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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기쁨

허영일(의령신문 편집위원)
편집부 기자 / 입력 : 2017년 01월 16일

살아 있는 기쁨

 

허영일(의령신문 편집위원)

 
허영일 편집위원

일본에서 수필의 고전으로 여겨온 14세기(1330년 전후) 요시다 겐코(1283~1352)라는 사람이 나이 40에 시작, 50에 이르러 완성한 쯔레즈레 구사’[무료(無聊)하고 쓸쓸한 수상(隨想)]를 다시 읽었습니다. 이 책은 상권(136), 하권(107)으로 분할되어 있습니다. 2007년 봄, 정부대전청사의 지하 1층 로비에서 열린 헌책 바자회서 구입하여 읽었던 책입니다. ‘젊으니까 염려할 일 없으며 튼튼하니까 안심할 수 있다는 법은 없다. 뜻하지 않은 것은 인간이 죽을 때이다.’라고 하는,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존재인 인간의 자각을 설득하는 내용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인간이 눈을 감는 시기는 차례를 기다리지 않는다. 죽음을 반드시 앞에서만 오는 게 아니라 미리 뒤로 다가오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은 누구나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것은 기다리거나 재촉하지 않는데 뜻하지 않게 다가온다. 바닷물이 밀려 나간 앞 바다의 갯벌이 아득히 멀리까지 보이다가도 눈 깜짝할 사이에 밀물이 차오는 것과 같다.”(155)

이런 식의 짧은 문장으로, 마치 끌로 구멍을 파내듯 날카롭고도 명쾌하게 죽음이라는 게 별안간 내습한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죽음을 미워한다면 생()을 사랑해야 마땅하다. 생존의 기쁨을 날마다 즐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살아 있는 지금의 고마움에 대한 자각으로 사람을 이끌고 있어, 단 한 줄의 단문이지만 이 말을 알게 되면 잊을 수 없는 든든함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바닷가에 갯벌이 멀리 퍼져 있다고 해서 안심하고 서 있노라면 어느 순간에 바닷물이 밀어닥치는 것과 같다며, 죽음이 찾아오는 시기를 예측할 수 없는 어려움과 까닭모를 두려움을 설득하는 산뜻하고 날카로운 글 솜씨가 있기 때문에, 죽음을 미워한다면 생을 사랑해야 마땅하다는 삶을 향해 눈을 돌리게 하는 말이 힘차게 울립니다.

 

쯔레즈레 구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어서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죽음을 미워한다면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어찌 살아서 생명을 유지하는 즐거움을 매일 마음속으로 즐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일을 자각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이 생존의 즐거움을 잊어버리고 나의 마음 밖에 있는 쾌락을 추구하니, 이 생명이라는 보물을 잊고 위태롭게도 다른 보물을 무턱대고 탐내는 경우에는 그 바람이 결코 충족되지 않는다. 살아 있는 동안 그 삶의 기쁨을 즐기지 않고 죽음을 바라보고서야 눈감기를 두려워한다면, 이것은 마땅히 도리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이 모두 생을 즐길 수 없는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게 아니라 죽음이 눈앞에 다가와 있음을 잊고 있는 것이다.

이것 이외에 만약 생사의 상태에서 초월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참된 도리를 깨닫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93)

 

우리는 지금 살아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보다 더한 기쁨이 있습니까? 죽음을 미워한다면 그 기쁨을 하루하루 확인하고 살아있음을 즐겨야만 합니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런 인간의 가장 큰 즐거움을 즐기지 않고 그것이 보물임을 망각합니다. 그리고는 재산이라든가 명성과 같은 하찮은 보물만을 끊임없이 찾고 있기 때문에 마음은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 삶을 즐기지 않고 있다가 막상 죽음에 임박해서야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도리에도 맞지 않는 일이 아닌가합니다.

사람이 모두 이와 같이 살아 있는 지금이 즐겁지 않은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게 아니라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최고의 보물은 재산도 명성도 지위도 아니며, 죽음을 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매일 자각하면서 현존하는 삶을 즐기는 것뿐입니다.

 

개미처럼 모여서 동서로 발걸음을 서두르고 남북으로 달리는 인간들, 고귀한 사람도 있고 가난하고 천한 사람도 있다. 늙은이도 있고 젊은이도 있다. 저마다 갈 곳이 있고 돌아갈 집이 있다. 저녁에 잠들고 아침에 일어난다. 도대체 인간이 하는 일은 무엇일까. 생을 탐하고 이를 찾아 그만둘 때가 없다. 몸을 보양해서 무엇인가를 기대한다.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오직 늙음과 죽음뿐이다. 이 두 가지는 다가오는 것이 매우 급하고 빠르며 잠시도 머물지를 않는다. 이것을 기다리는 동안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오.”(74)

 

명예와 이익을 쫓아서 조용한 여가도 없이 평생을 고뇌 속에 지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재산이 많으면 자신을 지킬 수 없게 된다. 재산은 해()를 만들어 고뇌를 만드는 주범이다. 이욕에 눈이 어두워 갈팡질팡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의 짓이다. 진실한 인간은 지혜도 없고, 덕도 없고, 공명도 없고, 명예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 없음을 누구에게 알리지도 않고, 따라서 아무도 알 수 없다. 그 사람이 덕을 숨기고, 어리석음으로 가장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현우(賢愚)와 이해득실(利害得失)의 경계에서 초월해 있기 때문이다.‘(38)

 

인간은 천지간에 가장 존귀한 존재다. 천지는 광대무변(廣大無邊)하다. 인간의 본성도 또한 천지와 다를 바가 없다. 인간의 마음이 관대하여 제한이 없다면, 희로(喜怒)의 정()도 지장(支障)이 될 바가 없으며, 외적인 사물로 인해서 괴로워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211)

 

세상 돌아가는 대로 움직여서는 마음의 충실을 얻을 수 없습니다. 남들 따라 사는 것과 거리를 두고 자기 자신의 마음을 찬찬히 집중하여 성찰해야 합니다. 바로 거기서부터 살아 있는 기쁨을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참된 인간은 이득이나 명예 그런 것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의 현존하는 삶을 즐길 뿐입니다. 진실의 인식에는 시대가 없습니다. 시대를 초월한 보편성을 지닌 것이야말로 문화(文化)에 걸맞은 것입니다. 요시다 겐코의 글이 시대를 넘어 국경을 넘어 감동을 주는 것은 마음의 참됨과 정직함을 구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편집부 기자 / 입력 : 2017년 0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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