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산책길에서
문남선(시인·수필가)
입춘(立春)이 보름쯤 지난 휴일, 집 근방의 공원으로 산책을 나섰다. 공원의 나무는 봄 햇살의 유혹을 떨치지 못한 채 여기저기 꽃망울 틔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간혹 성질 급한 녀석들은 마치 ‘히잡’을 쓴 이슬람 여인을 연상시키듯 예쁜 얼굴만 빠끔 내 놓고 있다. 어느새 우리 곁에 봄이 성큼 다가 왔나보다. 머잖아 다가올 봄 축제가 은근히 기다려진다.
봄, 봄이면 누군가가 꼭 세상이라는 큰 화폭에 마치 커다란 붓을 들고 빨강이다, 노랑이다…, 하는 식으로 마구, 마구 그림을 그려대는 것 같다. 그리고는 자신의 작품 속으로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 같다.
봄을 알리는 빠른 전령사에는 개나리, 진달래 등이 있고 그 외 봄꽃으로는 벚꽃, 목련, 철쭉, 장미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다. 우리는 대부분 꽃을 좋아하고, 또 각자 좋아하는 꽃이 있을 것이다. 허나 좋아하는 꽃의 순위를 대어보라면 아마 그 말엔 답변하기가 매우 힘이 들 것이다.
세상을 장식하는 수많은 꽃 중, 목련은 목련대로, 철쭉은 철쭉대로, 장미는 장미대로, 이름 없는 들꽃은 들꽃대로, 서로 함께 어우러져 아름답게 자연을 장식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러니 어찌 넌 1등, 넌 2등……, 하는 식으로 꽃의 등급을 매길 수 있단 말인가? 이는 마치 혼자서는 이 세상을 살아낼 수없는 사람 사는 세상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흔히들 장미를 꽃의 여왕이라고 칭한다. 하지만 장미 한 가지로 계절을 장식할 수는 없는 법, 개나리 진달래, 벚꽃, 장미, 국화, 이름 모를 들꽃까지……. 모두가 어우러져 사계절을 균형 있고 조화롭게 장식하듯 우리 인생도 꽃과 비슷할 것이다. 너와 나, 나아가 우리 모두가 어우러져 함께할 때에만 세상이 꽃처럼 아름답게 빛날 것이기에.
대한민국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뚜렷한 축복의 땅이다. 봄은 화려한 꽃의 축제로, 여름은 활기찬 신록으로, 또 가을은 고운 단풍으로, 겨울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기위한 준비된 계절로……. 사계절은 늘 그렇게 우리의 삶 속에 계절마다 새로운 기운을 지속적으로 선사해준다.
산책길에서 공원의 식물들을 보면서 어느새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 봄을 느낀다. 그 속에서 꽃의 삶을 되돌아본다. ‘개화에서 낙화까지’의 꽃의 삶 또한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다. 언 땅의 흙덩이를 힘차게 비집고 나온 새싹의 모습엔 탄생의 경이로움이, 신록 무성한 싱싱함엔 활기찬 유년시절이, 각양각색의 단풍 속엔 인생의 다양함이 녹아든 중년의 모습이, 삭풍 속의 의연한 나목에선 황혼의 모습이 있다.
어릴 적 동네 친구들과 함께 올라간 산에서 한 아름의 진달래를 안고 즐거워했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내 고향 ‘의령’의 산과 들에도 예쁜 꽃들이 수를 놓을 것이다.
의령복지 마을의 한마음 벚꽃축제가 열리면, 온 마을엔 눈꽃 같은 꽃잎이 유성처럼 날릴 것이다. 즐거운 생기가 가득할 것이다. 거기다 ‘한우산 철쭉제’가 열리면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꽃과 함께 온 산을 예쁘게 수를 놓을까.
이처럼 봄은, 보이는 모습으로, 때로는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우리의 마음 깊숙이 들어온다. 바야흐로 지금은 계절의 여왕, 봄, 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