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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칠곡초등학교 개교 100돌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587호입력 : 2022년 03월 11일
허 만 길
<문학박사/ 전 문교부 편수관>
 
 ⓒ 의령신문
 
▲ 나라의 비운 속에 희망 서린 개교

 나는 의령군 칠곡초등학교 1955년(제30회) 졸업생이다. 칠곡초등학교는 1910년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제 합병한 지 10여 년이 지난 1922년 5월 6일 칠곡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였다. 2022년 현재 개교 100돌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축하와 고마움의 찬사를 가득 보낸다. 누적 졸업생 수는 4,700여 명이 된다.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는 구한말 1895년 7월 소학교령을 공포하여 초등교육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소학교 편제는 3년제의 심상과(尋常科)와 2, 3년제의 고등과로 나뉘어 실제 수업연한은 5, 6년이었다. 1906년 2월 일제의 통감부 설치 후 1906년 8월 27일에 공포된 보통학교령에 의해 소학교의 명칭은 보통학교로 바뀌고, 수업연한은 4년으로 단축되었다.

 한일합병 후 일제는 1911년 제1차 조선교육령을 발표하여 소학교를 계속 보통학교라 하고 수업연한도 4년으로 하였다. 교육과목은 일본어를 국어라 하고서 일본어 교육에 편중되어 있었다. 그 밖의 과목은 수신, 산수, 조선어를 필수과목으로 하고, 창가, 도화, 이과, 수공, 체조, 직업, 가사를 선택과목으로 하였다.

   일제는 1922년 제2차 조선교육령을 발표하고, 보통학교의 수업연한을 6년으로 연장하고, 지역에 따라 5년 또는 4년으로 단축할 수 있게 하였다. 한국에 있는 일본인 자녀들은 조선인들이 다니는 보통학교와 달리 소학교에 입학했다. 1919년 보통학교는 482개 교, 학생 수는 8만 4306명이고, 소학교는 380개 교, 학생 수는 4만 2732명이었다. 1926년 7월 1일 소학교령에 의해 보통학교와 소학교의 구분 없이 소학교(심상소학교)라는 명칭으로 바뀌었다.

 1938년에는 제3차 조선교육령을 발표하여, 계속 소학교의 명칭을 유지하였고, 조선어를 선택과목으로 전락시켰다. 1941년 국민학교령에 의해 소학교 명칭을 국민학교로 변경하였으며, 교육과목에서 조선어를 완전히 뺐다.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는 동안 실시한 교육 목적은 어디까지나 한국인의 민족주의와 민족정신을 억압하고 말살하면서 일본의 충량한 국민을 양성하는 데 있었다. 칠곡초등학교는 이러한 역사적 비운 속에 그래도 배워야 희망이 있다는 간절한 상황에서 개교하였던 것이다.

▲ 일제 강점기의 교육 모습
 일제 강점기의 칠곡공립보통학교 혹은 칠곡소학교의 구체적인 교육 모습은 어떠했을까 하는 것은 오로지 허만길의 장편복합문학 ‘생명의 먼동을 더듬어’ (1980년)에서만 나타난다.
 1930년대 칠곡면사무소 직원들은 마을을 찾아다니며 젊은이들이 소학교에 입학하기를 권했고, 어른들은 서당 공부 아닌 소학교의 신식 공부에 대해서 상당히 거부감을 가졌다. 또 젊은이들이 낮에 학교에 출석하면 농사일에도 지장이 있었다. 칠곡소학교 1930년 졸업생 수는 15명이었고, 1931년 졸업생 수는 17명이었다. 그래도 젊은이들은 신식 공부에 대한 열망도 상당히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칠곡면 도산리에 살던 허찬도(1909-1968) 선생은 스무 살(1929년)에 세상 구경을 위해 노동을 하면서 부산으로 가출했다가 칠곡면에서 가장 먼저 상투머리를 깎은 사람이 되어 돌아오면서, 새로운 지식을 배워야만 나라를 되찾는 일과 진취적인 일을 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허찬도 선생은 칠곡소학교 일본인 교장을 찾아가 야학(밤공부) 과정 설치를 건의했다. 36명의 희망자를 모아 1930년(21살) 12월 하순부터 야학이 시작되었으며, 1933년(24살) 6월 하순까지 약 2년 6개월간의 야학과정 수료자는 15명이었다. 교과서는 신명균 지은 ‘노동독본’(조선교육협회 발행) 3권이 중심이었다. 학생들은 일본인 교장의 감시를 피해 조선역사를 공부했다. 그때 머리에 새치가 희끗희끗한 교사가 설(薛) 선생이고, 키가 작은 교사가 우(禹) 선생이었다. 그 당시는 칠곡면에 일본인들도 더러 살았다. 소학교 교장뿐 아니라 경찰 주재소 책임자와 소방조두(소방대장)도 일본인이었다.

 허찬도 선생은 10살 때 3․1독립운동에 참가하였다가 경찰의 쫓김을 당한 바 있으며, 1936년(27살) 경남 진양군 장재못에 양수기를 설치하여 농민들의 가뭄 걱정을 덜어 주고자, 시운전 단계에서 집현면 경찰 주재소 일본인 구로다(黑田) 부장의 방해와 폭력에 참지 못하고 구로다 부장을 가격하여 진주구치소에서 2달 동안 옥고를 치렀다. 1940년(31살) 5월 일본 오사카부(大阪府) 사카이시(堺市) 군수물 공장 아사히철공소에서 ‘고야마’(湖山)로 불리며 일하다가 아사히철공소조선인화친회를 조직하여 회장을 맡고, 한겨울 동맹파업을 벌여 군수물 공장의 가동을 멈추게 하였다.

▲ 개교 100돌 기념행사 감격
 나라의 독립을 맞이하여 칠곡초등학교는 대한민국의 교육 이념 실천에 힘쓰고, 6.25전쟁을 겪으면서도 가르치고 배우는 열정이 넘쳤다. 2022년 개교 100돌을 맞아, 칠곡초등학교 총동문회에서는 여러 가지 기념행사를 마련하였으니, 그 감격이 크고 크다. 칠곡초등학교와 칠곡초등학교 총동문회의 무궁한 발전을 빈다.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587호입력 : 2022년 03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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