의 끝자락을 기록해 놓고 있는 점에서 대대로 평가될 것이다”라고 했다.
박 교수는 “의령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이 장성한 다음에 다시 의령을 찾게 하는 힘은 바로 애향심이며 이 애향심의 시작은 이전 세대와의 소통 속에서 전통을 이해하는 데 있다. 그리고 자기가 태어난 마을의 유래를 찾는 일은 그 땅에 살았던 선인들의 얼을 찾아 가는 일이기도 하며 그들과 소통하는 길이기도 하다”라고 덧붙였다.
‘의령의 지명’은 ‘우리고장 땅이름’의 성과를 계승하면서도 서술방식을 달리하여 눈길을 끌었다. 우선 의령읍 서동리 지명 ‘소고리쟁이집껄’을 보자.
국어사전에서 어휘를 풀이하듯이 지명 ‘소고리쟁이집껄’에 대해 ‘‘소고리쟁이집껄’은 서신마을에 있던 뜸(마을) 혹은 길 이름이다. ‘소고리’는 소쿠리를 뜻하고 ‘쟁이’는 ‘장인(匠人)’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껄’은 ‘거리(路)’를 말한다. ‘소고리쟁이집껄’은 곧 ‘소쿠리를 잘 만드는 기능인의 집이 있는 길’이며 ‘소쿠리를 파는 집이 있는 길’이다. 현재는 사라진 곳이지만 서신마을의 언덕에 대나무를 이용해서 소쿠리와 바구니, 챙이(키) 등 생활도구를 만드는 사람들이 모여 있던 지역이 있었는데 이 지역을 가리키던 이름이다’고 적고 있다.
‘칠석바구모팅이 / 칠성바구모팅이’, ‘칠성바우 / 칠성암 / 칠성바구’ 등에 대해서도 국어사전에서 어휘를 풀이하듯이 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지명에 대한 정보를 한층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다.
반면 ‘우리고장 땅이름’은 사뭇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서신마을의 같은 지명에 대한 풀이를 보자.
‘우리고장 땅이름’은 의령읍 서신마을을 설명하면서 ‘가례면지역과 접경을 이루는 곳이고 동네 앞 들 가운데는 큰바위(지석(支石), 고인돌) 7개가 있었기 때문에 칠성바구(칠성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칠석바구모팅이(모퉁이)란 지명도 있었고 나직한 산은 일제강점기 이후 공동묘지가 들어앉았고 화장막까지 있었던 곳인데 지금의 레미콘회사를 비롯하여 큰 집이 들어앉았다. 산굽이를 따라서 옛길이 있었고 조금 아래쪽 산코숭이 지점에는 새또랑물과 수양버들이 몇 그루 있었고 주막 몇 집이 있었기 때문에 새터주막이니 칠성바구모팅이 수양버들 주막집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의 주차장 자리는 산줄기를 끊어내고 들어낸 터인데 육백사기름집 부근은 약간 높은 둔덕을 이룬 곳이었다. 이 부근에도 초라한 민가가 몇 집 있었는데 주로 대나무를 이용해서 소고리(소쿠리)나 바구리(바구니), 쳉이(키) 등 생활도구를 만드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뜸을 소고리쟁이집껄로 불렀다. 얼마 되지 않은 세월이지만 이 같은 지명은 물론 지형이나 취락구조까지 완전히 바뀌어져 버린 것이다’고 적고 있다.
‘우리고장 땅이름’은 지명을 여러 개 엮어서 이에 대한 정보를 스토리로 전달하고 있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문화가 투영된 의미 전달로 울림을 크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의령의 지명’과 ‘우리고장 땅이름’은 같은 내용을 다루면서 서술방식에서 방점을 달리해 서로 보완해주는 귀중한 향토사료집으로 여겨진다. 유종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