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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경로 여행

김호연<의령 모의중촌>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입력 : 2020년 02월 27일
우리 마을 경로 여행


김호연 <의령 모의중촌>

ⓒ 의령신문
관광버스에 탄지 얼마 안 되어 나는 동네 어르신들의 간식을 챙겨드리느라 정신이 없다. 그때 버스 뒷좌석에서 누군가가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새댁, 간식 챙기는 것도 좋지만 우리 같은 늙은이를 위하여 노래 한 곡 불러주면 어때?”
내 나이도 환갑이 지났건만 동네 마을에서는 새댁으로 통한다. 진짜 새댁이라서가 아니라, 마을 여인네 중에서 가장 어리기 때문에 불리는 호칭이다. 요즈음 시골 인구 분포를 짐작하게 하는 상징적인 호칭으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해진다. 못 들은 척하고 계속 간식을 드리려고 하는데, 차가 흔들거려 고개를 채 돌리지도 못하는 사이 박수와 환호성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그래, 그래! 맞다. 맞아! 예쁜 새댁의 목소리 좀 들어 보자 지난 번 대의면민 체육대회 노래자랑 시간에 잘 부르더구먼…“
앞좌석에 앉아있던 동네 이장(里長)인 남편도 동의한다는 눈빛을 보낸다. 나는 얼떨결에 마이크를 잡았다. 평소에 노래를 잘 부르는 편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분위기가 그냥 빼고 있을 상황이 안 되었다.
“어머님 따라 고무신 사러 가면 멍멍개가 해를 쫓던 날…”로 시작하는 ‘검정고무신’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버스 안의 동네 어르신들은 “노래 끝내주네.”라며 신이 돋는다.
나를 이어 어르신네들의 노래는 계속되고, 버스 안은 박수와 웃음소리로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관광버스도 이에 질세라 목포를 향하여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린다.오늘은 우리 동네 경로회에서 연간행사인 경로 여행을 가는 날이다. 나는 경로당 회원이 아니지만 동네 이장의 부인이라는 자격으로 족쇄에 채여 30여명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목포 해상케이블카며 최근에 완공한 목포 인근 신안 천사대교 등을 관광하기 위하여 나선 것이다. 떠나기 전 마을 확성기에서는 새벽부터 흘러간 옛 노래가 고요한 아침을 깨운다. 나도 남편과 함께 마을회관에 나가 오늘 탑승할 인원이며 간식 등을 챙기기에 바빴다. 동네 어르신들은 새벽부터 곱게 단장 하고 관광버스를 타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 몇 분이 보이지 않자 마음 급한 경로회장은 기어이 마이크를 잡는다. “아! 아~오늘 여행 가는 것 알고 계시지 예? 관광차가 이미 회관 앞에 대기 하고 있는데 예, 화순 댁이 안보이네 예, 그렇다고 서둘지 말고 찬찬히 오이소, 자빠지면 여행 못 갑니더.” 확성기 소리에 동네 개들도 덩달아 멍멍 짖는다. 드디어 화순 댁이 나타나자 관광버스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앞좌석에 앉은 어르신네부터 차례로 인사를 드렸다. “'어르신들! 안녕하십니꺼?” “아이구! 새댁! 어서와 새댁이 차에 타니 차안이 훤하네” 준비한 간식 봉지를 좌석마다 일일이 나눠 드리고, 의자 뒤 고리에 쓰레기 담을 검정 빈 봉투와 컵 꽂이에 컵과 생수도 꼽아 놓았다. 그리고 모닝커피 한 잔씩 타서 드리니 모두들 좋아하는 눈치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새댁 아닌 새댁은 이장의 부인이라는 단 하나의 꼬리표 때문에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드디어 3시간 만에 목적지인 목포에 도착해 해상케이블카를 탈 차례가 왔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난감했다. 인원 체크를 하는데 한 분이라도 못 탄다 하시면 나도 슬쩍 빠지려고 주위를 살펴봐도 모두가 타겠다고 하니, 제일 젊은 내가 무서워서 못 탄다 할 수도 없었다. “그래, 한 번 시도해 보자!” 마침 선글라스와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무서워 주먹을 얼마나 꼭 쥐고 있었는지 땀이 촉촉하게 베인다. 케이블카 타고 가는 거리가 어찌나 멀게 느껴지든지 지금 생각해도 간이 오그라드는 것 같다.
그리고 천사대교는 전국에서 ‘세 번째로 긴 다리’라고 하는데, 바다 위에 어찌나 정교하게 건설되었는지 경이롭기 까지 하였다. 물론 대통령 김대중 대교도 구경했다. 일행이 경로 회원이다 보니 보행이 자유롭지 않아 되도록 차를 타고 여행을 했다. 다행히 목적한 여행을 마치고, 관광차는 왔던 길을 되돌아 조용히 달리고 있었다. 그 때 경로회장 할머니가 젊은 처녀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기라도 하듯 제법 큰 소리로 제안을 하신다. “보소, 기사양반! 이제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가고 있으니 신나는 노래나 틀어보소. 맹숭맹숭하게 갈러니 좀 심심 하네.” “예, 그렇게 하지요.”
음악이 나오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뼉을 치며 노래를 따라 부른다. 옛날 흘러간 노래부터 요즘 신곡 트로트 까지 음악소리가 귀청을 울릴 정도인데도 어쩌면 그렇게 잘 부르는지 젊은이가 무색할 정도였다. 박자와는 상관없이 그냥 흥에 겨워 잠시나마 시름을 접어두고 신명나게 부른다. 새댁으로 불리고 있는 나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는 사이에 관광버스는 동네 어귀로 접어들어 마을회관 앞에 도착했다. 마을 이장인 남편은 무사하게 임무를 마쳤다는 듯이 편안하게 마이크를 잡는다. “어르신들! 오늘 관광 재미있었습니까? 어쨌든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귀가해서 다행입니다. 서둘지 마시고 조심조심 내리시길 바랍니다.”
나도 운전기사께 인사를 했다. “오늘 마을 어르신들 모시고 안전운전 해주시어 감사합니다. 수고 많았어요.” 그리고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부축해서 안전하게 내려 드렸다. 그런 어르신 중에는 우리 마을에서 멀지 않는 양로원에 계시는 내 친정어머님 같은 분도 몇 분 계셨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효도가 부족해서일까? 마을 회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짧은 시간에 친정어머니 생각에 갑작이 콧등이 시큰해지며 눈물이 두 볼을 적신다.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입력 : 2020년 0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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