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4-03-29 23:17:18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뉴스 > 특집

조선어학회의 철학적 배경이 된 한뫼 안호상 선생

조선어사전 편찬 사업 참여
고도의 전문성 요구하는
철학, 윤리학, 논리학, 심리학
분야의 실무 책임지는 역할

이우식 이극로 안희제 함께
믿고 의지하는 신뢰관계 형성
1923년 ‘민족의 분열’ 목격
민족사상 정립 평생 화두로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598호입력 : 2022년 08월 25일
의령, 근·현대의 선각자를 찾아서

 ▶한뫼 안호상 선생 생가                                                                       ⓒ 의령신문

<4> 한뫼 안호상

 최근 의령 국립국어사전박물관을 유치하자는 시민사회의 운동이 활발하다. 오늘날의 한글이 있게 한 조선어학회 33인의 인물 중에서 의령인이 3명이나 있고 이들의 역할이 주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의령은 우리말과 우리글 지킴이 성지’라는 주장이 가능해진다. 항일독립운동과의 맥이 닿는 근현대 의령의 선각자 발자취를 찾는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의령신문은 2022년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이러한 근현대 의령 선각자의 발자취를 더듬는 시리즈를 엮어나가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의령인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드높이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조선어학회의 철학적 배경이 된 한뫼 안호상’. 지난 2021년 김정권 전 국회의원은 자신의 저서 ‘김정권의 의령이야기’ 71∼75쪽에서 조선어학회와 관련하여 의령 출신 선각자 안호상 박사를 이야기 하면서 그 글의 제목을 그렇게 달았다. 그 제목에서 묘한 매력을 느꼈다.

 조선어학회에 무슨 철학적 배경이 되었다는 것이지, 하고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그 철학이 계급을 넘어선 민족주의이고, 그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하여 조선어학회 활동이 이뤄졌다면, 역으로 그 조선어학회가 자신을 매개로 하여 다시 계급을 넘어서는, 그래서 남북한의 이질성을 극복하는 디딤돌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김정권은 <한뫼 안호상 20세기 회고록(1996년)>에서 (한뫼 안호상은) 1923년 1월 상해에서 열린 <국민대표회의>에 상해 한인 유학생 부회장 자격으로 참관하게 되는데 국민대표회의가 계파 간의 갈등으로 성과 없이 결렬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상해 임시정부는 단체별로, 지방별로 분열되고 공산당은 자체 내부에서까지도 분열되어 동족끼리 총질하는 현실을 직접 경험하면서 선생은 민족사상 정립이 시급한 민족적 과제라는 생각을 더욱 분명히 하게 되었고, 이러한 경험은 선생의 사상적 특징인 민족주의와 일민주의가 형성되는 배경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하였다, 라고 밝히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한뫼 안호상은 조선어학회와 관련하여 어떤 구체적인 활동을 했을까. 지난 2019년 10월 8일 <의령의 인물과 학문Ⅵ 학술발표회>에서 김복근 박사(현 국립국어사전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공동대표)는 <조선어 독립을 위한 조선어학회의 역할 - 고루 이극로, 남저 이우식, 한뫼 안호상을 중심으로>이라는 제목으로 주제 발표를 했다.

 주제 발표에서 김복근 박사는 <한뫼 안호상 20세기 회고록(1996년)>에 기대어 한뫼 한호상의 활동을 이렇게 정리했다. 1936년 조선어학회 창립을 결의하고, 1937년 5월 안암동 안호상 집에서 이우식에게 출자 권유를 하기로 한다. 안호상은 이은상과 함께 이우식에게 이 계획의 개요와 이극로의 의도를 전달하여 출자를 제안했다. 10만원 자금 제공을 받고, 재단법인을 조직하기로 합의하고, 그 달 하순 이인의 집에서 재단 설립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을 진행했다. 그 해 10월 자금 지원이 곤란하게 되어 계획이 좌절되는 듯 했으나, 1941년 안호상은 이우식과 재협의하여 10만원을 제공하기로 거듭 확약했다. 그리고 한뫼 안호상은 조선어사전 편찬에 참여하여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철학, 윤리학, 논리학, 심리학 분야의 실무를 책임지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한뫼 안호상의 활동과 관련하여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애쓴 의령 출신 조선어학회 활동 인물인 이우식 이극로 안호상의 업적 재조명을 위한 국립 국어사전박물관 조성사업을 의령군은 추진하고 있다. 위치는 의령읍 일원으로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한뫼 안호상 선생을 지역에서 기억하고 만나는 매개물은 부림면 설뫼마을에 남아 있는 선생의 생가. 그 생가<사진>를 지난 8월 18일 취재팀이 찾았다. 안호상 가옥은 탐진안씨가 누대로 세거하고 있는 의령군 입산마을의 중앙부에 입지하고 있었다. 안호상 가옥에서 건축사적 가치를 가진 것은 1911년에 건축한 안채뿐이다. 안채를 제외한 아래채,협문 등은 건축연대가 늦고 학술적 문화재적 가치가 부족하여 문화재 지정을 받지 못하였다. 또한 건물 배치 및 외부공간의 구성 면에서 볼 때 사랑채와 대문채 및 기타 부속건물의 멸실로 인해 원형이 크게 훼손돼 있었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1간의 일(一)자형 건물로, 전후 좌우에 퇴가 발달한 홑처마 맞배집이다.

 지난 2008년 의령문화원이 만든 마을지 ‘입산마을의 역사와 문화’ 155쪽은 ‘안호상 생가는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야전 병원으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당시 인민군 야전 병원이 있던 입산마을은 미군의 공격대상이 되었다.’라고 적었다. 또 ‘1946년 10월 10일 부림지서 습격 사건 이후 입산은 빨갱이 마을로 낙인찍혀 경찰의 횡포와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독립 운동가들의 마을이 이제 빨갱이 마을로 전락해 친일경찰들의 분탕질을 겪게 된 것이다.’ 라고 적었다.

  마을지 ‘입산마을의 역사와 문화’는 91∼118쪽에서 입산의 현대사를 이야기하면서 1)저항의 전통과 해방, 2)부림지서 습격, 3)고난의 세월, 4)남겨진 사람들 등으로 나눠 굴곡진 입산의 현대사를 처절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 처절함의 끝판은 국민보도연맹의 건. ‘입산마을의 역사와 문화’ 110쪽은 ‘국민보도연맹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사실은 입산을 포함한 의령지역 국민보도연맹 희생자들의 태도이다. 4.19로 이승만 정부가 몰락한 후, 2공화국이 들어서자 많은 지역에서 국민보도연맹 희생자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유가족회가 결성되고 진상규명 투쟁을 벌였다. 하지만 의령은 고요했다. 의령에서는 그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이런 분위기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라고 적었다. 지난 2015년 11월 20일에 이르러서야 국민보도연맹 희생자 제1회 추모제가 의령지역에서 국민보도연맹사건이 발생한 지 65년이 흘러 의령읍 대원사에서 개최되기도 했다.

 이런 아픈 현대사를 가슴속 깊이깊이 간직한 입산을 소개하는 글이 최근 눈길을 끌었다. 지난 7월 25일 의령군 공식 블로그 ‘의령 이야기’에서 서정호 기자는 ‘대한민국 근대사에 한 마을 같은 씨족에서 이렇게 많은 애국자가 탄생된 마을이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입산 문화 역사 마을’을 소개하는 글에서 “부림면 입산마을에는 문화예술과 항일독립운동을 주도한 정신문화의 고장으로, 항일 애국지사이신 백산 안희제 생가, 항일 독립 정신의 배양소였던 사림 창남학교, 지역의 인재들을 배출한 고산재가 있으며, 경상남도 문화재가 5곳이나 지정되었을 정도로 역사적 문화재가 잘 보존된 유서 깊은 마을입니다”라며 “입산리(설뫼) 마을 회관 앞에는 마을을 안내하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입산마을을 빛낸 인물이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만, 의령 고장을 빛낸 인물이며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근대사에 큰 발자국을 남기신 애국하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저의 소견으로 한 마을에서 같은 씨족에서 이렇게 많은 애국자가 배출된 일은 우리나라 전체를 둘러봐도 드문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안창제, 안준상, 안호상, 안균, 안기종, 안효제, 안희제 이렇게 일곱 분이십니다”라고 했다.

 지난 2019년 10월 8일 <의령의 인물과 학문Ⅵ 학술발표회>에서 동국대학교 임종욱은 ‘철학자로서의 안호상 탐구’라는 제목으로 주제 발표를 하면서 “정치철학자로서 안호상은 일민주의 이념의 사상적 이론을 제공해, 지나친 반공 이데올로기에 추동된 이승만 독재를 호위한 부정적 요소를 씻기 어렵지만, 궁극적으로 안호상은 독재자 추앙보다는 사해동포주의(四海同胞主義)와 만민평등사상(萬民平等思想)을 바탕으로 모든 이들의 자유와 평등을 궁극의 목표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또 진주교육대학교 외래교수 조구호는 ‘한뫼 안호상의 사상과 특징’이라는 제목으로 주제 발표를 하면서 “해방 이후 사상적으로는 좌우로 분열되고 민족주의도 지도자에 따라 파당이 형성되어 혼란을 거듭하던 상황에서 민족의 사상적 통일을 실현하고자 했던 반공주의자 안호상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반공주의와 민족 우선이라는 사상과 철학을 교육에서도 실현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제는 결론을 지어야겠다. 지금이 한뫼 안호상 박사를 새롭게 되돌아보게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위키백과는 한뫼 안호상(安浩相 1902년 1월 23일 ∼ 1999년 2월 21일) 선생의 생애를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안호상 선생은 초대 문교부 장관이 되어 홍익인간의 이념을 근간으로 하는 교육이념을 토대로 한국교육의 방향을 설정했으며 국민교육헌장의 사상을 구축하는 데 박종홍과 함께 참여하였다. 학술원 회원과 참의원, 한독(韓獨) 협회 회장, 국제문화총재단 이사장, 민족학회 총재, 배달문화원 총재, 대륙문화연구회 총재 등을 지냈다. 1992년에는 대종교의 최고지도자인 총전교에 올랐다.

 또 위키백과는 고루 이극로(李克魯 1893년 8월 28일 ∼ 1978년 9월 13일) 선생의 생애를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어사전 편찬 집행위원, 한글맞춤법 제정위원, 조선어 표준어 사정위원 등을 역임하고,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검거되어 징역 6년을 선고받고 함흥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45년 광복되자 출소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의 무임소상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이들은 조선어학회 33인의 인물 중에서 두 사람으로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 이후 한 사람은 대한민국 초대 문교부 장관, 또 다른 한 사람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의 무임소상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이념을 달리하는 정치체제에서 승승장구했던 거목들이었다.

 이들의 공통분모는 조선어학회. ‘김정권의 의령이야기(2021년)’ 74∼75쪽에서 김정권은 “조선어 독립을 위한 의령 사람의 노력과 헌신은 다시 보아도 믿기지 않을 정도다”라며 “조선어 대사전 편찬사업에서 이우식은 재정 면에서 실질적인 책임을 졌고 이극로는 총괄기획과 실무를 책임졌다. 안호상은 최고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철학, 윤리학, 논리학, 심리학 분야의 실무를 책임졌다. 또 이들 뒤에는 안희제의 적극적인 후원이 있었고 고향 사람끼리 서로 믿고 의지하는 신뢰가 있었다”라고 했다.

 조선어학회를 매개로 하여 서로 믿고 의지하는 신뢰가 있었던 것처럼 광복 이후 이념을 달리하는 정치체제에서 비록 오래도록 살았다고 하더라도 서로 믿고 의지하는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매개물 중 하나로 조선어학회를 들 수 있겠다. 그래서 이들의 발자취를 찾고 그 현장의 기록을 축적하는 것은 서로 믿고 의지하는 그 신뢰를 회복하는 준비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유종철·전재훈 기자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598호입력 : 2022년 08월 25일
- Copyrights ⓒ의령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많이 본 뉴스 최신뉴스
오민자 의령군의회의원 ‘경상남도 의정봉사상’ 수상..
의령교육지원청, 권역별 공유교육의 첫 발을 내딛다..
제245회 경남시ㆍ군의회 의장협의회 정례회 의령군에서 열려..
2024 경남 관광박람회」의령군 관광홍보관 성황리 운영..
부자1번지 의령군, 농업인대학 힘찬 출발!..
기강 댑싸리·둑방 벚꽃...의령군 소규모 마을축제 `풍성`..
의령군, `연료비 절약` LPG 저장탱크 보급사업 추진..
송진호, 한국문화유산 명장 선정..
대한민국 부자 1번지 의령 솥바위 엠블럼 공개..
의령 가례 밭미나리 축제 종료...밭미나리 완판 행진..
포토뉴스
지역
“의령군 기업체 대상 지역특화형 비자사업 수요조사 실시” 4월 11일까지 외국인 인력 수요 등 총 20여개 항목 조사 예정..
기고
정신대 문제 제기 어떻게 성과 거뒀나..
지역사회
관악산 관음사 능선에서 올려..
상호: 의령신문 / 주소: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충익로 51 / 발행인 : 박해헌 / 편집인 : 박은지
mail: urnews21@hanmail.net / Tel: 055-573-7800 / Fax : 055-573-7801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남,아02493 / 등록일 : 2021년 4월 1일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유종철
Copyright ⓒ 의령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
방문자수
어제 방문자 수 : 9,786
오늘 방문자 수 : 6,254
총 방문자 수 : 15,490,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