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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迂堂曺在學先生紀念碑’의 문제점

조규태 경상대학교 명예교수(문학박사)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입력 : 2019년 07월 12일
迂堂 유고 국역 출판

‘迂堂曺在學先生紀念碑’의 문제점

조규태 경상대학교 명예교수(문학박사)

     조규태 문학박사
경남 의령군 화정면 상정리에 세워져 있는 <오당조재학선생기념비>는 <오당조재학선생기념비건립위원회(위원장 권수기)에서 1980년 5월 5일에 세웠다가, 2011년에 국가보훈처의 예산 지원을 받아 다시 건립한 비이다. 최근에 세워진 이 비는 좋은 재질의 돌로 우람하게 만들어져 있어 지나가는 이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그런데 이 비석을 찬찬히 살펴보게 되면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Ⅰ. 비문을 지은 사람

오당 조재학 선생의 비문을 지은 사람은 심악 이숭녕 교수이다. 우리나라 국어학계의 선구자로서 국어학을 새로운 학문으로 구축하는 데 이바지한 업적을 가지고 있다. 논문과 저서도 많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서울대학교 교수들은 대부분 이분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처럼 큰일을 한 사람임에도 오당 선생의 비문을 지은 분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오당 선생은 정통 한학을 최익현, 송병선과 같은 나라를 걱정하는 분들에게서 공부를 하였다. 그리하여 스승의 가르침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을 하게 되었다. 독립운동은 일신상의 안위를 뒤로 하고, 때로는 목숨이 위태로움을 무릅쓰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오당 선생은 생애의 대부분을 나라 찾는 일에 몰두하였고, 만년에는 실의에 빠져 외롭고 쓸쓸히 살다 조국의 광복을 2년 앞두고 돌아가셨다.
그 반면에 이숭녕 교수는 일본인들이 세운 경성제국대학에서 일본인 교수들로부터 서양학문을 공부하였다. 이숭녕 교수가 배우고 이룩한 국어학은 일본인들이 서양의 이론을 바탕으로 구축한 학문이다. 안일한 가정 속에서 일본들로부터 서양학을 공부하고, 그후에는 중등학교 교사, 대학의 교수로 지내며 시대의 어려움에 구애되지 않고 한평생을 편안히 살았다.
두 사람은 같은 일제강점시대를 살았음에도 전혀 다른 길을 걸으며 살았다. 우국지사들로부터 한학을 공부한 후 독립 투쟁의 길로 나선 오당 선생 삶과, 반면에 일본일들로부터 서양학문을 배운 후 편히 교사와 교수의 길을 걸어온 사람의 인생행로는 전혀 다른 길이었다.
지하에 계시는 오당 선생이 당신의 비문을 이숭녕 교수가 쓰신 것을 알게 되면, 우리나라 대석학이 비문을 써 주셨다고 기뻐하실까 분통해 하실까 궁금하다.

Ⅱ. 비문에 사용된 문자와 언어의 문제점

1. 비 제목의 문제점
비석의 전면에 큰 글자로 <迂堂曺在學先生紀念碑>라고 새겨져 있다. 먼저 이 비의 제목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는 비의 제목만 보아서는 오당이 무슨 일을 하신 분인지 알 수가 없다. 비의 제목은 비의 얼굴이다. 그러므로 우선 제목만 보아도 오당이 무슨 일을 하신 분인지 한눈에 보아 알 수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석과 비문을 찬찬히 읽어볼 마음이 생길 것이다. 오당 선생은 평생을 나라의 독립을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신 분이다. 그러므로 비 제목 맨 앞에 ‘독립운동가’나 ‘애국지사’라는 말을 덧붙이는 게 비의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내게 될 것이다.
둘째는 ‘紀念碑’라는 말이다. 어떤 분이 국가나 사회에 큰 공을 세운 경우, 그 공을 기념하거나 그 공을 쌓은 분을 기리기 위해 기념비를 세운다. <한산대첩기념비>, <충무공이순신명량대첩기념비> 등. 그리고 두드러진 업적을 쌓은 분의 경우라도, 그분의 삶이 고달팠던 경우는 <다산정약용기념비>, <다산정약용추모비>와 같이 ‘기념비’와 ‘추모비’ 어느 쪽을 택하여 세울 수 있다. 그러나 특별히 두드러진 일을 한 분은 아니지만 그분/그분들의 삶을 기리고 본받는 것이 좋다고 판단되는 분의 경우에는 대체로 <군인전사자추모비>, <김기호순직추모비>, <고하송진우선생추모비> 등과 같이 비의 제목에 ‘추모비’란 말을 붙인다. 그러므로 특별히 두드러진 일을 한 것은 없지만, 한평생을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신 오당을 기리는 비에는 ‘추모비’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타당할 것이다.
그러면 오당 비의 제목은 <독립운동가오당조재학추모비> 또는 <독립운동가조재학추모비> 또는 <애국지사오당조재학추모비>, <애국지사조재학추모비>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좋을 것이다.

2. 사용된 문자의 문제점
비문은 누가 읽으라고 쓰는 것이다. 읽을 수 없거나 읽기 힘든 비문은 비문으로서의 가치가 없다. 그러므로 오당의 비문도 중등학교 교육 이상을 받은 사람은 누구라도 이 비문을 읽으며 감동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의 비문은 국한문혼용으로 쓰여 있을 뿐만 아니라, 국한문 중에도 한자 한자투성이로 된 글이다. 이런 글자로 쓰인 글을 우리 젊은이들이 어떻게 읽을 수 있겠는가. 젊은이들을 탓하기 전에, 지금 세상은 한글을 주된 글자로 쓰는 세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젊은이들이 한자를 잘 모르는 것은 시대의 추세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만약에 꼭 한자어를 써야 할 경우에는 한글 뒤에 한자를 나란히 써 두면 될 것이다.

 3. 비문에 사용된 언어의 문제점이숭녕 교수의 원고
세워진 비석의 비문
바른/바람직한 표현
쪽수
내용
맞춤법
1
誕生하셨는데
誕生하셨는대
誕生하셨는데
단어

日本이
日本이
日帝가
맞춤법

들어내자
들어내자
드러내자
단어

夏國
憂國
憂國
단어

敢然
敢然
敢然히
단어
2
日本은
日本은
日帝는
용어

露日戰爭
露日戰爭
러일전쟁
단어

勝戰
勝戰
勝利
용어

韓日條約을
韓日條約을
韓日協定書를 체결하고
第一次韓日協約을 맺고
용어

乙巳保護條約
乙巳保護條約
乙巳勒約, 乙巳條約
乙巳五條約, 第二次韓日協約
단어

抗議에
抗議에
抗拒에
문법

義兵의 抗爭뿐이
義兵의 抗爭만이
義兵의 抗爭만이
문법

勉菴은
勉庵은
勉庵이
단어

護送
護送
押送
단어
3
師弟의 義를 다했고
師弟의 義를 다했고
師弟의 禮를 다했고
맞춤법

슬픔을 달낼 길 없-
슬픔을 달랠 길 없-
슬픔을 달랠 길 없-
단어
4
先生家을
先生家를
先生의 집을
표준어

來襲하였서나
來襲하였으나
來襲하였으나
맞춤법

잠적햇고
잠적했고
잠적했고
문맥

苦憫에 잠긴다
苦悶에 잠긴다
苦悶에 잠겼다
단어

의령의 接墥의
의령의 接境의
宜寧의 接境에
단어

그윽한 곳을 卜하여
그윽한 곳을 卜하여
그윽한 곳을 택하여


生涯를 맞추니
生涯를 마치니
生涯를 마치니
단어
5
後輩들이
後輩들이
後人들이
맞춤법

돌에 사겨
돌에 새겨
돌에 새겨(1) 맞지 않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용어들
1) 日本은 → 일제日帝는, 日本에 → 일제에
‘일본’이라는 말은 우리가 서로 우호적인 관계에 있을 때 부르는 말이다. 일본이 동양 일원을 침략하여 점령하고 있던 시대의 일본은 ‘제국주의’ 사상에 입각해 있던 시대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 시대를 ‘일제 강점시대’라고 부른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우리나라를 강제로 점령하고 있던 시대’라는 뜻이다. 그리고 일제 강점시대의 일본, 즉 ‘일본 제국’을 줄여서 흔히 ‘일제’라고 부른다. 더욱이 독립운동가의 비문에 는 ‘일본’이란 대신에 ‘일제’라는 말을 쓰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2) 韓日條約 → 韓日協定書 / 제1차 한일협약
1904년 2월 23일에 일제는 ‘군사상 필요한 지역을 마음대로 사용하기 위해’ 강제로 조약을 맺었는데, 고종실록에는 이를 ‘韓日協定書를 맺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1904년 8월 22일에는 ‘고문정치를 실시하기 위해’ 강제로 조약을 맺었는데, 고종실록에는 이를 ‘韓日協定書를 맺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학자들을 이를 ‘제1차 한일협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3) 乙巳保護條約 → 을사늑약乙巳勒約 / 을사조약 / 제2차 한일협약
1905년 11월 17일에 일제가 강압으로 우리의 외교권을 빼앗아간 조약을 맺었는데, 고종실록에는 ‘韓日協商條約을 맺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일제는 이 조약을 기만하기 위해 조약의 이름을 ‘乙巳保護條約’이라고 했다. 그래서 뜻있는 학자들은 강제로 맺은 조약이란 뜻으로 ‘을사늑약乙巳勒約’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학계에서는 이 조약을 ‘제2차 한일협약, 을사5조약, 또는 을사조약이라’고 부르고 있고, 고등학교 역사책에는 ‘을사조약’이란 용어를 쓰고 있다.
3) 露日戰爭 → 러일전쟁
지금 역사용어로는 1904년에 러시아와 일본이 싸운 전쟁을 ‘러일전쟁이라 부른다.
5) 護送되자 → 압송되자 / 끌려가자
‘護送’은 ‘죄인이나 형사 피고인을 데려가는 일’을 말한다. 그런데 이 말의 밑바닥에는 원래 글자의 뜻인 ‘보호하여 데려간다’는 뜻이 깔려 있다. 그것은 지금 우리 사회가 인권을 보장하고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일제는 최익현 선생을 대마도로 강제로 끌고 갔다. 그러므로 요즘 쓰는 ‘호송’이란 말은 맞지 않다.
6) 義를 → 예를 / 예의를
오당이 스승 최익현 선생의 시신을 운구해오고 장례를 치른 것은 제자로서의 예의를 다하기 위해서였다. ‘義’는 정의로운 일을 한 경우에 쓰는 말이다.
7) 抗議에 → 항거에
‘先生도 勉庵을 따라 항의에 나섰지만’이란 문맥을 보면, 일제에 저항하여 맞서는 일에 나선 것이지, ‘저항한 뜻’에 나선 것이 아니다.
8) 後輩들이 → 후인들이 / 뒷사람들이
오당 선생은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한 사람이고, 이숭녕 교수는 경성제국대학에서 신학문을 공부한 사람이다.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길은 간 사람이라 선후배 관계가 될 수 없다.
9) 잠긴다 → 잠겼다
‘선생은 失意에 잠긴다’는 문맥으로 보면 과거 시제가 되어야 한다.
10) 先生家를 → 선생의 집을
‘家’는 ‘草家, 瓦家, 資本家, 專門家’ 등의 단어를 만들기는 하지만, ‘先生’과 결합되어서는 단어가 되지 않는다. 이는 한문투의 말이다.
11) 卜하여 → 택하여 / 골라
이 말은 우리말에서 잘 쓰는 말이 아니다.

4. 비문 내용이 어렵고 밋밋함
비문은 쉽게 읽을 수가 있어야 하며, 특히 독립운동가의 비문은 글을 읽으며 그분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셨으며, 그로 인해 얼마나 어려운 생활을 하셨는지를 느낄 수 있도록 써야 감동을 줄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서 있는 비문은 쉽게 읽을 수 없으며 내용도 밋밋하기 그지없다.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입력 : 2019년 07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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