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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해숙의 故事成語 풀이

曲學阿世(곡학아세)
장해숙(재경 궁류면향우회 고문)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입력 : 2020년 09월 28일
장해숙의 故事成語 풀이
曲學阿世(곡학아세)

장해숙(재경 궁류면향우회 고문)
 
ⓒ 의령신문
전한(前漢) 제오대의 무제(武帝)는 즉위와 동시에 천하에 어질고 위대한 인사를 구했는데 제일 먼저 시인으로 이름 높은 원고생(轅固生)을 불러들였다.
산동 태생인 원고생은 그 당시 나이 구십 세 였으나 황제의 부름을 받자 매우 감격하여 “젊은 녀석들한테 지지 않을 테다”하고 백설같은 머리통을 흔들거리면서 서울로 올라왔다.
그런데 곧기만 하고 고집불통인 이 늙은이가 오게 되자 잘난 체 나대던 사이비 학자들은 큰 야단들이 났다. 그들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황제의 마음을 돌이켜 보려고 필사적으로 원고생을 헐뜯고 욕을 늘어놓았다.
“그 늙은이는 이젠 쓸모가 없습니다. 시골구석에 그대로 눌러앉아 증손자나 데리고 놀게 하는 편이 어울릴 겁니다. 그러나 황제는 아들의 중상을 물리치고 기어코 등용하기로 했다. 이 원고생과 동시에 등용된 사람이 또 있었다. 같은 산동 출신인 공손홍(孔孫弘)이란 소장 학자였다. 공손홍은
“송장이 되다만 이 늙은이가 알면 얼마나 안담…… ”하는 태도로 원고생을 대했다. 그러나 원고생은 조금도 언짢은 기색 없이 공손홍에게 말했다.
“지금 학문의 길은 어지러워지고 속설이 유행하고 있다.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역사 있는 학문의 전통은 요사스런 학설에 의해 드디어 모습을 잃게 될 것이다. 다행히 자네는 나이 젊고 학문을 좋아하는 선비라고 하니 아무쪼록 올바른 학문을 잘 익히어 세상에 널리 퍼뜨려 주게. 결코 자기가 믿는 학설을 굽히고(曲學) 세상의 속물들에게 아부하지(阿世) 않도록…… ” 이것이 곡학아세란 말의 기원이다.
원고생을 만만히 보았던 공손홍도 절개를 굽히지 않는 원고생의 훌륭한 인격과 풍부한 확식에 경의를 표했으며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겼다. 곧 찾아가서 지금까지의 무례를 빌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원고생이 태어나고 생애의 태반을 살아온 산동에서는 시를 배우려는 사람은 모두 원고생을 본 받았고 당시 이름 있는 시인은 거의가 그의 제자였다고 한다. 원고생이 얼마나 강직한 사람이었는가를 설명하는 이야기로 또 하나의 일화가 있다.
그가 먼저 섬긴 바 있는 경제(景帝)의 모친 두태후는 노자(老子)라면 죽고 살지 못할 만큼 좋아하였다. 어느 때 박사(博士)인 원고생을 불러 이렇게 물었다.
“그대는 노자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노자 따위는 머슴이나 노예와 다름없는 형편없는 사나입니다. 때문에 그자가 말한 것은 모두가 엉터리 아니면 속임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적어도 천하 국가를 논하는 인물로서는 문제 삼을만한 가치가 없는 자입니다.“ 하고 조금도 두려움 없이 말해버렸다.
태후는 노발대발 했다.
“뭤이?! 어째고 어쨌다고?! 감히 노자를 엉터리라고 말했겠다? 이 쾌씸한 것, 여봐라 이놈을 당장 감옥에 가두어라!”
감옥에 갇힌 원고생에게 매일 돼지를 죽여야 하는 벌이 주어졌다. 태후는 아흔 살이 넘은 노인인 그가 돼지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게다. 못하면 못하는 대로 또 다른 벌을 줄 핑계가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심술궂은 할멈의 생각이란 예나 지금이나 비슷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태후의 아들 경제가 노인을 불쌍히 여기고 옥중의 원고생에게 예리한 칼을 주어 돼지를 찌르게 했으므로 원고생은 단 한 차례에 돼지의 심장을 찌를 수 있었다. 돼지는 쿵!하고 쓰러져서 숨이 끊어져 버렸다. 이 소식을 들은 태후는 자기의 아들이긴 하지만 황제가 그를 감싸주고 있다면 더 이상 원고생을 들볶을 수가 없으므로 하는 수 없이 감옥에서 풀어 주었다.
이렇듯 권력을 두려워 않고 심중의 말을 곧장 내뱉는 태도에 감탄한 황제는 원고생을 삼공(三公)의 하나인 청하왕(淸河王) 태부(太傅)에 승진시키고 그 신임은 더욱 두터워졌다.
그 후 원고생은 나이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몇 번이나 사직하기를 원했으나 황제는 허락하지 않다가 그가 병들어 더는 출사(出仕)할 수 없게 되어서야 간신히 면관의 허락이 내렸다. 황제는 그를 이토록 신임하였던 것이다.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입력 : 2020년 09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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