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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강 주창돈 씨 ‘운강산고’ 발행

주경야독… 한문 문장력 빛나

허권수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好學勤敏·溫厚한 선비” 극찬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605호입력 : 2022년 12월 08일
                   ‘충효의 마음 품고, 인의의 일 행한’ 선비
                        (存忠孝心)         (行仁義事)


ⓒ 의령신문
 
 
 의령읍 운곡마을의 운강(雲岡) 주창돈(朱昌暾.77.사진) 씨의 한시 한문 서적인 ‘운강산고’(雲岡散稿,도서출판 화인.2022.9)가 출판되자마자 지인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그는 가난한 집안의 칠남매 형제 중 맏이로 태어나 동생들 공부시키기 위해 초등학교(벽화초 10회) 졸업 후 낮에는 담배농사, 밤에는 서당(운곡강당)에서 한문 공부를 하는 등 그야말로 주경야독으로 결국 농사를 비롯한 제반 집안일도 한문공부도 모두 정상 궤도에 올려놓았다.

 운강산고는 본문 1.산하풍광(山河風光 78수), 2.역사인물(歷史人物 71수), 3.붕우축수(朋友祝壽 32 수), 4.중원답사(中原踏査 9수), 5.묘갈비문(墓碣碑文 11수), 6.루정기문(樓亭記文 14수), 7.향촌잡기(鄕村雜記 11수) 등 한시(漢詩) 236수에다 그 앞.뒤에 서문.축간사와 8.후기(後記, 저자의 동생 2명과 장남 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 속에는 오늘날 보기 드문 그의 “이기심을 극복해서 예로 돌아가는 것을 인이라 할 수 있다”(克己復禮爲仁:논어 안연편)’는 경전적 삶을 실천하고자 노력한 투혼이 여기저기에 녹아 있다. 특히 운강은 서두의 표지제자에도 자신의 권두언을 대신하듯 “存忠孝心,行仁義事(존충효심 행인의사: 출처-중국 청나라 위걸(魏杰:1776~1876)”, 즉 ‘충효의 마음을 품고 인의의 일을 행한다’란 사언대련(四言對聯)의 구절을 게재한 것도 이 같은 의미로 생각된다.

 의령읍 운곡은 신안주씨(新安朱氏) 의령입향조인 통덕랑(通德郞) 휘(諱) 응상(應詳)(운강의 12대조)공이 임진왜란 때 사천에서 의령 운곡으로 피난 와서 정착한 이래 누대로 세거지가 되었다. 이 마을에 주씨 문중사람들이 일찍이 지역 유림들과 함께 정성을 모아 도동사(道東詞)를 세워 주자(朱子)를 향사하고 운곡강당을 지어 주자학을 강독한 사실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허권수(許捲洙) 경상국립대 명예교수는 ‘운강산고서’(雲岡散稿序)에서 운강은 “공부를 좋아하는 부지런하고 민첩한 선비(호학근민지사·好學勤敏之士)”이고, “운강의 사람됨을 말하자면, 효도하고 우애 있고 충실하고 신의가 있었다. 부지런하고 검소하고 너그럽고 자혜로웠다. 부모를 효성으로 잘 모시고, 여러 아우들을 우애 있게 돌보고, 선조를 받들고 일가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여러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도우기를 좋아하니 ’마음이 따뜻하고 두터운 선비(온후지사·溫厚之士)’”라고 지칭했다.

 또한 “운강은 어려서는 아버지 할아버지 등으로부터 소학 등 한학 기초를 배웠으며 조금 자라서부터는 묵암(默庵) 남문희(南文熙) 공을 따라 경서와 역사서를 배웠다. 총명하고 민첩하여 보통 애들과는 달라 앞날이 기대 되었다. 그러나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 하여 계속 공부에만 전념할 수가 없었다. 

 이에 영농에 힘을 쏟으면서 아울러 공부도 열심히 하였다. 그 뒤 집안의 살림이 조금 넉넉해지고, 간간히 농사일의 겨를을 이용해서 책 상자를 메고 원근으로 스승을 찾아 갔다. 예를 들면, 초계의 추연(秋溪) 권용현(權龍鉉)선생, 합천의 춘산(春山) 이상학(李相學) 공, 단성(丹城)의 수헌(守軒) 정태수(鄭泰守)공 등에게 사사를 받았다.”며 “이 원고를 읽어 보면 운강이 일생 동안 겪어왔던 일이나 생각했던 바를 일 수 있겠다. 이 원고가 세상에 전해지면, 운강의 정신이 담겨 영원히 전해질 것이다. 그러한데 어째서 편찬해서 간행하지 않겠는가?”고 평가했다.

 성규근(운강과 동갑계원) 전 의령읍장은 “배움을 찾아 타 지역의 서실, 강당, 학자 모임에도 참여하고 50대 초반에 의령의 유림모임인 돈신계(敦信契) 등에 몸담아 우리 고장 향교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한문학을 생활화하였다. 지금도 의령 연묵회(硯墨會) 회장으로서 서실에서 사서, 자작시 등에 해박한 지식으로 해설을 해주곤 한다”며 이번 저서 발간을 축하했다.

 운강의 죽마고우인 홍갑진 재경 향우는 기자에게 전화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꾸준함과 끈기로 힘든 세월을 보낸 친구 운강이 틈틈이 쓴 한시 등 한문 문집을 ‘운강산고’란 책으로 발행해 존경스러워서 의령신문을 통해 홍보해주시기 바랍니다.”고 말했다.

 운강은 저서에서 ‘봉고우-홍갑진’(逢故友-洪甲進)의 글을 통해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나 대도시 살며(抱夢離鄕巨大市), 늙어 고향을 찾아 성묘하니 성공을 축하하네(老尋省墓賀成功)”라고 축하했다.

 운강의 셋째 동생(삼돈)은 이 책의 후기에서 “맏형으로 부모봉양과 형제들의 애환을 따뜻하게 보듬으며 우애의 모범을 보이신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으로 고향 벽화산 푸른 소나무처럼 늘 그 자리에 있어주어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는 축사를, 중등학교에서 국어교사(한문을 부전공)를 역임했던 다섯째 막내 아우(오돈)는 “큰형님의 학문 경지와 수준에 아우는 다시 한 번 감동했다”며 “아우한테는 감히 오르기 어려운 높은 산으로만 보일뿐입니다.”고 존경했다.

 운강의 장남(동열)은 “조부모님의 긴 병석에도 정성을 다해 모시고, 상을 치를 때 여실히 보여주시는 등 ‘효위백행지본(孝爲百行之本)을 실천하였습니다. 부모님께서 생활에서 몸소 보여주신 예의범절은 다른 어떤 책이나 스승으로부터 배움보다 더 큰 가르침이 되었습니다.”고 밝혔다. 박해헌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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