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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믿고 의지하는 신뢰 관계로 조선어학회 적극 후원

주요한 사실을 실증적으로
제시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조선어학회 깊숙이 관여
이우식, 이극로, 안호상 지원

도지정 문화재인 ‘안희제 생가’
‘상로재’ ‘고산재’ 비지정 문화재
‘안희제 묘’ 등 유적 4개소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 신청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599호입력 : 2022년 09월 14일
의령, 근·현대의 선각자를 찾아서

ⓒ 의령신문

<5> 백산 안희제

최근 의령 국립국어사전박물관을 유치하자는 시민사회의 운동이 활발하다. 오늘날의 한글이 있게 한 조선어학회 33인의 인물 중에서 남저 이우식, 고루 이극로, 한뫼 안호상 등 의령인이 3명이나 있고 이들의 역할이 주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의령은 우리말과 우리글 지킴이 성지’라는 주장이 가능해진다. 항일독립운동과의 맥이 닿는 근현대 의령의 선각자 발자취를 찾는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의령신문은 2022년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이러한 근현대 의령 선각자의 발자취를 더듬는 시리즈를 엮어나가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의령인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드높이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그동안 취재팀은 조선어학회를 연결고리로 하여 남저 이우식(1891∼1966), 고루 이극로(1893∼1978), 한뫼 안호상(1902∼1999)의 발자취를 살펴보았다. 그 발자취는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구체적인 매개물을 찾고, 그 매개물의 현주소를 드러내는 데 주력했다. 기억하고 기리는 것은 구체적인 장소를 매개로 하여야 생생하고 문화관광자원화 하여 지역발전에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백산 안희제(1885∼1943) 차례이다. 당초에는 조선어학회를 넘어서 항일독립운동으로 범위를 넓게 잡았었다. 백산 안희제, 오당 조재학을 포함시켜 시리즈를 어느 정도 볼륨 있게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시리즈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당초 계획대로 하기에는 시간, 자료, 지식 부족 등으로 다소 무리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선어학회를 연결고리로 하는 것으로 한정하기로 했다. 그래야 시리즈 전체의 통일성도 더 선명하게 드러내고, 지금 의령의 주요 현안인 국립국어사전박물관 유치 운동에도 조금이나마 더 기여할 수 있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지난 2021년 김정권 전 국회의원은 자신의 저서 ‘김정권의 의령이야기’ 53∼54쪽에서 ‘백산은 (이우식과) 1919년 장학회를 설립하니 기미육영회였다. 후일 안호상, 이극로 등 쟁쟁한 인사들이 기미육영회의 장학금과 후원으로 구미 등지에 유학하고 돌아와 독립운동의 기둥이 되었다’, ‘1942년 10월 조선어학회 사건이 터지면서 배후로 지목된 백산은 체포되어 끌려갔다’ 라고 적고 있다.

 조선어학회를 매개로 하여 이우식, 이극로, 안호상과 백산 안희제의 연결고리 내용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지난 2019년 10월 8일 의령군민문화회관 공연장에서 의령문화원이 주최·주관한 ‘의령의 인물과 학문Ⅵ 학술발표회’가 개최됐다. 

 이날 김복근 박사(현 국립국어사전박물관 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이 ‘조선어 독립을 위한 조선어학회의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하면서 ‘조선어학회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 남저 이우식, 고루 이극로, 한뫼 안호상을 논의하려고 하면 먼저 백상 안희제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백산 안희제는 1907년 대동청년당을 결성했는데, 의령 사람으로는 이우식, 이극로 등이 단원으로 활동했다. 안희제와 안호상은 같은 마을에서 살았던 4종 숙질간이니, 서로를 믿고 존경하는 혈연관계이다. 안희제는 1929년에 발족한 조선어편찬위원회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조선어사전 편찬은 백산이 기미육영회를 통해 유학을 지원한 이극로가 주동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백산상회 설립 이후로 평생의 동지로 활동했고, 뒷날(1931) 조선어사전 편찬회의 회장으로 추대된 이우식도 참여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안희제와 가장 활발한 교류를 가졌던 인물은 역시 이극로였다. 그는 조선어학회 일을 하면서 안호상을 만나기도 했다.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기록을 남기지 않았던 안희제의 행적으로 보아 주요한 사실을 실증적으로 제시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안희제는 조선어학회 활동에도 깊숙이 관여하면서 이우식, 이극로, 안호상을 비롯한 한글학회 33인의 활동을 지원하고 후원하였음은 쉽게 추론할 수 있다’ 라고 했다.

 백산 안희제와 조선어학회의 실증적 관계는 향후 과제로 남겨두기로 하자. 백산 안희제를 기억하고 기리는 구체적인 매개물은 현재 부림면 입산마을에 집중하여 남아있다. 입산마을에 있는 도지정 문화재인 ‘의령 안희제 생가’(문화재자료 제193호, 1993.01.08. 지정), ‘의령 상로재’(문화재자료 제483호, 2009.11.19. 지정), ‘의령 고산재’(문화재자료 제517호, 2010.12.09. 지정), 비지정 문화재 ‘의령 안희제 묘’ 등 4개소 의령 안희제 유적의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승격을 신청했다고 의령군 관계자는 지난 9월 1일 밝혔다.

 그동안 의령군은 2018년도 주요업무계획에서 의령 안희제 생가 보수(1억 7천400만원) 등 문화재 보수·정비를 통한 원형 보존 및 후대 전승에 힘썼다. 하지만 2019·2020년도 주요업무계획에서는 백산 안희제 생가 국가지정문화재 승격 추진을 내세우다가 2021·2022년도 주요업무계획에서는 의령 안희제 유적(생가 등 4개소)의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승격을 전격적으로 내세워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백산 안희제 사업과 관련하여 2019년 11월 22일 의령군농업기술센터에서 열린 ‘백산 안희제 생가 사적지정을 위한 백산 안희제 선생 학술토론회’<사진>, 2019년 4월 3일 국회의원회관 제1 소회의실에서 열린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및 백산 안희제 선생 순국 76주년 추모 학술회의’, 2006년 5월 12일 부림 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린 ‘백산 안희제 선생 사상’ 첫 심포지엄 등과 연계돼 있다.
 
 2019년 11월 22일 의령군농업기술센터에서 열린 ‘백산 안희제 생가 사적지정을 위한 백산 안희제 선생 학술토론회’의 경우 ‘백산 안희제 생가 사적지정’을 위한 것이라고 목적을 확실하게 한 바 있다. 그 당시 종합토론의 좌장인 이문기 전 경북대 교수는 “우리나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중에 혹시라도 독립운동가의 생가가 지정된 사례가 있는 가 봤더니 윤봉길 의사 유적지, 류관순 열사 유적지 이 두 곳만 사적으로 지정이 되어 있어요. 물론 안동에 있는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인 임청각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임청각이라는 건물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고건축적인 가치가 대단합니다. 그래서 그 가치에다가 석주 선생의 독립운동 사상의 위상이 덧붙여져서 보물로 되었습니다. 실제로는 윤봉길 의사, 유관순 열사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적으로 지정된 사례가 없었습니다. 대체로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지금 현재 백산 선생 생가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듯이. 비슷한 예로서 안동 임하면 천전리에 있는 백하 김계락 선생의 고택, 그 백하구려라고 합니다. 안희제 선생도 관여했던 협동학교 그 자리가 바로 백하구려 그 집이거든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현재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이 되어 있습니다. 사적으로는 아직 승격이 안 됐죠”라며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오늘 우리가 하는 이 백산 선생의 생가 사적 지정을 위한 학술토론회라고 하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개척적인 작업, 이 일이 잘 되어서 아마 무사히 사적으로 된다면 앞으로 후속되는 사적으로 지정되는 데 크게 기여를 할 수 있는 개척적인 혹은 선도적인 이런 역할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만큼 상당한 난관도 예상되는 바이죠. 그런 점들을 염두에 두시고 사적 지정을 위해서 어떤 보완을 하고 논리적인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후 백산 안희제 생가 사적지정은 신청했지만 부결된 바 있다고 지난 9월 1일 의령군 관계자는 확인해줬다.

 그래서 이번 의령 안희제 유적(생가 등 4개소)의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승격 신청은 그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생가 하나에 그치지 않고 의령 안희제 유적 4개소를 패키지로 묶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승격 신청과 함께 백산 안희제 관련 사업도 원활하게 추진되고 있다.

▣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승격 신청 의령 안희제 유적 4개소

ⓒ 의령신문

 먼저, 의병박물관 제2전시장이 추진되고 있다. 임진왜란 의병 중심의 현)의병박물관을 조선후기의 한말의병 및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까지 조명해 명실공히 의병종합박물관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추진 중인 사업이다. 제2전시관은 현재 의병박물관과 연접하여 증축될 예정이며, 상설전시실을 비롯하여 기획전시실, 어린이박물관 등의 전시시설이 갖춰진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연면적 1,074㎡ 규모로 사업비 53억을 투입하여 올 하반기에 착공하여 2024년 4월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백산 나라사랑 너른마당 건립사업’은 입산문화역사관에 2020년부터 2002년까지 50억 원을 들여 연면적 954.39㎡(지상 1층) 규모로 체험실, 교육 및 세미나실, 게스트룸 등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입산문화역사관은 27억 원을 들여 2년 만인 난 2009년 8월 27일 준공식을 개최한 바 있다.

 그동안 폐교가 된 부림초등학교 입산분교를 리모델링하고 고산재와 상로재 주변을 정비하여 생태공원을 조성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의령의 문화센터로 가꾸어놓았다. 이곳은 전통 농촌의 자연환경과 배산임수의 마을 형태가 고스란히 잘 보존된 지역으로 문화예술과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한 정신문화의 고장이다. 항일 애국지사인 백산 안희제 선생 생가와 항일 독립운동의 배양소였던 창남학교, 지역의 인재들을 배출한 고산재 등의 문화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백산 안희제와 관련한 움직임은 최근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김정권 전 의원은 ‘임시정부 운영자금의 60%를 백산 혼자서 조달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백산은 독립자금 조달은 물론이고 연락책의 역할까지 직접 감당했기 때문에 항상 일본 경찰의 감시 대상 1호였다’ 라고 갈파하고 있다. 이런 백산이 왜 오래도록 잊힌 독립운동가로 남아있었을까. 지난 2013년 8월 13일 ‘잊힌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 편’ 이 K TV 30분 다큐멘터리로 방영되기도 했다. 그동안의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유종철·전재훈 기자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599호입력 : 2022년 09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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