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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情이야기

이학율(시인,수필가)
편집부 기자 / 입력 : 2015년 09월 07일

 


人情이야기


 


이학율(시인,수필가)


 


1956년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어무이, 찬장 구석에 있던 참기름병과 고춧가루 단지 오데 치웠습니꺼? 엄마의 의구심에 찬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다, 안 치웠다.” 할무이는 무슨 소리냐, 잘 찾아봐라는 투로 엄마를 채근하셨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집 대문간에서 들은 할머니와 엄마의 대화 소리에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찬장 속에는 홍도곡(紅桃谷) 밭에서 농사 지은 참깨로 기름을 짜서 사이다병에 넣어둔 참기름과 고추를 빻아서 담아 둔 고춧가루 단지가 있었는데 내가 그것을 가족들 몰래 훔쳐내어 다리 밑에 사는 거지 할아버지에게 갖다주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마을은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깡촌이다. 마을 어귀에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지천인 신반천(新反川)이 흐르고 그 시내를 가로질러 신반교(新反橋)가 있었다. 학교를 파하고 또래 친구들과 동네 타작마당에서 자치기를 하며 놀고 있는데 다리 밑 맨 오른쪽 구석에서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이 저녁밥을 짓느라고 불을 피우고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할아버지께 인사를 하고 저녁 준비하는 주위를 살펴보았다. 동네에서 얻어 온 밥을 군용 반합에다 넣고 끓이고 있었고 반찬은 김치뿐이었다. 할아버지가 다리 밑에서 잠자며 거지생활을 하는 게 너무나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할아버지를 도와 드려야겠다고 마음먹고는 집에 와서 찬장과 살강을 훑어보고 가져다 줄 양념과 반찬을 찾았다. 첫날은 고춧가루는 비닐봉지에 퍼 담고 깐마늘은 호주머니에 넣고 간장과 된장은 그릇에 담고 천일염 굵은 소금은 조그만 단지채로 들고 갔다. “할아버지, 이것으로 반찬 만드는 양념으로 쓰세요.” 하고 드렸다. 할아버지는 반가워 하시면서도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엄마한테 말씀드렸나?” 하시면서 나를 자세히 응시하셨다. “할아버지 갖다 드리고 싶어서 몰래 갖고 왔어요.” 하였더니 할아버지는 다시는 이런 일하면 안 된다.” 하시면서 내 손을 꼬옥 잡아 주셨다.


나는 그 이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다리 밑 할아버지를 찾아가서 끼니를 거르지 않는지 살펴보고 말동무가 되어 드렸다. 우리 가족 어느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우리집에서 불과 백여 미터 떨어진 공굴 밑에 일시 노숙하는 할아버지가 측은해서 확인하러 다녔다. 호박, 감자, 고구마, 마늘 등 채소류는 엄마가 밭에서 따 오시거나 캐어 오신 것을 아주 조금씩 덜어내도 눈에 띄게 표가 나지 않아서 적당히 넘어갈 수 있었지만, 참기름과 고춧가루는 당장 반찬을 만들려고 보니 눈에 띄지 않아 찾아서 난리가 난 것이다. 그 다리 밑의 열악한 한데에서 거지생활을 하면서도 얻어온 밥에다 찌개를 끓여 식사를 해결하시는 것을 보니 어린 나의 마음에도 안도가 되고 착한 일을 한 것 같아서 흐뭇했던 기억이 난다.


하루는 하교 후, 거지 할아버지에게 가보았더니 동네에서 얻어 온 짚으로 집소쿠리와 짚신을 삼고 계셨다. “왜 만드시냐?”고 물어보았더니 장날 내어다 팔아서 그 돈으로 옷을 사시겠다고 하셨다. 며칠 후 할머니와 아버지가 말씀 중에 고추도 말리고 호박이나 박고지도 썰어 널려고 하니 지금 있는 덕석(명석)으로는 부족하니 새로 멍석을 하나 더 사야겠다고 하시는 것을 들었다. 나는 그 길로 다리 밑으로 달려가서는 거지 할아버지에게 멍석을 만들어라고 조르다시피 말씀드렸다. 그러고는 우리 집에서 기르던 소의 겨울 여물로 쓰려고 방천둑에 세워 두었던 십여동의 볏짚가리에서 짚동마다 십여단씩 빼내어 거지 할아버지께 갖다 드렸다. 어느 날인가 소의 여물을 작두로 썰기 위해 볏짚을 가지러 갔다가 오신 아버지께서는 그 이상하네, 누가 짚동에 손을 대는 것 같네, 짚이 자꾸 줄고있네.”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듣기만 하고 있었다. 거지 할아버지가 멍석을 빨리 만들기만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날은 닷새 만에 돌아오는 신반 장날이었다. 할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멍석을 사러 가신다고 집을 나서셨다. 나는 제발 오늘 장에는 멍석이 안 나오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늦은 오후에 장에 갔다가 오신 할머니는 아마 두 달은 기다려야 살 수가 있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 하셨다. 나는 다시 거지 할아버지께 뛰어가서 말했더니 한 달포는 쉬지 않고 하여야 완성할 수 있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한 달 후에 할머니가 찬장에 있던 칠성사이다 병에 넣어 둔 막소주를 내가 사이다로 착각하여 한 모금 마시고는 술에 취해서 머리가 아프다고 데굴데굴 구르며 울고 있는데거지 할아버지가 내가 갖다 준 우리 짚으로 만든 새 멍석을 말아들고 우리 집에 팔러 온 것이다. 마당에 펴고 멍석 바닥과 이음매를 보시고 할머니와 엄마는 흡족해 하시며 물건 잘 만들었다.”고 칭찬을 하셨다. 나는 큰방 안에서 쪽유리창을 통해 밖의 흥정을 살펴보며 제발 우리가 저 멍석을 사주기만 기원했다. 실림하시는 할머니와 엄마가 좋아하시자 병중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아무런 반대없이 그 멍석을 사자고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뛸 듯이 기뻤다. ! 저 거지 할아버지가 다음 장에는 새 옷을 살 수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무척 들뜬 기분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튿날부터 장대비가 계속 쏟아졌다. 급기야는 상류의 꽃물이 모여들어 신반천이 꽉 차도록 황토물이 불어났다. 나는 그날 학교에서 단축수업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신반천에 가득한 급류를 보고 거지 할아버지가 걱정이 되었다. 다리 밑에도 물이 가득 차서 더 이상 노숙을 할 수가 없는 상태라서 나는 먼저 만난 동네 아저씨에게 거지 할아버지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고 물었다. 잠자고 밥지어 먹을 곳을 찾아서 낮에 어디론가 떠났다고 말해 주셨다. 나도 모르게 울컥해지며 눈물이 핑 돌았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 소년 시절에 불우한 이웃을 아무도 모르게 혼자 돕겠다는 기특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 불교의 교리도 전혀 모르시면서도 그저 대문간에 목탁 소리만 나면 쌀 퍼 주시고, 보리쌀 퍼 주시던 할머니의 자애로우신 보시공덕(布施功德)이 어린 나에게 이심전심으로 이입(移入)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편집부 기자 / 입력 : 2015년 09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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